다 지나간 일이니 하는 이야기이지만,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시큰둥한 반응은 예사였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국회의원들은 또 어떠했던가.
상식에 어긋나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한다는 투였다. 분한 심정에 돌아서 나온 적도 있었지만 내 주장을 대변해줄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면 어떻게 이 어려운 싸움에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심정에서, 그들의 반응이 어떠하든 개의치 않고 설명과 설득을 한 적도 많았다.
다행히 거의 대부분의 변호사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뒤에는 기꺼이 사건을 수임했다. 이는 국민이 침구사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동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어렵지 않은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터였다.
1989년 우리 침구사들은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름하여 ‘한방의료제도 불법운용과 침구사업권 침해에 관한 헌법소원’이었다. ‘지금의 침구사는 1914년 10월 조선 총독부경령 제10조인 ’안마술·침술·구술 영업취체규칙에 의하여 자격을 인정받고 구 국민의료법 제59조와 현행 의료법 제 60조에 의하여 의료유사업자로서 영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은 이들이다.
그러나 의료법에는 자격권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그 자격권을 보호할 단속 근거가 미비하여 한의사들로부터 업권과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대용이었다.
현행 의료법은 한의사의 한방 진료 및 치료행위와 침구사의 침구 시술행위를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다. 한의사에 대한 규정과는 별도로 침구사의 존재와 면허를 소지한 침구사가 침구 시술행위를 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제 60조가 바로 그 증거이다.
1962년 의료법 개정 과정에서 침구사의 자격 취득에 대한 규정인 제 59조가 삭제된 이후 침구시술행위가 한의사의 진료 범위에 포함되었다는 주장도 법률에 의하면 근거가 없다. 침구 시술행위가 한의사의 한방의료에 통폐합되었다면 법체계상 권한의 이동이나 변경의 근거를 명시하여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 그러나 개정 의료법 중 어느 조항에도 침구의 시술권이 한의사의 의료영역으로 통폐합 되었다는 근거를 찾아 볼 수 없다.
다시 말해 침구사의 신규 자격 인정 제도만 폐지되었을 뿐 침구 시술권은 그대로 침구사에게 있고 따라서 한의사가 침구를 시술하는 것은 침구사의 업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을 냈다고 해서 한의사의 침구 시술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키려는 속셈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한의사들과 무료의료봉사를 하고 있었고, 맹학교의 시각장애인들과 알음알음 찾아와 사정하는 사람들에게 침술과 뜸술을 전수하고 있던 나는 침과 뜸이 널리널리 퍼지기를 진심으로 바랏다.
그런데도 ‘업권 및 기본권 침해’라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법이란 것이 상식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헌법소원의 핵심은 공권력의 묵인이나 편향으로 빼앗긴 권리를 명확하게 밝히고 그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규정하는 데 있다.
헌법소원의 상대방인 피청구인 역시,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대한한의사협회가 아니라 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였다. 법률에 명시된 권리와 의무를 그대로 이행하지 않고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며, 그와 같은 행위를 한 당사자가 보건복지부였기 때문이다.
음지에서 활동하던 무면허 침구인들도 침구 시술권에 대한 헌법소원을 신청했다. 침구 시술권에 대한헌법소원은 다양한 단체에 의해 여러 건이 접수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정력적으로 움직인 이는 재야 침구인인 이석원 씨였다.
이 씨가 낸 헌법소원이 명칭은 ‘한방의료제도 불법운용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재판 청구’로서 ‘의료법에 규정된 침구 시술권은 침구사의 권한이며, 이에 따르면 한의사와 무면허 침구인은 모두 침구사 자격증 없이 침과 뜸을 시술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며너 침구인만 처벌하는 처사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평등권에 어긋난다’는 내용이었다.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고 회답을 기다리는 사이 생각지도 못했던 ‘제척기간’이라는 복병이 튀어나왔다. 제척기간이랑 법률상 권리가 존속되는 기간으로, 간단하게 말해 소송을 제기 할 수 있는 기한을 뜻한다. 나 역시 그때 제척기간이라는 용어를 처음 알았다.
“제척기간이 넘으면 헌법소원 자체를 낼 수 없는 겁니까?”
“제척기간이 만료됐다고 결정 나면 그렇습니다. 권리의 존속기간인 제척기간이 만료되면 법적으로 그 권리는 소멸된 것이거든요.”
“권리가 소멸된 것이라면 소송도 제기할 수 없겠네요?”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가 낸 헌법소원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직 뭐라고 확실하게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국세법이나 관세부과, 상속권회복 청구 같은 것들은 법에 제척기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만, 귀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재판부가 귀하의 헌법소원을 제척기간 경과로 판단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심판의 가부가 결정 됩니다.”
#침구사들이 제출한 헌법소원의 심판이 계류되었다.
주장이 옮고 그름을 따져볼 기회도 없이 기간이 경과한 오래 전 일이라고 해서 심판의 대상에서조차 제외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헌법재판소가 생기기 수십년 전에 발생했던 사건에 대해서 제척기간 운운한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었따.
더구나 법조인들도 인정하듯이 ‘법에 명시된 몇몇을 제외하고 제척기간의 구별은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분분할 만큼 어려운 문제’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사실 헌법재판소가 생기기 훨씬 전인 60년대 후반에도 헌법소원을 내려고 한 적이 없었다.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헌법위원회였던 시절이었다. 당시 헌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영천 씨와는 친분이 있는 사이여서 자문까지 받았다. 김영천 씨는 ‘헌법소원’이라는 말을 꺼내자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었다.
당시 헌법위원회는 명칭만 헌법위원회였을 뿐 정부의 어용단체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새로 생긴 헌법재판소는 뭔가 크게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침구사들이 제출한 헌법소원의 심판이 계류되는 사이 한 명의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제3공화국 시절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를 변호사로 선임했는데 아무리 좋게 보아도 그는 염불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선 비용까지 지불한 의뢰인인데도 변호사 만나기가 너무 어려웠다. 전화를 해달라고 변호사사무실 직원들에게 아무리 부탁해도 그가 먼저 전화하는 일은 없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