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한 배터리 공장에서 난 불로 이주노동자 18명이 숨졌다. 이들은 인력업체에서 파견된 일용직 노동자들로,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에 생경한 건물 내부 구조 속 탈출이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화재는 한국 사회의 ‘위험의 이주화’를 대변한다고 일컬어지며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의 민낯을 드러냈다. 내국인들이 꺼려하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직종에 이주노동자들이 몰리는 데 반해 이들에 대한 보호 체계가 미비했다는 지적이 잇따른 것이다.
제주에서도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과의 공생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이주노동자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 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진단에서다.
지난 20일 오후 한국이민정책학회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이 공동주최한 ‘제주형 외국인 정책 개발을 위한 진단과 과제’ 포럼이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2호관에서 열렸다. 한국이민정책학회·제주연구원·제주대학교 국립대학교육성사업단이 주관, 교육부 한국연구재단이 후원했다.
김도균 제주한라대학교 특임교수는 기획발표에서 “제주는 이민 정책의 보물섬”이라며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무사증’ 제도가 있고,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국가 단위 형태의 이민 정책이 실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제주의 무사증 제도는 관광객 유치만을 목적으로 사용됐다. 무사증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을 활용한 제주의 새로운 이민정책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며 “경기도는 ‘이민사회국’을, 전라남도는 ‘이민정책과’를 마련했다. 제주도 또한 지자체 차원의 이민 정책 전담 부서 신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격으로 근무가 가능한 디자인·IT 등 업계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정주를 돕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 △K-ETA(전자여행허가제) △한류 비자 △관광취업비자(H-1) △통역판매비자(E-7-2)의 확대 도입을 주장했다.
기획발표에 나선 김상훈 천주교제주교구이주사목 나오미센터 사무국장도 ‘무사증’ 제도를 활용한 외국인 정책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김 사무국장은 제주의 농촌 인력난 문제 해결을 위해 무사증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에게 ‘제주 농촌 거주증’을 발급, 합법적으로 일용직 근무가 가능하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사무국장은 “가나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등록 외국인을 고용하는 농가는 97.6%에 이른다”며 “제주에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민은 지난 6월 기준 1만1191명으로, 전체 외국인 중 차지하는 비율은 42.4%로, 전국 평균(29.2%)에 두 배 가까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주지역 농촌의 인력난은 심각하지만 농업 특성상 월급제 형식의 근무 형태가 적합하지 않다. 지속적으로 월급을 지급할 정도로 경제력을 갖춘 농가는 소수에 불과하다”며 “부족한 농업 일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로 충원하기 위해서는 ‘일용직 근로’가 합법화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현행 제도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합법적인 일용직 근무가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체와 일정기간 계약을 맺고, 월급을 지급하며 보험에 가입돼야 한다. 외국인의 일용직 근로는 현행 제도에서 벗어나 있어 암암리에 이뤄져 이를 양지화해야 한다는 게 김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또 “불법체류자는 강제로 줄이기보다는 간절한 수요를 해소시켜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2018년 법무부 단속 및 자진출국으로 8082명의 외국인이 제주를 떠났지만 동년 9394명의 불법 체류자가 생겨났다. 그만큼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주도 인력시장의 간절한 수요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농업에 한정된 시범적인 제도인 ‘제주형 농촌 거주증 제도’ 도입을 제안한다”며 “이 제도는 무사증으로 입국한 외국인이 제주도 농촌에서 일정기간 거주하면서 일하고자 한다면 제주도 차원에서 거주증을 발급하는 방식으로 농촌의 인력 문제를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발표에 나선 김치완 탐라문화연구원장은 “최근 이주노동자의 참사를 다루는 기사에서 희생자인 이주노동자보다는 피해 규모와 위험 정도, 원인과 진압 등에 비중을 둠으로써 이들을 교환가치로 취급하는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원장은 “이주민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기에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면서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라며 “외국인들의 인권 문제를 타자화하거나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우리 자신을 위한 이야기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난민·이주민에게 갖는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두고 “두려움은 사실 그들로 인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비롯한다”며 “타자에 대한 공포는 불만과 좌절의 원인에 대한 오인에서 비롯하는 혐오와 증오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잦은 접촉과 연대라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우영옥 이주사회통합정책연구소장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 소멸 우려로 유학생 인재를 길러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유학생이 지역에 정주할 수 있도록 '지역 맞춤형 체류 생애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창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안전한 외국인 신원 확인 체계 마련을 위해 외국인 행정정보 통합 플랫폼 사업 구축을 지난해 11월 완료했다”며 “외국인 관련 빅데이터 정보 공공 개방을 확대해 중앙과 지방의 이민정책에 협력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