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도청 소통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2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도청 소통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민생올인”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1년 전 2019년 새해를 맞아 내걸었던 다짐이다. 그는 개인 유튜브 계정 ‘원더풀TV’를 통해 이 사자성어(?)를 붓글씨로 정성 들여 쓰는 모습을 담았다. 

그렇게 완성한 신년 휘호를 들고선 “민생을 보살피는 데 제 모든 것을 ‘몰빵(집중 투자의 속어)’, 올인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다짐은 지사 집무실 옆 소통회의실 벽에 현판으로 걸렸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뒤 ‘다짐’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걸려있었지만 정작 이를 쓴 장본인의 말에선 그때 그 ‘다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22일 오후 원 지사는 소통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앙정치권의 부름에 기다렸다는듯 한달음에 달려간 ‘광속(光束)’ 행보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박형준 혁신통합추진위원회(이하 통추위) 위원장의 보수통합 신당 합류 요청부터 수락 입장문 발표, 통추위 전체회의 참석,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면담까지. 모두 만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1일 오전 제주도청 탐라홀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김관모 기자)
지난해 7월1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1일 제주도청 탐라홀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무소속으로 나선 원 지사는 “‘제주도민당’이 저의 당이고 원희룡 정치의 기반”이라며 “중앙정치는 바라보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최근 신년 대담까지만 해도 “당장은 중앙정치가 아닌 도민만 바라보겠다”던 그였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입당 또는 중앙정치로의 복귀를 결정하기 전엔 반드시 도민의 뜻을 묻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이날 취재진이 이번 신당 합류 결정에 도민의 의견을 물어보는 과정을 생략한 이유를 묻자 원 지사는 “‘일반 도민’이라도 의견을 듣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하겠지만 일단 급한 상황이라 ‘상징적’으로 의논을 드려야 하는 분들에게 유선상으로 (말씀을) 드렸다”며 “절차가 조금 미비한 점은 죄송하다”고 답했다. 

의견을 들을 대상을 ‘일반 도민’과 ‘상징적인 분들’로 굳이 나눠 표현하는 원 지사에게 우선순위는 적어도 ‘일반 도민’은 아닌 셈이다. 중앙정치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급한 상황’에선 배제할 수 있는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일반 도민의 의견이 중요한 순간은 선거 기간 뿐이었다. 

▲원희룡 후보 캠프에서 지지자들이 원희룡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고 있다.@사진 김관모 기자
지난 2018년 6월13일 원희룡 후보 캠프에서 지지자들이 당시 원희룡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고 있다.(사진=제주투데이DB)

원 지사는 1차산업, 제2공항 갈등, 경기침체 등 제주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업무 공백에 대해 우려하는 질문엔 “염려하지 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고 일축했다. 

‘감히’ 자신하는 이유는 더 놀라웠다. “1차산업 같은 도지사가 직접 챙겨야 하는 업무에 대해선 조금도 소홀함이 없도록 유념할 것”이라면서도 “제2공항과 관련해선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은 해야겠지만 도가 직접 할 것은 별로 없다. 당장 도지사가 지휘 감독해야 하는 업무 자체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제주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사안을 두고 제주도정의 수장이 직접 나설 일이 아니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는 상황이다. 

이날 원 지사는 “탄핵 이후 국민들이 (현 정권에 대해) 실망하고 절망하는 부분에 대해 보수가 역할을 해야한다”며 ‘도민’보다 ‘국민’을 더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원 지사가 서면(입장문)을 통해 보수통합 신당 합류의 뜻을 밝힌 뒤 공식 석상에 가장 먼저 얼굴을 내비친 곳은 제주도가 아닌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통추위 전체회의였다. 

그가 도지사 후보였던 시절 바라보기만 한 ‘도민’은 이제 한참 후순위로 밀려난 듯하다. 후보 시절 그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제주도민당’이 알고보니 원 지사의 중앙정치 무대로 돌아가기 위한 기반이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날 기자회견과 관련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제는 도민이 도지사를 버릴 때가 온 것 같다“며 “원 지사가 다시 서울시민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면 지금이 적당한 때“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1년 전 그가 쓴 다짐 ‘민생올인’은 당분간, 어쩌면 남은 임기 동안 지금과 같은 자리에 걸려있을 것이다. 민생을 보살피는 데 올인하겠다는 그때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망정 중앙정계 복귀를 위해 민생을 걸어버리는(올인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지난 2019년 새해를 맞이하며 원희룡 지사가 직접 붓글씨로 쓴 신년 휘호. 제주도청 소통회의실 벽에 현판으로 걸려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2019년 새해를 맞이하며 원희룡 지사가 직접 붓글씨로 쓴 신년 휘호. 제주도청 소통회의실 벽에 현판으로 걸려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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