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무심코 쓰는 말 가운데 은근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차(茶)’라는 단어다. 누군가는 “다도는 배워봤다”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차 좀 끓여라”라고 한다. 같은 한자를 두고 어떤 때는 ‘다’라 하고, 또 어떤 때는 ‘차’라고 부른다. 같은 글자를 두고 왜 발음은 둘로 갈라졌을까? 이 질문에는 단순한 언어의 습관을 넘어서, 동아시아와 세계 무역, 우리말 역사, 사회문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오늘은 ‘다와 차’라는 두 발음이 어떻게 생겨나고 살아남았는지 살펴보자.
삼국시대, 찻잎에 새겨진 글자
현존하는 신라·백제·고구려 시기의 비문과 유물에는 이미 차 관련 글자가 보인다. 하동 쌍계사의 진감선사 탑비에는 ‘漢茗’, 안압지 발굴 토기잔에는 ‘貞言茶’라 새겨져 있다. 이처럼 茶와 茗이란 글자는 삼국시대부터 등장해 이미 차 문화가 우리 땅에 자리 잡았음을 말해준다.
문제는 그 발음을 어떻게 했느냐는 것이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이미 ‘茶’를 다(TA)에 가까운 소리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활발했던 교류를 감안할 때, 신라와 백제, 고구려 역시 유사한 소리를 썼을 가능성이 크다. 기록은 부족하지만, “다”라는 음은 최소 천년 넘게 이어진 고대적 흔적이었던 셈이다.
고려시대, 분명히 확인된 ‘다’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그리고 수많은 문집에서 차는 거의 전부 ‘茶(다)’로 기록된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송나라 사신 손목이 남긴 「계림유사(鷄林類事)」다. 그는 고려 사람들의 말을 적으며 “차를 ‘다(茶)’라 하고, 찻숟가락을 ‘다술(茶戌)’이라 한다”라고 기록했다.
이 기록만으로도 고려인들이 확실히 ‘다’라는 소리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우리가 쓰는 ‘술(戌)’이 숟가락 단위라는 점과 맞물려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곧, 고려의 차 생활은 발음에서도 중국 본토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시대, '차'와 '다'의 공존
훈민정음 반포 이후 ‘茶’라는 글자는 ‘차’라는 소리로 굳어져 일상에 정착한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茶: 차다, 茗: 차명”이라 분명히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대부 사회에서는 여전히 한문 발음 ‘다’를 고수했다. 한글을 즐겨 쓰는 서민들은 자연스레 ‘차’라 불렀다. 그래서 조선은 문자와 계층의 분화 안에서 ‘다’와 ‘차’가 공존한 독특한 시대였다.
예)
- 순우리말 복합어: 차 한잔, 찻물, 찻잎 → ‘차’
- 한자 복합어: 다방, 다과, 다원, 다례 → ‘다’
- 혼용: 다례(차례), 다반(차반)
- 차 종류: 녹차, 유자차, 대용차 → ‘차’
지금까지 이어지는 발음의 혼용 규칙은 사실 이때 자리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보이는 발음의 두 갈래
여기서 꼭 짚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차를 뜻하는 말은 두 갈래뿐이라는 점이다.
- ‘다/테(ta/tea)’ 계열: 중국 북방어, 관화에서 유래. 영어 tea, 독일 Tee, 불어 thé, 네덜란드 thee 등이 모두 이 계열이다. 이는 대항해시대, 네덜란드 상인들이 ‘te’발음을 쓰던 푸젠(福建)·광둥 지역 방언을 서구에 전하면서 확산했다.
- ‘차/cha’ 계열: 중국 남방과 실크로드를 통한 발음. 러시아의 chai, 인도의 chai, 이란의 chay, 터키의 çay 등으로 이어졌다. 육로 교역로에서 전해진 발음이 이 계열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말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품었다. 사대부의 ‘다’, 서민의 ‘차’. 결국 한국어 속 ‘차와 다의 공존’은 단순한 언어현상이 아니라, 세계사 속에서 교차한 차 무역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의 적응
조선 이후로는 점차 ‘차’가 더 강력하게 자리 잡는다. 특히 차를 가공해 이름을 붙일 때, “유자차, 인삼차, 감잎차”처럼 ‘차’가 들어가지 ‘다’라 하지 않는다. 반대로 제도와 의례, 한자 기반 문화에서는 여전히 ‘다’가 건재하다. “다례, 다방, 다식, 다과” 같은 단어가 대표적이다.
이는 곧 언어가 상황과 맥락에 맞추어 사용된다는 전형적 사례다. 일상에서는 찻주전자와 찻잔이 있고, 학문과 의례에서는 다도가 있다. 두 단어가 함께 공존하며 우리말 속 차 문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차'도 옳고, '다'도 옳다
‘차’와 ‘다’는 이제 쓸데없는 다툼의 대상이 아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는 게 아니라, 어느 맥락에서 쓰이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어는 이 두 발음을 모두 품으며 살아왔다.
다(茶)’라는 글자는 멀리 중국 당나라에서 시작해 삼국시대를 거쳐 우리 땅에 뿌리내렸다. 고려 사람들은 다라고 불렀고, 조선 사람들은 다와 차를 함께 불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일상에서는 ‘차’라 하고, 전통과 제도 속에서는 ‘다’라 한다.
그러니 누가 “녹차는 차라고 하고, 다도는 왜 다도라 해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해주면 된다.
“차와 다, 둘 다 옳다. 우리가 차를 마실 때는 ‘차’, 차를 예로 나눌 때는 ‘다’다.”
하나의 글자 속에 이렇게 긴 역사와 문화의 층위(層位)가 담겨 있다니, 참 흥미롭다. 오늘 차 한 잔을 마시며, 입가에 스미는 맛만이 아니라 그 한 모금 속에 담긴 긴 시간을 함께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마시는 차는 입안의 향긋함에 더해 언어와 문화의 긴 역사를 함께 음미한다면 더 깊고 더 향기롭게 다가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