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독일 베를린  PalaisPopulaire에서 제주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진실과 화해의 기록, 제주4·3아카이브’ 주제로 열렸다. (사진=김누리 제공)
지난 14일 독일 베를린 PalaisPopulaire에서 제주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진실과 화해의 기록, 제주4·3아카이브’ 주제로 열렸다. (사진=김누리 제공)

4·3 70주년이었던 지난 2018년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대적으로 전국화에 나섰다. 유명 배우가 동백꽃 배지를 착용하고 유명 가수를 섭외해 추념식에서 시를 낭송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내 역사 교과서에서 4·3의 위치는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해방과 한국전쟁 사이에 짤막하게 언급되는 ‘부록’ 수준에 그친다. (그마저도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진상조사보고서 발간 이전으로 퇴행하는듯한 표현이 등장한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선거 때부터 ‘4·3의 세계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이에 따른 주요 정책으로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4·3특별법 전부개정 이후 수형 희생자들이 직권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고 희생자에 대한 정부의 보상이 이뤄지자 이를 ‘정의로운 해결’이라 명명하면서, 지금까지의 과정이 “과거사 해결의 모범적인 사례”이기에 관련 기록물이 세계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4·3이 대한민국의 역사로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영훈 도정의 정책이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4·3기록물은 세계적으로 알리고 보전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그렇다면 그 가치는 무엇인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4일 독일 베를린  PalaisPopulaire에서 제주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진실과 화해의 기록, 제주4·3아카이브’ 주제로 열렸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4일 독일 베를린 PalaisPopulaire에서 제주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진실과 화해의 기록, 제주4·3아카이브’ 주제로 열렸다. (사진=조수진 기자)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진실과 화해의 기록, 제주4·3아카이브’ 주제로 14일과 16일 독일 베를린과 영국 런던에서 개최한다.

14일 베를린 PalaisPopulaire에서 열린 심포지엄은 댄 스미스 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장의 기조강연과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및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의 주제발표, 베르너 페니히 자유베를린대학교 교수와 플롤리안 펠킹 보훔 루르대학교 교수, 유철인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의 발표 등으로 구성됐다. 

이날 펠킹 교수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국제관계로 보는 제주4·3의 기억’ 주제로 발표했다. 

지난 14일 독일 베를린  PalaisPopulaire에서 제주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진실과 화해의 기록, 제주4·3아카이브’ 주제로 열렸다. 펠킹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4일 독일 베를린 PalaisPopulaire에서 제주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진실과 화해의 기록, 제주4·3아카이브’ 주제로 열렸다. 펠킹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그는 “4·3이 현재 어떤 의미로 기억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에 따라 한국에서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1987년 이전에는 냉전과 반공주의, 독재 정권의 체제 안보 등에 따라 공산주의가 가득했던 제주라고 설명이 됐다면 지금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 이러한 설명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를 벗어난 지역에서는 4·3과 관련한 정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점을 지적했다. 그 예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1일 제주도에서 열린 3.1절 기념 시위에서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하자 분노한 제주도민들이 반발했다. 이에 미군정은 시위를 강경하게 대응해 사태가 악화되었고 이듬해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은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이에 군경 진압 과정 속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를 두고 펠킹 교수는 “그리 간단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남북한이 분단되기 전이었다는 점, 냉전 시기였다는 점, 미군정이 이승만 정권을 지지한 점, 이승만 정권의 지휘 아래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됐다는 점 등이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박물관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며 “특히 이승만 정부가 (피해에 대해)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데 그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역사)교과서에서도 4·3사건에 대한 설명은 일부 출판사에만 나온다”며 “그마저도 미군정이 폭력적으로 진압한 데 대한 책임 부분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4.3 당시 제주 주정공장의 모습(자료사진=4.3아카이브)
4.3 당시 제주 주정공장의 모습(자료사진=4.3아카이브)

또 4·3 당시 제주도 주정공장이 강제수용소로 쓰이면서 이곳에 수용된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적인 군법재판을 통해 죽임을 당하거나 행방불명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마피아 방식”이라고 표현했다. 그 당시 제주도 내엔 형무소가 없었기 때문에 수형인들은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육지부 형무소로 이송됐다. 그 과정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그냥 실종되는 방식이 마치 마피아가 자신들의 세력을 위협한다고 여겨지거나 거슬리는 이들을 처리하는 방식과 같다는 설명이다. 

펠킹 교수는 이 과정에서 행방불명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찾기 위해 서대문형무소를 찾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서대문형무소는 한국에서 매우 유명하고 규모가 큰 형무소다. 하지만 그곳에는 식민시기에 대한 기억을 제외하고는 1987년 폐쇄되기 전까지 여기서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고 짚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진=신동원 제공)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진=신동원 제공)

 

#제주4·3, 인권·민주주의·평화의 모델될 수 있을까

펠킹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기록물인 광주민주화운동 기록과 동학농민혁명기록, 4·19운동 기록 등을 언급하며 이들 모두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에 관한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사건을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에서 어떻게 민주화가 이뤄졌는지를 볼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4·3사건은 그런 특징에 부합하고 등재를 위한 노력이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주도는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유명한 관광섬으로 개발됐지만 4·3사건에 의해 많은 집중을 받지는 못했다”며 “하지만 노무현과 김대중과 같은 대통령이 4·3사건에 대해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제주 모델은 배상이나 처벌 요구가 없는 평화로운 전환과 공존을 위한 모델로서 평화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이러한 모델로서의 4·3의 국제화는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라는 키워드로 남북 관계를 비롯한 한국의 외교정책과 국제사회에서의 자리매김에 있어서 한국의 정체성을 성립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강조해야 하는 가치를 제안했다. 

한편 펠킹 교수에 앞서 댄 스미스 소장은 ‘분쟁과 거짓정보 시대의 기억’ 주제로, 김종민 이사장은 ‘제주4·3, 현황과 기록’ 주제로, 박명림 교수는 ‘제주4·3:인류가 기억해야 할 함축적 역사의 기록’, 베르너 페니히 교수는 ‘이행기 정의를 위한 과거사의 수용’, 유철인 교수는 ‘제주4·3아카이브:진실과 화해의 기록’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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