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게르의 귀향》장-클로드 카리에르, 다니엘 비뉴 지음, 고봉만 옮김, 문학과지성사
《마르탱 게르의 귀향》장-클로드 카리에르, 다니엘 비뉴 지음, 고봉만 옮김, 문학과지성사

남편이 집을 나갔다. 그리고 8~9년 만에 돌아왔다. 3년여 동안 행복했다. 그러나 그는 가짜였다. 이게 뭔 일이람.

돌아온 '남편' 마르탱 게르. 그는 마르탱 게르 행색을 했고, 마을 사람들은 물론 가족 심지어 아내마저도(?) 속여 넘겼다. 그의 기억은 완벽했고, 사교성과 언변 또한 탁월했다. 그가 돌아온 후 집안의 재산은 늘었고, 아내와의 사이에서 딸도 한 명 낳았다. 이 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가짜다. 그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 속이려고 했고, 그 계획은 거의 성공할 뻔 했다.

그렇다면 속는 자들은 어땠을까? 가령 그의 숙부, 곧 작은 아버지는 마르탱이 가출하고, 마르탱의 부모가 모두 죽자 자연스레 집안의 우두머리가 된다. 돌아온 조카를 미심쩍어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조카가 자신 몫의 재산을 달라고 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때마침 조카가 진짜가 아니라는 증언을 접한 그는 조카를 죽이려들고 그 시도가 여의치 않자 조카를 법정에 세운다. 그로서는 조카가 가짜임에 틀림없고 또 반드시 가짜여만 했다.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 중 가장 고약한 인물인 그는, 혈육의 정이라기보다 재산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그 같은 탐욕이 마르탱 게르에 대한 진실을 앞당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당사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아내는 어땠을까? 중요한 대목에서 몇 번이고 “저 남자는 남편이 맞습니다”라고 증언한 아내! 사실 아내는 돌아온 마르탱이 원래의 마르탱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받아들인다. 그리고 진짜 마르탱과의 생활보다도 더 행복하게 가짜 마르탱과의 생활을 누린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우리에게 던져진 대답은 그 흔한 ‘사랑’이다. 가짜 마르탱은 진짜 마르탱이 주지 못했던 사랑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 사랑에 우리의 여주인공은 역시 사랑으로 화답했을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녀에게 마르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짜가 진짜를 닮아서 다행이었고, 가짜가 진짜보다 더 다정하고 살가워서 마음이 쿵쾅거렸고, 가짜가 진짜보다 더 그녀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다. 한마디로 가짜가 진짜보다 더 나았다! 간음한 여인을 두고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죄 없는 자가 있다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법 혹은 이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아내의 그 같은 내면의 만족과 풍요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참과 거짓의 이분법만이 중요할 뿐이다. 판단判斷의 판判은 도끼로 둘로 쪼갠다는 뜻이다. 썩은 것과 온전한 것, 굽은 것과 곧은 것, 단단한 것과 무른 것만을 구분할 뿐이다.

그녀는 진짜와 가짜를 자신의 욕망으로 바꿨다. 마르탱의 작은 아버지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위판별에 혈안이 되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내면의 욕망에 따라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없애버렸다. 한 사람에게는 사실이 필요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존재가 필요했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말이 없는 자는 진짜 마르탱이다. 그는 꼭 있어야 할 단역에 불과하다. 진짜는 왜소하고 초라하다. 상징의 차원에서 말해본다면 그는 성 불능(아마도 임포텐스?)이었다가 다리가 하나 없는 채로 돌아온다.

그는 단 한 번도 온전한 적이 없었다. 과감하게 말하면 진짜에게는 흠이 너무도 많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짜 마르탱은 자신의 부재로 인해 벌어졌던 이 모든 소동을 결코 감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가 끝이 나도 결코 이야기꾼은 마르탱 게르의 후일담을 전하지 않는다. 아마도 더 이상 귀 기울여 들을 이야기가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리라. 진실은 결코 힘이 세지 않다.

자신을 메시아라고 칭하는 자들을 어떻게 믿을까? 자신이 이 나라를 구할 지도자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자의 본색을 어떻게 구별할까? 그는 가짜일까? 그의 위로는 진짜일까? 가짜의 위로가 행여 우리를 치유할 수 있을까? 가짜의 가짜 위로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좀 더 우리의 욕망 앞에서 비틀거리지 말자. 우리의 욕망이 우리의 법정이자 판결이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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