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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7일, 싸락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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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7일, 싸락눈이 내렸다
  • 조수진 기자
  • 승인 2021.09.06 2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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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투데이18주년 창간행사《제투, 길을 걷다》③
김평선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사무국장 해설
지난 5일 서귀포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양용찬 열사의 집에서 양용호씨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5일 서귀포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양용찬 열사의 집에서 양용호씨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11월7일날 그날은…. 그날이 그렇게 싸락눈이 오고 그랬어. 그렇게 추웠어. 그날 낮에 날씨가 따뜻해서 봄 잠바 입고 있다가 밤에 연락받고 그 차림으로 갔는데 얼어 죽는 줄 알았으니까. 그렇게 춥더라고. 누군가 영안실에 와서 패딩을 나한테 입고 있으라 하면서 벗어줬지.”

1991년 11월7일. 양용찬 열사의 형인 양용호씨(61)는 그날을 몹시 추웠던 날로 기억했다. 

지난 5일 제주투데이 18주년 창간 기획 <제투, 길을 걷다> 세 번째 답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제주투데이와 양용찬열사30주기 공동행사위원회가 공동주최하고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후원했다. 

온라인 접수를 통해 사전 신청한 시민들이 참여한 한 이번 답사에서 김평선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사무국장이 해설사로 나서 양용찬열사묘역과 4·3성 서문, 양금석 가옥, 양용찬 열사의 집을 안내했다. 

지난 5일 서귀포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양용찬 열사 묘역에서 '제투, 길을 걷다' 답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성인 대표)
지난 5일 서귀포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양용찬 열사 묘역에서 '제투, 길을 걷다' 답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성인 대표)

오전 내내 이따금 가는 비를 흩뿌리던 하늘은 마지막 답사 장소인 양용찬 열사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퍼붓듯 굵은 비를 쏟아냈다. 우산도 소용없던 날씨에 열댓 명의 답사 참가자들이 헐레벌떡 양 열사의 집 녹색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 안에 있던 양용호씨와 양용찬 열사의 어머니 정순자(83)씨는 수건을 건네주며 손님들을 반갑게 맞았다. 양씨는 마루에 앉아 세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30년 전 겨울 싸락눈이 내리던 날 밤을 떠올렸다. 

“(시위하다 분신하는 건)TV에서나 봤지. 남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었어. 그 해가 1991년이었는데 오죽하면 분신정국이라 할 정도였는데도 내 일이 아니라고만 생각했거든. 그때 신문 보니까 도지사라는 사람이 용찬이 일을 두고 ‘젊은 애들의 생명 경시 풍조’라는 얘기를 했다고 나오더라고.”

1991년 11월7일 스물다섯살 청년이었던 양용찬 열사는 “제주도개발특별법 저지”를 외치며 분신을 하고 서귀포나라사랑청년회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당시 제주도정 수장은 같은 해 8월 임명직 도지사로 부임한 우근민 전 지사였다. 

지난 1991년 9월7일 옛 제주교육대학 앞에서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범도민회가 결성돼 거리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주참여환경연대)
지난 1991년 9월7일 옛 제주교육대학 앞에서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범도민회가 결성돼 거리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주참여환경연대)

당시 정부는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지금의 국민의힘 전신)과 함께 “제주도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었다.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관광단지 중심의 개발, 투자 유치와 규제 완화 등을 담고 있었다. 

이에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재벌을 위한 ‘특혜입법’이라는 논란과 난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도내 반대 여론이 거셌다. 특별법 제정 과정이 순탄치 않자 당시 노태우 정부는 이를 추진할 인사를 도지사 자리에 앉혔다. 

정부의 특별법 제정 강행 움직임에 제주사회 곳곳에서 선전전과 집회가 열렸다. 양 열사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써, 생활의 보금자리로써의 제주도”를 꿈꾸고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관광개발 계획에 극렬히 분노하며 스러져갔다. 

양용찬 열사 묘비 뒷면에 김수열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양용찬 열사 묘비 뒷면에 김수열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양 열사는 차비를 아껴 20~30만원짜리 전집을 살 만큼 책을 좋아했다. 또 친구들에게 마을과 오름을 설명하길 좋아했다. 아침마다 운동 삼아 다닐 만큼 한라산을 좋아했다. 말수는 많지 않았지만 어딜 가든 친구가 생겼다. 양용호씨에게 양 열사는 그런 동생이었다. 

“하루는 밤 9시쯤 나한테 전화가 온 거야. ‘무사(왜의 제주어)?’ 물으니 ‘경찰서에 있수다’라더라고. 유인물 돌리다가 경찰이 잡아간 모양인데 그때 동생이 (특별법 제정 반대)시위하는 걸 알았지. 그래도 별 걱정은 안 했어. 믿었으니까.”

김평선 사무국장에 따르면 양 열사의 일기장엔 그가 가졌던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담겨있다. 주인인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못 내고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못 짓게 하고 다른 일을 하라고 만드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개구리마냥 불룩 튀어나온 배를 채우기 위해 당신의 굽은 허리로 일구어 낸 자갈밭을 빼앗아간 저들. 당신의 호미로, 이 아들의 괭이로 쫓아내야만 합니다.”
-양용찬 열사 ‘어머님 전상서’ 중

양용찬 열사의 어머니 정순자씨(왼쪽)와 큰 형 양용호씨(오른쪽). (사진=박소희 기자)
양용찬 열사의 어머니 정순자씨(왼쪽)와 큰 형 양용호씨(오른쪽). (사진=박소희 기자)

양씨는 동생이 군대를 제대한 뒤에도 대학교에 복학하지 않아도 “아랑허쿠다(알아서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찾아온 동생의 죽음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가족으로서야 당연히 (그런 선택을)안했었으면 하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봤으면 싶지. 젊었으니까 충격도 컸고, 너무 아쉽지. 아침마다 일어나서 내다보면 올 것 같았어. 1년 동안을…. 많이 아쉽지.”

양씨는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경찰로부터 “빨갱이들과 어울려서 그렇게 된 거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는 “마을에서도 동생의 죽음을 좋게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며 “욕만 안 해도 다행이겠다 했는데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동생의 뜻에 공감해주고 입장을 이해해주니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인사했다. 

또 “30년이 지나다 보니 동생이라도 얼굴이 가물가물해지곤 하는데 내 얼굴이 동생 얼굴”이라며 “동생 사진을 보면 내 얼굴이냐고 물을 정도로 닮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지난 5일 서귀포 남원읍 신례리 일대에서 진행된 '제투, 길을 걷다'에서 김평선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사무국장이 해설을 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5일 서귀포 남원읍 신례리 일대에서 진행된 '제투, 길을 걷다'에서 김평선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사무국장이 해설을 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이날 김평선 사무국장은 “양 열사가 남긴 과제는 ‘제주다운 제주’가 아닐까 한다”며 “90년, 91년에 외쳤던 제주를 지켜야 한다는 구호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다. 특별법 개정과 관련해서 제주사회를 새롭게 바꿔나가는, 전환하는 논의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광성 양용찬열사30주기 공동행사위원회 상임공동대표는 “양용찬 열사가 만들려고 했던 제주다운 제주의 마지막 페이지를 도민들이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한편 양용찬열사30주기 공동행사위원회는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를 중심으로 제주여민회, 제주주민자치연대 등 도내 47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등으로 구성돼 지난달 출범했다. 

위원회는 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전면 개정하기 위한 사업을 전개하고 관련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30주기를 맞아 신례리 묘역에서 추모제를 열고 전태일 50주기를 함께 기억하기 위한 '전태일 연극'도 진행한다. 

아울러 양용찬 열사에게 제주대학교 명예졸업장 수여와 대학 내 기억공간 설치를 위해 시민들의 온라인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일 서귀포 남원읍 신례리 일대에서 '제주, 길을 걷다' 답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성인 대표)
지난 5일 서귀포 남원읍 신례리 일대에서 '제주, 길을 걷다' 답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성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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