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전망이다.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고 "현 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취지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홍은표 부장판사)는 12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고창건 전국농민총연맹 사무국장과 강은주·박현우 진보당 제주도당 전 위원장에 대한 공판을 진행했다.
이들 3명은 북한 지령에 따라 제주도내 이적단체 'ㅎㄱㅎ'를 결성·운영하면서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씨는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도 받고 있다.
피고인 측은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가 '공소장 일본주의(공소장에 범죄사실과 직접 관련 있는 내용만 기재해야 한다는 법률상 원칙)'에 어긋나는 점 ▲해외 채증 자료의 위법성 ▲증거가 원본이 아닌 사본으로 효력이 없는 점 ▲국가보안법의 위법성 등을 제기했다. 또 북한 측에서 통일정책 노선을 바꾸는 등 사정 변경으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국가보안법은 여러 간접사실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으며, 해외 채증 역시 국제 사법 공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해도 증거능력을 부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최근 대남 오물풍선 등 북한의 도시 경향으로 반국가단체 성향이 사라졌다고 볼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특히 이날 피고인들의 모두진술이 이뤄지기도 했다. 피고인들이 직접 자신의 억울함을 진술하는 자리다.
강씨는 "저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터를 잡고 살고 있었는데, 억울한 누명으로 그간의 삶이 송두리째 뽑히는 것 같다"며 "압수수색 당시 항암치료를 하고 있었음에도 국정원 관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 수 있는 날이 3개월밖에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그동안 가족들과 여행도 다녀온 적이 없는데, 더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이어 "해녀였던 외할머니가 물질한 덕에 이만큼 자랐고, 생활력 강한 제주 여성의 당당한 삶을 배웠다"며 "어린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배웠고, 길가다 멈춰 태극기를 향해 맹세하고, 방공 글짓기를 하며 자랐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4·3 진상규명을 외쳤고 지금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피력했다.
또 "대학생 때도 평화통일을 외치고, 현재 민족 공동 번영과 통일을 이야기했다고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전에도 이러한 행태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첫 단추는 국가보안법 폐지다. 검찰 독재 나라에서 쓴소리 하나 하면 압수수색으로 숨통을 조인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도 모두발언을 통해 "검찰에서 제시하는 증거와 공소사실은 날조됐다. 공정한 재판을 통해 반드시 진실이 가려져야 할 것"이라며 "저는 'ㅎㄱㅎ'이라는 단체도 구속되면서 처음 알았다"고 억울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전농 역사상 제주도민 최초로 사무총장이 됐는데, 이 자체가 북한의 지령이라고 한다. 정당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빨갱이, 이적활동으로 몰고 있다"며 "농어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CPTPP 규탄 농민대회, 해방 이후 최초 농업대회로써 농민 1만여명이 참가한 행사 등 농민 생존권 차원에서 벌인 행동들이 모두 북한의 지령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농 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단체는 외부 지시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구조가 전혀 아니다"며 "윤석열 정권은 반국가단체를 운운하면서 공격에 나선 것이다. 윤 정부는 이태원 특별법, 수많은 민생법안을 거부하고 있고, 저조한 지지율을 반등시킬 수작으로 대규모 노조 탄압 등 여론 조작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판부가 족쇄를 풀어줬으면 좋겠다.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할 것"이라며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4·3 희생자들도 70여년이 지난 이제서야 무죄 판결을 받고 있다.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이제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 사건은 국정원이 기획하고 만들어낸 사건이라고 확신한다. 당시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기지 않을 명분이 필요했고 우리가 그 타켓이 됐다"며 "검찰은 원본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안하는 게 아니라 원본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우리는 거짓된 피의사실로 구속 전부터 간첩으로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소외되고 차별받는 노동자를 위한 활동에 대해 검찰은 존재조차 모르는 북한 지령문을 지어내 반정부 활동으로 몰고 있다"며 "국보법 재판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행하는 재판이라고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부정하는 헌법 위의 군림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검찰은 증거의 적법성과 신빙성 확보 등을 위해 다수의 증인신문을 예고한 바 있다. 이날 공판에서는 국정원 수사관에 대해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7년 캄보디아에서 강씨가 북한 공작원과 회합한 당시, 직접 촬영하고 목격했다고 검찰이 주장하는 인물이다. 다만, 재판부는 비공개를 요청한 검찰과 공개를 요청한 피고인 측의 의견을 종합, 방청객들은 음성만 들을 수 있도록 간이벽을 설치해 진행했다.
재판부는 이날부터 매달 2차례 가량 공판을 열어 심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