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해 4·3해원굿, 서귀포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어느해 4·3해원굿, 서귀포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이 글은 굿과 신화에 대한 한진오의 텍스트를 통하여 지금 여기 제주와 제주사람에 대한 나의 오랜 생각거리를 정리하는 작업이며 제주것이 되기 위한 육짓것의 몸짓이라 하겠다. 또한 내 견해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접근보다 나의 느낌이나 단편적인 시각에 그침을 밝혀둔다.

#들어가면서

제주에 터 붙이고 살면서 마냥 좋아만 보이던 제주의 모습이 내부인의 눈으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큰 생각거리 중의 하나가 제주다움 또는 제주스러움이었다. 돌문화공원도 해녀박물관도 들렀다. 제주다움을 표방한 돌하르방공원도 구경하였다. 4·3 평화공원도 너분숭이도 가보았다. 어찌 보면 위의 것들이 모두 제주며 또 어느 것도 딱히 제주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워보였다.

그런 가운데 한진오의 제주굿을 만났다. 그이는 “제주의 면면한 정신문화를 이해하고 만나려면 제주의 굿판을 들여다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나에게 굿은 요란스런 복색에 칼 춤추는 알록달록 오방색 천들이 나부끼는 그 아래 마을아낙들이 모여앉은 미신적 제의 정도로 여겨왔음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이는 슬로건처럼 “굿처럼 아름답게”를 주창하며 ‘누가 제주사람인가’를 물어왔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애써 들여다보고자 한 제주다움이 어쩌면 ‘제주사람은 누군가’이며 끝내 내가 가닿고자 하는 지점임을 알아차린 때문이랄까.

굿 퍼포먼스 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한진오.(사진=김재훈 기자)
굿 퍼포먼스 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한진오.(사진=김재훈 기자)

어쩌면 한진오는 벽 같은 것이었다. 제주에 터 붙이고 산 지 7년이다. 조금은 제주를 알 것 같고 조금은 제주사람이 된 것도 같고 뭔가 제주를 향하여 내 목소리를 내어도 좋을 법하다 싶은데 한진오가 팔짱을 끼고 ‘네 까짓 게 감히’하면서 가로막고 서 있는 느낌이랄까.

제주어(왜 제주말이라 안하고 제주어라 고집하는지 모르겠지만)로 주고받는 동네삼춘들의 대화를 알듯 말듯 한데 굳이 알아듣는 체를 해야 할 거 같은. 제 소개할 때 한날한시라도 이르게 입도했다고 해야 조금 더 인정받을 거 같은. 어쨌든 면접을 치르는 수험생 모습 같은 육짓것의 초조함을 지긋이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그러던 중 그이의 강의를 듣고 맞춤한 책을 만났다. 한진오의 <모든 것의 처음, 신화>.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잡았다. 이는 ‘쥐거나 들다’는 뜻이 아니라 그 내용을 해체하듯 샅샅이 뜯어본다는 나만의 독법을 이르는 것이다.

한진오 글 / 153*220 / 978-89-94474-99-1 [03380] / 359쪽 / 2019. 11. 30. / 28,000원 / 한그루
《모든 것의 신화》 책 표지. 

그이의 슬로건처럼 되어버린 ‘굿처럼 아름답게’에 대하여 도발적일 수도 있는 ‘굿은 아름다운가’라는 제목을 쓰면서 또 한 번 육짓것으로서의 자기검열을 거친 것도 같다. 어쩌면 굿과 신화를 통하여 제주의 영성과 시원에 가닿고자 하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나의 글읽기 또한 누가 제주사람인가 (제주사람은 누구인가,와 느낌이 다르다) 또는 나는 제주사람인가 (제주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몸짓이라면 그 길 위에서 만난 한진오는 나를 뜨겁게 안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먼저 그이의 글은 아름답다. 그이의 말대로 “제주의 무속과 신화를 주제 삼은 예술과 사회에 대한 비평이며 르포”라고 할 때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겠는데 무엇보다 자신의 주장을 적절한 인용과 보기, 적확한 언어를 통하여 전달하는 일, 말글살이의 첫 번째 덕목이며 아름다운 글의 요체라 하겠다.
 
무엇보다 굿과 신화에 대한 또 역사와 사회에 대한 그이의 해박하고 균형 잡힌 지식은 오랜 공부와 부단히 현실을 투영하려는 고민과 발로 뛴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겠다. 많은 부분 그이의 주장과 반하는 내 견해를 드러내겠지만 기본적으로 한진오의 뒤를 쫓는 것이며 그이의 열정과 노고, 고향 제주를 항한 더없는 애정에 경의를 표한다. (계속)

이성홍. (사진=정미숙 작가)
이성홍. (사진=정미숙 작가)

제주에 살러온 8년차 가시리주민이다. '살러오다', 한 때의 자연을 벗삼고 풍광을 즐기고자 함이 아니라 끼니를 챙기고 텃밭을 일구고 호롱불 아니라도 저녁무렵 은근한 난롯가에서 콩꼬투리를 까고 일찌감치 곤한 잠들어 내일의 노동을 준비하는 생.활.자, 그리 살고싶다, 그리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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