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읍 고성리 영등굿 중 요왕맞이. (사진=신창범 제공)
성산읍 고성리 영등굿 중 요왕맞이. (사진=신창범 제공)

*이 글은 굿과 신화에 대한 한진오의 <모든 것의 처음, 신화>를 텍스트로 하여 지금 여기 제주와 제주사람에 대한 나의 오랜 생각꺼리를 정리하는 작업이며 제주것이 되기 위한 육짓것의 몸짓이라 하겠다. 또한 내 견해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접근보다 나의 느낌이나 단편적인 시각에 그침을 밝혀둔다.

한진오는 머릿글에서부터 제주사람을 들고 나온다. 끝내 ‘제주사람으로 살아남기’의 어려움을 말하는데 이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방식과 사유를 오롯이 지키는 제주사람으로 살아남는 투쟁’이라 한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방식과 사유란 뭘까. 이를 지키고 살아남는 싸움이란 어떤 걸까. 거기에 외지출신 제주민의 자리는 있는가.

#원악과 변방과 식민의 사이

글에는 제주를 일컬어 원악(遠惡)의 섬이라고 하였다.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지옥 같은 변방의 섬이란 말일 터. 역사 속의 삼별초의 난, 목호의 난, 중앙정부에 의한 억압과 수탈의 시대, 일제하 본토사수의 전방군사기지 그리고 4·3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국가폭력과 전란의 고초를 온몸으로 당해낸 섬땅 아닌가.

식민(植民)이라는 말도 나온다. ‘사람을 심다’라는 말인데 농사가 제 것을 심고 거두기 위해서 잡초를 뽑고 땅을 개간하는 일임을 빗대어 볼 때 본디 자라던 것들은 잡초나 잡민으로 제거되거나 새롭게 쓸모를 만들어 신민으로 개조되거나 그 땅을 일컬음을 알겠다. 한진오는 제주도를 식민지나 다름없는 땅으로 본다. 지배권력(중앙 육지)에 복속하는 피지배주민(변방 섬)의 대입은 자연스럽다.

이러한 억압의 고통은 현실의 문제를 주술적인 힘으로 해결하길 꿈꾸게 해, ‘1만8천에 이르는 신들과 그들을 향한 기원의 굿판을 벌여놓았다’고 한다. 외세와 억압에 분연히 일어난 민란의 장두 이재수는 대정본향당에서 출정제를 올렸다고 한다. 언론에서 해프닝으로 치부한 1960년대 제주독립운동 사건도 제주민들의 뿌리깊은 억압에 대한 해방의 의지로 볼 수 있지 않느냐고도 한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방의 억압에 항거한 평안도 홍경래의 난이나 아예 외세와 학정에 종교의 차원에서 전투를 치른 동학전쟁도 있지 않은가. 혹 제주의 이러한 신적 세계는 억압의 고통과 더불어 그이의 말처럼 이른바 삼재의 섬, 수재 풍재 한재의 자연적 악조건과 화산섬, 이는 일반 섬과 달리 섬의 고립과 더하여 섬 속의 고립, 즉 물(하천)이나 산줄기로 이어진 연결이나 교류가 쉽지 않은 고립의 산물은 아니었을까.

변방의 섬 제주의 중앙권력에 의한 억압의 고통이 특별할 수는 있지만 특수한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섬 밖의 외력을 강조하는 일이, 그에 따른 제주신화의 설정이 자칫 피해 의식이거나 그 이해를 그르치는 까닭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제주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4·3 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볼 것이다)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제주굿판이 쇠락, 소멸되어가는 이유 또는 이를 지켜내야 할 이유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외세의 억압에 대한 저항이나 주술적 세계관의 필요라면 여전히 이러한 침탈(자본과 문명의 난개발에 따른 자연생태파괴 이에 의한 주민의 공동체적 삶 파괴까지 포함한)에 대한 대항의지로서 설 자리를 가질 것이다. 혹 그것이 지리나 지형적 특수성에 크게 기인한 것이라면 이를 상보하거나 더 나은 방편이 보일 때 그 쇠락과 소멸은 불가피한 것이 되지 않겠는가.

예술공간 이아에서, 한진오 작품. (사진=이성홍)
예술공간 이아에서, 한진오 작품. (사진=이성홍)

#주술적 사실주의에 대하여

- 주술적 사실주의가 편치않다

주술적 사실주의, 원래 매지컬 리얼리즘의 한진오 버전이다. 마술적(마법적) 사실주의보다 와닿는다. 기본적으로 ‘인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사이의 신비스러운 관계를 밝히는 리얼리즘’이라고 한다. 그이는 다른 글에서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말도 안 되는 묘사로 말이 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개념이나 범주가 불확실한대로 내식으로 풀어보자면 ‘우리의 현실은 경이롭다(또는 한진오의 말대로 말도 안되는 세상이다)’를 전제로 ‘시공을 뛰어넘는 초시간적 문법’으로 당대의 현실에 접근하거나 해석하면서 그 사회의 총체(전통)적인 정체성을 밝히고자 하는 흐름이랄까. (대표적으로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이 있다. 참고로 나는 읽지 않았다.) 

그이가 이 생경한 개념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신화적 문법(사유)과 주술적 사고가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음을, 리얼리즘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이는 신화는 ‘고통스런 삶의 질곡에서 간절히 이루고자 하는 사연을 담은 뚜렷하고 현실적인 리얼리즘의 정수’라 한다. 또 신화를 현실을 초월한 판타지로만 보아서는 백소지권장(흰종이를 태우는 의례)에 담긴 주술적 사실주의를 가늠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신화(신화적 문법)을 주술적 사실주의라 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굿 속의 주술을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까. 모든 문학(예술)작품이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면 그 속에서 리얼리티를 구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사실주의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은 무엇보다 리얼리티를 앞세우기 때문 아닐까.

신화는 오히려 현실의 질곡이나 극렬함 간절함을 시공간을 아우르는 추상성 상징성으로 보편적 공감 또는 쾌락을 자아내도록 하는 장치 아닌가. 그것이 또는 그래야만 정신적 토양이나 베이스를 이룰 수 있는것 아닐까. 이때의 신화는 주술이고 판타지겠는데 거기에 사실주의를 붙여야 할까.

그이는 현기영의 <순이삼촌>의 구절을 들어 “시공을 뛰어넘는 초시간적 신화의 문법”이라 칭한다. 그 구절은 시공을 가로지르는 시대적 아픔을 빼어나게 묘사한 것인데 판타지(상상)로서의 소설의 화법과 테크닉이라 치면 이를 ‘신화의 문법’이라 이름 할 수 있을까

다음으로 ‘주술적 사고’가 있다. 그이는 제주민에게 회자되는 이덕구전설을 들어 ‘제주사람들의 심성사에 반영된 주술적 세계관이며 신화적 사유’라 한다 주술적 사고의 예가 되겠는데 아기장수설화나 부풀려진 영웅담은 스토리텔링의 단골 레파토리 아닌가. 지리산에 가면 남부군사령관 이현상 장군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듯이.

그렇다면 신화든 주술적 사고든 현실을 반영한 것이지만 그것이 가지는 비유와 비약만으로 주술적 사실주의라는 이름을 얻기엔 힘에 부쳐 보인다.(백소지에 빗댄 4.3 평화공원의 백비를 주술적 사실주의로 보는 건 다소 황당해 보인다.)

이는 앞머리에서 던졌던 질문, ‘조상 대대로 살아온 방식과 사유를 지키며 제주사람으로 살아남기’의 리얼리티 또는 현재성을 획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4.3예술제 평화공원에서 김정훈 작품
4.3예술제 평화공원에서 김정훈 작품

#굿은 미개한가

먼저 한진오의 글을 살펴보자. ‘제주의 굿은 미개한 야만이었다. 야만의 반대말이 개발이라는 세뇌가 제주의 시간을 점유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제주사람이기를 포기했었는지도 모른다.’ 그이는 또 글의 앞머리에 자신의 글을 국가폭력과 난개발로 인한 제주의 정신문화와 자연환경의 파괴를 고발하는 사회적 시선이 관통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제주 굿의 현재적 시선은 늘 그이가 아파하고 고민하고 해법을 찾고자 부둥켜안고 있는 지금 여기 제주의 모습에 대한 피붙이로서의 애정이며 한진오의 최고의 덕목일 게다. 끝내 그이는 제주 굿을 미개한 야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제주의 정신문화 파괴를 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제주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일로 간주한다.

한진오의 발언에서 다시 미개와 야만에 주목한다. 미개의 댓말이 뭘까 개화(開化) 아닐까. 야만의 댓말은 문화(文化) 아닌가. 그 기준은 뭘까. 이는 살림살이가 아닐까. 먹고사는 문제 말이다. 개화와 문화가 말그대로 변화하는 것이라면 제주의 정신문화는 파괴되었는가. 그 어디쯤 이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그이는 뱀 대신 뱀보다 더 징그러운 물신숭배의 욕망이 똬리를 틀었다고 한다. 1만8천 신들의 고향, 제주임에도 더 이상 신앙의 대상이나 거룩한 종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신앙과 종교는 신성하고 거룩한 것인지 물어야 할 때다. 물신을 숭배하는 일은 잘못되었는가. 

마을신을 모시고 조상신을 모시고 요왕신을 모시고 이는 무엇 때문인가. 본풀이를 통하여 신의 내력을 밝히는 일은 왜 중요한가. 그 내력을 통하여 영험함을 빌려 끝내 부귀와 안녕을 구하거나 취하고자 함이 아닌가.

척박한 땅을 호미질하면서 비옥한 땅을 바랠 것이고

물이 귀하니 첨벙거릴 수 있는 맑은 물을 원하고

물질하는 잠수(녀)는 잔잔한 바다와 무사무탈을,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살이 앞에는 그나마 끼니라도 때울 수 있는 한 톨의 곡식과 한 덩이 밥을 빌었겠다.

그것이 물신 아닌가, 혹 숭배하는 물신의 대상이 노골적이거나 내용이 달라진 것 아닌가. 어찌보면 그것이 개화고 문화는 아닐까.

그이는 스스로 제주사람이기를 포기했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어떤 토박이의 말처럼 관광객이 열광하는 제주의 빼어난 자연풍광이 제주민들의 살륙의 현장이며 간난과 신고의 삶터였다면 척박한 땅과 물허벅과 지슬모밀의 밥상이, 설문대와 영등할망의 휘몰아치는 치맛바람이 각박한 자연환경이 여전히 제주사람의 개화고 문화여야 하는가.

다시 원점이다. 다시 제주사람이다. 지금 여기 제주사람은 누구이고 무엇인가. 그전에 제주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4·3을 들여다보자. 제주사람이거나 제주 사는 사람이면 피해갈 수 없는. (계속)

이성홍. (사진=정미숙 작가)
이성홍. (사진=정미숙 작가)

제주에 살러온 8년차 가시리주민이다. '살러오다', 한 때의 자연을 벗삼고 풍광을 즐기고자 함이 아니라 끼니를 챙기고 텃밭을 일구고 호롱불 아니라도 저녁무렵 은근한 난롯가에서 콩꼬투리를 까고 일찌감치 곤한 잠들어 내일의 노동을 준비하는 생.활.자, 그리 살고싶다, 그리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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