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기후 위기 최전선 제주도. 수온 상승, 수목·곤충 등 북방한계선 이동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시급하지만 제주도는 아직 '기후재정' 도입에 미온적인 모습이다. 법적 근거인 지방재정법과 지방회계법 개정이 국회 계류 중이라 지자체가 굳이 나설 이유가 없어서다.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제도(이하 기후예산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짤 때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분석하도록 하는 제도다. 2021년 9월 제정·시행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약칭 탄소중립법)'에 근거한다. 담당 부서는 세부사업 단위에서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효과와 성과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제주도는 올해 예산부터 온실가스 배출 영향을 고려한 기후예산제를 6개국(환경보전국·미래전략국·도시건설국·교통항공국·농수축식품국·해양수산국) 95개 사업에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이들이 올해 추진하는 사업 중 △연구개발비 △민간이전 △시설비 △민간투자 △공기관자본위탁 △자산취득비에 해당하는 1억원 이상 사업에 기후예산서를 작성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자체 마련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 영향에 따라 세부사업을 4개 유형(감축·배출·혼합·중립)으로 분류하고, 도로 건설 등 온실가스를 유발하는 배출사업은 규모를 축소하거나 저감 방안을 모색하도록 했다.
올해 기후예산제 적용 사업은 감축사업 70개, 배출사업 24개, 혼합사업 1개 총 95개로 제주도 전체 예산(7조639억원 규모)의 6.63%(4681억 3400만원)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기후예산제 도입을 관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예산부터 시범 도입한 제주도는 선제적이라 할 만하다. 이를 위해 지자체 사업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 편성지침(안)'도 지난해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전 대덕과 경남이 기후예산제를 전면 도입하면서 탄소중립 사회를 위한 정책적 의지를 밝힌 것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2012년 ‘탄소배출 없는 섬(CFI·Carbon Free Island)’을 선언하며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보다 10년 앞섰던 제주도가 이제는 다른 지자체를 뒤쫓고 있는 모습이라서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관련법 개정으로 국가 예산은 기후 예·결산서를 예산서에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는 아직 의무화 되지 않아 제주도는 올해 확정된 예산서에 '기후예산서'는 따로 첨부하지 않았다. 현재 '성인지 예산서'처럼 따로 공람할 수 없다는 의미다.
예산은 국가나 지자체가 1년 간의 살림살이를 어떻게 꾸릴지 보여준다. 따라서 1년 간 쓸 돈(세출예산)을 살펴보면 제주도정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고, 어디에 주력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제주도 기후예산제 관계자는 일부 예산과 기금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재정운영에 반영해본 경험치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예산 투입 대비 온실가스 감축량을 정량화 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아직 법적 구속력이 없어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기여도 등을 고려한 예산 반영 여부는 사실상 불투명하며, 예산담당 부서조차 제주도 기후예산서가 어떤 양식으로 작성됐는지 알지 못했다. 담당 부서는 도의회에 공개 전이라는 이유로 기후예산서 공개를 꺼렸다.
오영훈 도지사 공약에 따라 기후예산제 도입을 시도하긴 했지만 부서 협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예산 사용 우선순위가 탄소배출 저감 사업으로 이동하려면 서둘러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동시에 기후예산제에 대한 조직 내 인식 제고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