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고기입니다》(김주연 글, 경혜원 그림, 씨드북 펴냄)
《나는 소고기입니다》(김주연 글, 경혜원 그림, 씨드북 펴냄)

“소는 원래 20년을 사는 동물이에요. 하지만 고기가 될 소는 태어난 지 2년 하고도 6개월이면 도축장에서 삶이 끝나요.” 이 책 맨 뒷부분에 나온 글이다. 소가 20년을 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제주도에서 작은 책방을 꾸리고 있다. 책방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다. 책방 일을 마치고 밤마다 우리 집 강아지 둘과 세화읍내로 나들이를 간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멈추면서 오히려 제주도로 나들이 오는 사람들이 줄었다. 가게들은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는 집이 늘었다. 밥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고기를 파는 집은 그렇지 않다. 소갈비, 돼지갈비, 생선회를 파는 밥집은 사람들이 많았다. 세화만 해도 닭을 파는 집이 열 군데가 넘는다. 이런 작은 마을에 큰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모든 닭튀김집이 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길게 쓰는 것은, 동물을 먹는 것을 비난하자는 말은 아니다. 한번쯤은 동물을 배불리 먹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20년을 살 수 있는 소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울타리 바깥 풍경은 뭔가 달라 보여요. 발끝에 닿는 풀밭은 어떤 감촉일까요? 막 뜯어 먹은 풀은 어떤 맛일까요? 언덕에서 뛰놀면, 마음껏 햇볕을 쬐면 어떤 기분일까요?” 이 글은 이 책 가운데에 나온다. 7살쯤 된 여자 아이와 흰색 강아지가 풀밭을 힘차게 뛴다. 그 모습을 울타리에 갇혀있는 송아지가 물끄러미 본다. 그 울타리는 소들이 평생 갇혀 지내는 곳이다. “거실이자 방이고, 화장실이자 놀이터예요. 우리는 평생 이곳에서 먹고, 자고, 싸고, 놀아요.”

텔레비전이나 개인 동영상을 보면, 나들이를 가서 먹는 자리가 많이 나온다. 동물들을 맛있게 잘 먹은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사실 우리 집 강아지 둘도 식물보다 고기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사람도 잡식동물이라 육식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우리 집 강아지를 보면서, 오히려 동물을 먹지 않으려 한다. 동물들이 행복하지 않은 세상은 사람도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아내와 난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면서 동물들을 먹는 밥집을 지나치면서 이런 말을 한다. “고기 못 먹어서 죽은 귀신 있나.”

동물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지만 '적당히' 먹었으면 좋겠다. 아예 안 먹으면 더 좋겠지만. 소가 먹는 곡식이면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소 방귀는 자동차 배기가스만큼 자연을 더럽힌다. 소를 잡아먹으려고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동물을 파는 밥집에 덜 가면 된다. 시장에서 동물을 사오지 않으면 된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소들은 모두 긴 속눈썹을 가졌다. 그 눈만 보면 딱 아름다운 사람 눈이다. 소들은 태어나면 귀를 뚫어서 노란색 귀표를 단다. 그림책에 나온 어떤 소 귀표 번호가 ‘1000 4’다. 천사. 그림 작가가 소들이 천사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천사가 아니래도 좋으니 제 목숨대로 살다가 죽었으면 참 좋겠다. 소도 돼지도 닭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모두 제 목숨대로 살다 갔으면 좋겠다.

내가 꾸리는 책방 한 쪽 구석에는 고양이 사진이 있고 작은 쪽지가 있다.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그 사진과 글은 암 투병을 하던 사람이 준 것이다. 그 분이 많이 아프면서 길거리에서 떠돌다 외롭게 죽는 고양이가 불쌍했나 보다. 아내는 이런 말을 한다. “집에 묶여서 바깥세상을 한 번도 보지 않는 것 보다는 길에서 떠돌다가 죽는 강아지가 더 낫다”고. 제발 동물들을 사람들이 먹으려고 가두어 놓고 기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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