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처음 가르치던 날
1999년 성바오로 병원의 강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흰 가운을 입은 십수 명의 의사들이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바라던 숙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갑자기 가슴 한 쪼기 뻐근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40년 동안 겪었던 일들이 마치 어제 일인 양 느껴지며 뭐라 말할 수 없는 감회가 밀려왔다. 침뜸의 맥을 살리려 뛰어다닌 세월과 침통하나 들고 전국 방방곡고 무료 의료 봉사를 다녔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래! 이것이 내 마지막 사업이구나! 나의 마지막 도전은 침과 뜸을 알리고 발전시킬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로구나!’
꽤 오래 전부터 나는 의사들에게 침과 뜸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의사들이 침놓는 일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했거니와 침·뜸이 갖는 효과와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사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믿었다.
의사들에게 침뜸을 알리기 위해 애썼지만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의사들은 침뜸이 경험에만 의존하는 비과학적인 치료술로 생각할 뿐이었다.
1994년 어느 날 미국 아이오와 주립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사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안양이라고 합니다”하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내게 침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안 선생은 미국 의료계 내에서 침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인지도 등에 소상하게 알려주며 앞으로는 의사라면 누구나 침을 다룰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3년 동안 안양 선생은 한 달에 한 번씩 나를 찾아왔다. 그의 배움은 고단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열 대 여섯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와 사나흘 머무르며 침과 뜸을 배우고 다시 열 대여섯 시간을 날아 미국 땅으로 건너갔다.
“선생님 병원에서 무료 진료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없기는요 환자가 있으면 어디든 가는 것이 침구사입니다. 있다마다요. 가다마다요.”
안양 선생이 다리를 놓아주어 시작된 성가병원의 무료 침뜸 봉사는 3년동안 지속되었고 그 사이 나는 가톨릭 계통의 관계자들을 제법 알게 되었다.
“의사들이 침과 뜸을 하면 참 좋을 텐데요.”
“저도 그 생각을 늘 했습니다만, 쉽지가 않더군요. 관심있는 의사를 한 자리에 모으는 일도 여간 어렵지가 않구요.”
“그럴 겁니다 겉으로 드러내질 않아서 그렇지 전통의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의사가 크게 늘었거든요 단지 서로 눈치보고 있을 뿐이지요.”
“그럼. 눈치 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겠네요.”
“병원 안에서 강의하면 눈치 덜 보고 쉽게 오지 않겠습니까?”
의사들을 위한 강의는 예상보다 훨씬 호응이 좋았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8개월 과정이 너무 길다.며 불만에 찬 목소리도 없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조금 더 자세히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냐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성바오로 병원에서의 첫 과정을 마치고 난 뒤 새로 시작한 강의에는 전보다 훨씬 많은 의사들이 모여들었다. 친분이 있는 의사들 사이에 이미 소문이 났고 먼저 배운 이들이 앞장서 배워 볼 만하다고 권했다고 한다.
연수 차 미국이나 우럽에 갔다가 침을 임상에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온 의사들과 안양 박사를 만난 의사들도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처음에는 놀라웠지만 이내 새로운 가능성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영양사들이 침술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사이에 서구의 의사들이 연구를 계속하여 얻어낸 결과는 괄목할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강의실은 성바오로 병원에서 내가 운영하는 침술원으로 옮겼지만 수강생은 늘어만 갔다.
쉬쉬하면 배우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남의 이목을 크게 구애받지 않고 침뜸을 배우러 다닌다. 지금까지 ‘뜸사랑’ 정통침뜸교육원에서 운영하는 의사 침뜸 세미나 과정을 통해 배출된 인원은 100명이 넘는다.
침과 뜸이 널리 퍼지고 그가 누구이건 간에 침·뜸을 잘 다루어 환자들을 병마에서 구해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 나는 교육사업과 의료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나는 침구사법의 입법은 나의 손을 떠나 후학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직업이기주의를 버리고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참된 의사들을 길러내는 일. 그런 의사들이 많아져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부지런히 교육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여든이 넘는 나이에 만난 새로운 도전이자 의무이다.
#지나침 욕심은 화를 부르고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아픈 데도 많다. 이것은 한 평생 환자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반면 욕망의 끈을 놓아 버리면 웬만한 병은 저절로 수그러든다. 지옥처럼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육신을 옥죄던 통증도 스르르 자취를 감춘다.
이것 또한 의술을통해 얻은 지혜이다. 욕심이 도를 넘으면 마음에도 그늘이 찾아온다.
식탐 많은 아기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어 보면 잘 알 수 있다. 왼손에 하나, 오른손에 또 다른 하나를 움켜쥐고 입안에도 먹을 것을 가득 물고 있던 아기는 엄마가 내미는 달콤한 사탕에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더 먹고 싶고 갖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터지는 울음이다. 많다고 무조선 좋은 것이 아니다. 제 능력의 한계를 넘어 남의 것까지 탐하는 행동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를 곤란하게 할지 모를 일이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