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1월 세계침구학회연합회(WFAS.이하 세침연)의 국제침구학술 심포지엄이 서울에서 열렸다. 세침연은 침구학술 관련 단체들이 중심이자 세계적인 기구이다. 세계 50여 국가의 60여 단체가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또한 세침연은 세계보건기구(WHO)와 함께 침뜸 의학과 서양의학, 양대 의학을 이끄는 견인차 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가 서양의학을 중심으로 한 세계최대 규모의 국제기구라면 세침연은 동양전통의학의 진수인 침구술의 핵심인 셈이다.

매년 한 차례 개최하는 국제침구학술 심포지엄은 전 세계 침구인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자리다. 침구의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을 통해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수준 높은 논문들이 다수 발표되기 때문이다.

대한침구사협회가 주관한 ‘94 서울 국제침구학술 심포지엄’은 여느 대회보다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참가 인원 1천여명 선으로 참석한 국외인사만 400명이 훨씬 넘었고 대회 기간 동안 제출된 논문도 400여 편에 달했다.

세침연의 국제적인 위치를 파악하고 관심을 표명하던 정부는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이었던 서상목 씨를 정부의 대표로 보내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게 했다.

별다른 마찰이나 사건 없이  순조롭게 치러진 이 심포지엄에도 불미스러운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대한한의사협회 대회 불참이었다. 한의협은 세침연의 회원단체님에도 불구하고 침구사협회와 불편한 관계임을 내세워 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장이었던 전세일 교수와 임상병이학 전문의인 안용모 박사 등이 이른바 양의들이 심포지엄에 참석해 침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한 것과는 대조적인 반응이었다.

그동안 침구사협회는 한의협과 적대적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심포지엄 개최가 확정된 뒤 약 1년의 준비기간 동안 침구사협회는 한의협에 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하자고 여러 차례 제안했었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비웃음 뿐이었다. 대회 주니가 막바지에 이르고 개최를 며칠 앞두었던 시점에서 침구사협회는 다시 공문을 보내 한의협의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한의협은 대회가 막을 내릴 때까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94 서울 국제침구학술 심포지엄’과 관련된 잡음을 대회 개최가 확정되기 이전부터 있어 왔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침구사협회가 벌이는 모든 사업에 훼방을 놓고 제동을 걸었다.

전년도인 1993년 3~4년에 한 차례 개최되는 세계침구학회연합회 총회가 일본의 교토에서 열렸다. 이 총회에서 대한 침구사협회는 다음 해 개최될 국제침구학술 심포지엄의 개최권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침구사 협회가 1994년 심포지엄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한의협은 대회 개최권을 따기 위해 부지런히 물밑 작업하고 다른 한 단체는 개최저지를 목표로 로비활동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한의협의 방해작업은 매우 노골적이고 적극적이었다. 한의협의 대회 개최 무산 활동에 세침연 집행위원들과 참가 단체들이 의문을 제기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침연은 한의협의 의도와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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