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력있는 재야 침구인을 대접하라
환자들이 하는 우수갯소리 중에 ‘한의원은 장의사 옆집’이라는 말이 있다.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보고 명의란 명의는 모조리 찾아가 온갖 검사를 받았지만 병이 무엇인지조차 알아내지 모하면 그제야 찾아가는 곳이 한의원이라는 뜻이다.
한의원이 장의사 옆집이라면 ‘침술원은 장의사 안방’이다. 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한약을 몇 재씩 먹어도 차도가 없을 때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곳이 침술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침술원은 시쳇말로 죽는 날 받아놓은 환자가 속는 셈치고 최후로 들르는 곳인 셈이다.
병원에서 손놓고 죽는 날만 기다리던 환자가 침뜸으로 살아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오랜 병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침과 뜸이다보니 우리집에도 병이 깊은 환자들이 수시로 찾아온다.
한낱 의원인 내가 명의로 등극하는 것은 바로 이런 환자들을 통해서이다. 병 나으려 찾아왔기에 병을 낫게 해주었을 뿐인데, 명의라느니 용하다느니 한다.
내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 했지만 병이 잘 낫는 것은 내가 용해서가 아니라 침과 뜸이 용해서이다. 침과 뜸은 제대로 부릴 줄 만 알면 누구나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침과 뜸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능력을 고스란히 옮길 수 있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
허나 그것 또한 교육의 기회가 없어서일 뿐이지 제대호 배우겠다고 결심하고 덤벼든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의술이 바로 침과 뜸이다.
그러나 침뜸을 제대로 다루는 한의사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는 한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교과과정이 탕약술 위주이며 침과 뜸을 잘 아는 선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한의과대학들이 탕약술 위주의 교육과정을 따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첩약을 주로 교육하는 동양의약학교가 한의과대학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처음 생겼던 한의학 교육기관은 동양의학전문학교로, 1946년 한의사들의 모임이었던 의생협회에서 만든 한의학 강습소였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