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의약분업은 1999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하게 됨에 따라 2000년 7월부터 실시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침구술과 탕약술은 분업하지 못하고, 한의사들이 움켜주고 있다. 이제 양방처럼 분업되어야 한다. 그것이 보약이라는 미영 아래 국민 건강을 해치는 경우를 방지하는 길이다.

1997년 대한한의사협회가 세계침구학회연합회 창설 이후 줄곧 역임했던 집행위원에서 탈락하면서 두 단체의 관계는 더욱 서먹해졌다. 전 세계 50여 개국의 침구학회 대표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세침연의 총회는 침구의학계에서는 가장 큰 행사이다.

여기에서 투표를 통해 집행위원회 위원 20여명과 6개 분과 위원회 임원을 선출하는데 북경에서 열린 제 4차 총회에서 한의협이 집행위원 자리를 내놓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한침구사협회 신태호 회장은 집행위원에, 나는 교육분과위원 및 고시위원에 선출되었다.

사실 그동안 한의계가 침구학에 대해 보인 태도는 세침연과 그 회원단체들의 불신과 불만을 사기에 충분했다. 대표적인 사건은 두말할 필요 없이 ‘94 서울 국제침구학술 심포지엄’ 개최 반대 로비와 불참이었다. 침구사협회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대회 개최 반대 운동은 오히려 세침연 회원국들의 원성을 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또한 대한한의사협회는 침구술 연구에 별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당시 9천명 선이었던 한의사 전원이 회원이었던 까닭에 세침연에 가입한 단체 가운데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논문이나 임상 사례를 발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소수의 집행부를 제외한 임원진이나 일반 회원은 세침연 총회나 대회에 좀처럼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니 세침연과 회원 단체들은 한의사협회의 이와 같은 태도를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의계는 그간의 불성실과 무관심을 반성하는 기색 없이 ‘국제기구를 등에 업고서 구시대적인 침구사법을 만들려는 얕은 술책’이라며 침구사협회를 깎아 내렸다. 또한 ‘회원이 대한한의사협회의 100분의 1밖에 안되는 대한침구사협회의 회장이 대한민국의 침술을 대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국제적인 망신’ 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도 세계침구의학계가 한의협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자 한의협은 집행위원에서 탈퇴했고 세침연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그 대신 한의협이 주고해서 만든 국제동양의학회(ISOM)에만 충실하겠다는 태도르르 보였다.

#탕약술만을 강조하는 국제동양의학회

1998년 한의협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국제동양의학회의 학술대회에 대규모 참석단을 파견했다. 1997년 북경에서 열린 세계침구학회연합회의 총회에 한의사 두 명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결정이었다.

국제동양의학회는 1976년 ‘침구학을 포함한 동양의학의 전반적인 종합 의학회 창설을 통해 동양의학 본연의 학술진흥을 추진하자’는 취지에서 발족된 학회이다. 이 학회는 세침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세계침구학술대회의 각국 대표자회의에서 결의한 내용을 토대로 탄생된 단체이다.

국제동양의학회는 대한한의사협회가 주축이 되어 만들고 이끌어가고 있는데 지나치게 탕약술만을 강조하고 침구술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동양의학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자’는 애초의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입장에서는 침구학 국제전문기구인 세계침구학회연합회와 포괄적 동양의학의 국제기구라 할 수 있는 국제동양의학회가 그 설립 목적이 서로 어긋나거나 두 단체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 가입해야만 할 성질의 단체가 아니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오히려 세침연이 국제동양의학회 보다 국제적으로 훨씬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기구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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