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출입국외국인청(사진=다음 로드뷰)
제주출입국외국인청(사진=다음 로드뷰)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소송에서 졌는데도 항소하고 버티면서 난민 신청을 하려는 외국인들을 방치하고 있어요. 법적 사각지대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김상훈 나오미센터 사무국장은 제주국제공항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난민 신청을 시도한 외국인들이 난민 심사도 거부당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행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난민 및 외국인 노동자 지원 활동을 펼쳐온 김상훈 국장에 따르면 현재까지 최소 11명이 난민 신청을 하려 했지만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거부하면서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김상훈 나오미센터 사무국장(사진=양유리 기자)
김상훈 나오미센터 사무국장(사진=양유리 기자)

이들은 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 르완다,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정치적 이유나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인한 박해를 우려해 국적국을 떠났다.

제주도로 입국하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입국 심사 과정 중에 일반적인 여행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이들은 ‘보호대기실’로 이송되었다. 그 안에서 변호사를 수소문해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 제주법원은 탄자니아 출신 난민 신청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난민법 및 국제협약 따라 이들에게 최소한 난민 심사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항소를 제기했다. 이렇게 재판 중인 이들이 총 11명이다.

난민 신청자 '두 번 죽이는' 항소

인도적 지원 책임 민간에  떠넘기는 정부

1심에서 승소한 이들은 몇 개월 간 머물렀던 답답한 보호대기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현재 11명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T-2 비자를 받았다. 그러나 이 비자는 ‘일시적 체류’ 허가보다 ‘일시적 상륙’ 수준이다. 크루즈관광객이 잠시 상륙해서 몇 시간 관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비자가 T-1비자인데, 이와 유사한 수준이다.

이례적이다. 오랜 시간 난민 지원 활동을 해온 김 국장은 "이런 비자를 발급한 사례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취업도, 거주 등록도 할 수 없다. 생존권을 침해받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 현재 항소 상태 인해 난민 신청이 불가능하다.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난민 심사 자체가 유예되는 구조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항소심에서도 패소하고 대법원에 상고하면? 이들의 삶이 얼마나 더 오래 방치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삶이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울타리가 없다. 다른 곳도 아닌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하는 제주도에서 난민법과 국제협약이 보장하고 있는 난민 신청조차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항소하면서 난민 심사 자체가 지연되고, 그 사이 이 사람들은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떠돌게 됩니다.” 의식주를 비롯한 기초적인 생활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결국 민간 인권단체가 나설 수밖에 없다.

김 국장은 “민간 지원단체가 1년 가까이 이들의 주거와 생계를 전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유사 사례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성소수자 난민 인정 문제 아니라

난민법 및 국제협약 준수의 문제

김상훈 국장은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이슈 때 불거진 무슬림 혐오를 떠올리며, 이들이 한국 내 일부 혐오 세력의 공격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김 국장은 특정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성소수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의 난민 심사와 관련된 국내법과 협약을 준수하는지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는 성소수자에 대한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게 맞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닙니다. 여기에 포커스가 맞춰지면 지금의 비인권적인 제도의 문제가 흐려집니다. 성소수자라고 해서 모두 난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국 내 박해가 명확한 경우에는 정당한 난민 신청 사유가 됩니다.”

국내법과 국제협약에 적시된 난민 인정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난민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사례가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 김 국장은 제주도의 무사증 입국 제도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무사증 제도가 오히려 난민 신청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

“다른 지역은 입국 후 난민 신청이 가능한데 제주공항은 무사증 체류 지역이라 공항에서 걸리면 바로 보호시설로 가둬버려요. 이건 제주만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제주국제공항 내에서 반복되는 비인도적 행정 절차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하는 제주도. 하지만 난민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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