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2023년 4·3 75주년을 맞아 ‘기억을 넘어 미래로’라는 주제로 4·3에 대한 각계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순서로 일본에서 4·3운동을 선도적으로 해오고 있는 고이삼 신간사(新幹社) 대표이자 일본 4·3을 생각하는 모임 사무국장의 의견을 일본 현지에서 관련 단체를 통해 청취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로 보내온  인터뷰 내용을 제주투데이를 통해 알린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제주도민들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우익 세력, 경찰, 군대의 무력 진압 과정에서 약 3만명의 제주도 주민들이 희생당했다. 1988년 4월 3일,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제주도 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이하 4·3 모임)’은 일본 도쿄에서 첫 기념행사를 개최했고 500여 명이 이 행사에 참석했다.

이는 주최 측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은 참석자 규모이다. 이후 30여 년간 기념행사는 끊이지 않았고 올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 300여 명이 참석했다.

최근에도 제주도 4·3 기념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고이삼 도쿄 ‘4·3 모임’ 사무국장은 일본에서 4·3 기념행사를 계속 개최해온 원인과 이국땅에서 개최하는 기념행사 의미, 성과 등에 대해 설명했다.

고이삼 대표 (사진=고이삼)
고이삼 대표 (사진=고이삼)

제주도 희생자를 위해 이름 바로잡아

2023년 내년은 제주도 4·3사건이 발생한 지 75주년이 되는 해로, 지난 30여 년 동안 고이삼 사무국장은 일본에서 기념행사를 발기하고 참석해왔으며 이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고민해왔다. “이 사건을 반분단운동이라고 정의해야 당시 희생자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이삼 사무국장의 소개에 따르면, 1948년 5월 10일 미군(유엔군)은 남(南)의 단독 선거를 장악했고, 그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남북이 분단되었다.

고이삼 사무국장은 “5월 10일 선거를 앞두고 통일을 외치는 제주도 진보 인사들은 이번 선거가 민족 분열을 초래 할것임을 깨닫고 항쟁에 나섰다. 그러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이들의 활동은 탄압을 당했다. 비극은 4월 3일부터 시작됐고, 11월 들어 미군은 진압 범위를 더욱 넓혔고, 통일을 지지하고 분열을 반대하는 진보 인사들이 대거 폭동을 일으키는 공산주의자로 매도돼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미군정의 배후 원인에 대해 알기 위해 그동안 ‘4·3 모임’은 많은 연구를 하면서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고이삼 사무국장은 이는 미군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미군이 철수하면 국민의 반발을 산 이승만 정부가 곧 무너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군은 무고한 민중들을 학살하고 희생자들을 폭도라고 매도하며 제주도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날조하여 유엔에 보고하고 치안 및 평화유지 명목으로 계속 주둔하게 되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학살당한 민중들은 폭도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다. 고이삼 사무국장은 제주 4·3사건을 반분단운동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민족통일을 위해 희생한 민중들의 헌신을 다시 생각하고 제주 4·3사건이 민족분열을 반대하는 데에 대한 의의를 되새겨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역사 진실을 찾고 화해를 도모하다

‘4·3 모임’은 1988년 첫 기념행사를 제주도에서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당시 4·3 사건의 발생지로 오랜 세월 비방 대상이었고 피해자·가해자의 당사자가 현존하고 있어 제주도에서 공개적으로 행사를 개최하는 데 합의하지 못했다.

고이삼 사무국장은 자신의 한 친구는 행사를 앞두고 자신의 아버지가 경찰로 진압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갑자기 가해자의 친족이 된 충격으로 그는 행사 준비에서 물러났다. 그만큼 그때의 간극은 깊었고 참사가 남긴 상처는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에 ‘4·3 모임’은 행사의 주제를 ‘역사적 진실을 찾고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것으로 정하기로 결정했다.

1988년에 개최한 첫 기념행사는 고이삼 사무국장 등이 예상한 200명을 훌쩍 뛰어넘어 5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 개최 소식이 제주도로 전해져 현지 주민들에게 큰 격려가 됐고, 이듬해 제주대학교 학생회에서도 기념행사를 열었다. 1999년 국회에서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고 올해 10월부터 희생자의 가족과 유족들에게 보상금이 지급됐으며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과거사 진상 규명에 나서게 됐다.

또한 제주4·3사건 당사자의 후손 대표는 10년 전 제주도에서 가해자 후손과 피해자 후손이 공동으로 참사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고 양측이 화해하는 데 성공했다.

고이삼 사무국장은 당시를 기억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뿐만 아니라 지역 간 화해, 참사로 일본으로 피신한 재일동포와 모국의 화해”라고 말했다.

‘4·3 모임’의 미래 과제

 .4,3 7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열린 토론회 사진 맨 오른쪽이 고이삼 사무국장 사진 출처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4,3 7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열린 토론회 사진 맨 오른쪽이 고이삼 사무국장 사진 출처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지난 30여 년간 ‘4·3 모임’은 제주도 4·3사건에 대한 연구가 깊어짐과 동시에 갈수록 많은 학자들이 4·3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교수는 고이삼 사무국장에게 “미국은 제주도 4·3사건에 대해 책임이 크다. 국제법정에서 미국을 고소해야 한다. 시카고대학교의 교수로서, 당신들을 지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고 한다.

고이삼 사무국장은 미국이 제주도 4·3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 ‘4·3 모임’의 향후 노력의 방향이자 미래 과제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미국 국내에도 많은 정의로운 인사들이 봉인된 역사를 해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제주4·3평화재단을 중심으로 소송 준비를 위해 증언할 수 있는 학자를 연결하거나 뉴욕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등 많은 준비작업을 진행해왔다”고 고이삼 사무국장은 소개했다.

“국제 소송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식민주의, 제국주의가 가져온 죄행에 대해 알았으면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4·3사건과 같은 참사가 오늘날에도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주목하며, 식민주의·제국주의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협력을 강화했으면 한다”고 고이삼 사무국장은 강조했다.

※ 고이삼 대표는

출처 제주4⦁3평화재단 발행 (4⦁3과 평화)
출처 제주4·3평화재단 발행 (4·3과 평화)

일본 4·3운동의 이면에는 제주4·3을 포함해 한국 관련 서적을 전문적으로 펴내는 ‘신간사(新幹社)’ 대표 고이삼씨(73)가 있었다. 우도가 고향이다.

현기영의 ‘순이삼촌’과 제주에서 오사카까지 이민사를 다룬 ‘국경을 넘는 사람들’, ‘조선분단역사’, ‘이야기할망-제주의 전설’ 등이 신간사에서 4·3 관련 서적과 현대가 관련 서적들을 200여권 넘게 꾸준하게 발행했다.

특히 1994년 4월 3일을 기념해 제민일보의 4·3 연재물 ‘4·3을 말한다’을 일어판으로 제작한 ‘제주도4.3사건’(문경수.김중명 역)도 신간사가 펴낸 제주4·3 관련 서적 중 하나다.

1988년 결성된 ‘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의 초대 사무국장을 맡으며 4·3 관련 사업을 시작한 후 일본 현지에서 중단없이 4·3운동을 해왔다.

고이삼 대표 관련해서는 2019년 제주mbc에서 4·3 속 재일 제주인 다큐로도 제작된 바 있다.

고이삼 대표는 문경수 교수와 함께 2018년 4·3 70주년을 맞아 제주4·3평화재단이 마련한 국외부문 특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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