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화씨 451》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다음 대목을 꼽을 것이다.
“사악한 정치 소설인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를 소개합니다. 이 사람은 찰스 다윈이고, 이 사람은 쇼펜하우어이고, 이 사람은 아인슈타인, 그리고 여기 바로 이 사람은 아주 관대한 철학자인 앨버트 슈바이처입니다. 몬태그, 여기 있는 우리 전부가 아리스토파네스, 마하트마 간디, 석가모니, 공자, 토마스 러브 피콕, 토마스 제퍼슨, 링컨입니다. 그리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기도 하고.”
미래사회, 그곳에서는 책을 갖고 있는 게 불법이다. 발각되면 책과 집은 불태우고, 책을 읽고 소유한 사람은 처벌받는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방화수Fireman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몬태그가 바로 그 방화수다. 방화수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월요일에는 밀레이를, 수요일에는 휘트먼을, 금요일에는 포크너를 재가 될 때까지 불태우자. 그리고 그 재도 다시 태우자.”
그런 그가 한 소녀와의 만남을 계기로 방화수이기를 그만두고 새롭게 거듭나, 책을 지키는 소수파로 변모하게 되는 게 《화씨 451》의 큰 줄거리이다. 위 인용은 몬태그가 정부의 추격을 피해, 소수파들의 모임에 합류하게 되는 장면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책을 지키는 사람들, 곧 Book People이 책을 지키는 방법은 뭘까? 책을 읽은 후 불태워버리고, 책 내용을 통째로 암기하는 것이다. 체포의 위험은 피하면서 암송과 구전의 형태로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식이다. 그래서 나는 스위프트가 되고, 너는 다윈이 되고, 그는 아리스토파네스가 되고, 그녀는 마태복음이 된다. 다른 식으로 말해보면, 사람이 책이 되는 것! 참으로 낭만적이되 처절하고, 비극적이되 충만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생각해보라. 나 또한 그 어떤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되고 싶었던 책 중의 하나는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였다. 과학철학자이지만 우리들에게는 ‘상상력의 철학자’로 널리 읽힌다. 1980년대 중반, 나는 바슐라르를 읽었고, 그에게 느낌표를 찍었다.
“새 책들은 얼마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가! 정말 매일 새로운 이미지들에 대해 말해 주는 책들이 바구니 가득 하늘에서 떨어졌으면 좋겠다. 이 서원誓願은 자연스럽다. 이 기적은 쉽다. 저기 하늘에서는, 천당이란 거대한 도서관이 아닐까 싶어서다.……그래서 아침부터 내 책상 위에 쌓인 책 앞에서 독서의 신에게 나는 게걸스런 나의 독자의 기도를 드린다.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굶주림을 주시옵고…….’”
《몽상의 시학》(가스통 바슐라르, 김현 옮김, 홍성사)의 이 기도는 내 젊은 날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나는 끝내 혹은 결코 바슐라르가 될 수 없었다.
불행히도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거의 붕어 수준이다. 읽은 책의 내용은 고사하고 그 책 자체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잘 모를 때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책을 읽고 리뷰까지 썼는데도, 심지어 공개적인 곳에 발표까지 했는데도, 기억을 못 할 때도 있다. 이건 단지 뇌의 문제일까? 레이 브레드버리의 《화씨 451》은, 아마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번까지 포함해 최소 세 번은 읽는 소설이다. 그리고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만든 영화까지도 봤다. 이 정도면 이 소설에 대해 잘은 아니어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아니다!
이 소설은, 결단코 처음 읽는 소설이었다! 큰 줄거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 새로웠다. 나는 절망한다. 내가 레이 브레드버리가 그려 놓은 미래사회를 산다면 아마 장수할 게 틀림없다.
이 대목에서 드는 아주 불길한 상상 하나. 혹시 이 글이 표절은 아닐까 하는 상상. 브레드버리에 대해, 《화씨 451》에 대해 혹시 예전에 내가 썼던 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그래서 지금 나는 나를 표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 SF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등골 서늘한 이 상상. 아, 이 노릇을 어찌할까? 이 아둔한 머리와 얼어붙은 영혼을 어찌할까? 붕어야, 미안하다! 너를 나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정말 미안하다!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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