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이면 반쯤 피어있겠지?
곶자왈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노란 열매
마소들도 뒷걸음치게 하는 잎에 돋아있는 무시무시한 가시와
왕성한 번식력의 생태계 교란 외래식물 '왕도깨비가지'는 자람 터를 넓혀간다.


바람이 머무는 숲길...
색깔을 입힌 숲의 주는 초록의 생명력
겨울 푸르고 봄에 낙엽이 떨어지는 신비한 숲
제주의 천연원시림으로 용암이 남긴 신비스러운 지형
생명수의 원천, 자연의 숨소리가 오롯이 남아 있는 생명을 품은 '곶자왈'
가득할 수밖에 없는 따뜻한 기운은 곶자왈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바람을 막아주고 그늘이 되어주는 늘 푸른 숲
빌레와 돌이 발에 채일 정도로 널려있지만 촉촉한 땅의 기운,
돌 틈과 나무 둥지를 따라 곱게 덮인 이끼,
용암에 뿌리를 내려 돌과 함께 뒤엉켜 자라난 생명력,
숲은 조용한 듯 하지만 햇빛과의 전쟁을 치르며
열려있는 곶자왈의 뷰를 만들어냈다.
곶자왈의 봄을 향기로 알려주는 작은 키 나무 '제주백서향'
곶자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신부의 부케를 닮은 하얀 꽃의 진한 향기로 가득 채웠던 제주백서향은
아직은 봉오리인 채로 수줍게 눈 맞춘다.
올해는 대부분의 봄꽃들이 작년보다 개화시기가 많이 늦은 듯하다.




하얀 풍광으로 한라산을 덮어버린 갑작스러운 폭설과 강추위
그리움에 찾은 곶자왈은 아직 한겨울이다.
언 땅을 뚫고 나온 세복수초에서 시작되는 제주의 봄
혹시나 하는 마음은 벌써 굼부리로 향한다.


걷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숲길
눈을 정화하는 하늘 높이 뻗은 빽빽한 삼나무숲
한적한 길 위에는 투박하지만 거슬리지 않는 편안함과 정겨움이 있어 참 좋다.
숲 터널을 지나니 탁 트인 왕이메의 모습이 드러난다.
바람도 멈춘 거대한 굼부리, 아직은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회색 풍경이지만
군데군데 쌓인 눈은 괜스레 설렘을 불어넣어 준다.



잔설이 남아 있는 굼부리
녹색 잎을 만들기 전이라 삭막하지만 겨울과 봄을 품은 초록 치마 '세복수초'
간밤의 추위를 견디고 차가운 눈 위로 나뭇잎을 이불 삼아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민다.
차가운 바닥에도, 돌 틈에도, 나무 밑에도 봄은 소리 없이 찾아왔지만
'노란 세복수초 피는 굼부리'의 설렘은 잠시 숨겨두었다.


눈과 얼음 사이에서 피는 얼음새꽃 '세복수초'
'얼음새꽃'이 더 어울리는 수줍은 모습의 봄의 전령사는
언제쯤 노랑저고리를 보여줄까?
겨울과 봄 사이 심술을 부리는 지독했던 추위로
굼부리의 노란 봄도 아직이다.
하얀 그리움으로 봄바람 타고 자취를 감춰버릴 '변산바람꽃'
햇빛이 다녀가고 바람이 길을 만든 곳에 어김없이 끈질긴 생명력
숲 속에 스며든 하얀 봄 "까꿍! 반갑다, 변산아씨"




바람도 멈추게 해 주는 따뜻하고 포근한 오후의 햇살
하얀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린 가냘픈 몸으로 한껏 뽐을 낸 '변산바람꽃'
햇살을 담은 복과 장수의 상징 '세복수초'
봄을 부르는 생명의 속삭임, 봄바람에 마음까지도 흔들린다.

아직은 차가운 2월..
잠시 머물다 설렘만 남기고 봄바람 타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봄꽃들
물러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새로 시작되는 봄과 힘겨루기를 하며
그들만의 세상, 봄으로 가는 꿈을 꾼다.
한라산, 마을길, 올레길, 해안길…. 제주에 숨겨진 아름다운 길에서 만난 작지만 이름모를 들꽃들.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린 생명의 꽃들과 눈을 맞출 때 느껴지는 설렘은 진한 감동으로 남습니다. 조경기사로 때로는 농부, 환경감시원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고픈 제주를 사랑하는 토박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