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이용자 김도경씨(왼쪽)와 이지혁씨가 19일 제주시 이도2동 일대에서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휠체어 이용자 김도경씨(왼쪽)와 이지혁씨가 19일 제주시 이도2동 일대에서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저상버스를 타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해요. 사람이 많아서 못 타지는 않을까, 정류장에 경사로를 잘 설치해줄까 하면서요. 탑승하는 데 오래 걸려서 다른 승객에게 피해도 갈 수 있으니까..."

지난 19일 오전 10시. 제주시 일도2동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앞에서 만난 이지혁(27)씨와 김도경(21)씨, 센터 직원과 함께 삼화아파트 정류장으로 향했다. 칠성로 쇼핑센터거리 인근 대형 커피전문점에 가기 위해서였다.

센터에서 정류장까지는 휴대전화 지도앱 최소경로로 795m. 걸어서 13분 가량 소요되는 거리다. 이들은 능숙하게 휠체어로 인도 위를 부드럽게 지나갔다. 인도 폭이 넓어서 막힘이 없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대기하면서 김씨는 "저상버스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저상버스는 휠체어 이용자 탑승시 하차구에 경사로를 설치, 이용자 탑승 후 휠체어 고정장치까지 한 후 운행이 이뤄진다. 하지만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휠체어 좌석 확보가 돼 있다고 하더라도 탑승객이 많으면 휠체어가 들어가기 어렵다. 버스기사의 경사로 조작 및 안전벨트 착용시 숙련도 여부도 관건이다. 김씨는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버스 출발 시간이 지연돼 다른 승객들의 눈치를 절로 보게 된다고 말했다. 

휠체어 이용자 김도경씨가 19일 제주시 이도2동 소재 인도를 지나고 있다. 타일이 뜬 부분이 눈에 띈다. (사진=박지희 기자)
휠체어 이용자 김도경씨가 19일 제주시 이도2동 소재 인도를 지나고 있다. 타일이 뜬 부분이 눈에 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동하다보니 타려던 432번 버스를 놓쳤다. 다음 차량이 언제 도착할지 없는 상황. 모두 휴대전화 버스앱에서 현 장소에서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경로를 검색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제주도내에서 운행하고 있는 버스는 모두 757대, 이중 저상버스는 148대다. 삼화정류장을 기점으로 도착지를 거치는 노선을 찾아봤지만 저상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약 10분이 지났다. 근처 인화초 정류장에서는 목적지를 거치는 저상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버스앱 상으로는 7분 뒤 도착이었다. 지도앱에서도 현 지점에서 인화초 정류장까지 도보로 7분이 걸린다고 표시됐다. 모두 마음이 급해졌다.

"형, 최고 속력 얼마나 돼요?" 김씨가 이씨에게 물었다. 시속 8km의 속력을 낼 수 있는 김씨의 휠체어는 꽤 빠르게 지나갔다. 센터 근로자와 취재진도 큰 보폭으로 빠르게 걸었다. 이씨가 뒤쳐졌다. 그는 “보도블럭 때문에 휠체어가 덜컹거린다”고 불안해했다.

김씨의 외침 이후 415번 버스가 옆을 지나쳤다. ‘곧 도착’이라는 휴대전화 화면 상 앱의 빨간 글씨는 '28분 후 도착'으로 바뀌었다. 떠나는 버스 뒤를 쫒던 시선을 거두고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정류장 옆 큰 가로수 아래로 향했다. 

김도경씨와 이지혁씨가 19일 제주시 이도2동 소재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탑승객 통행에 방해가 될까봐 정류장 바깥에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김도경씨와 이지혁씨가 19일 제주시 이도2동 소재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탑승객 통행에 방해가 될까봐 정류장 바깥에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휠체어 이용자가 차도로 내몰리는 이유

“사실 저도 장애를 겪기 전까지는 왜 차도변으로 휠체어를 탄 사람이 지나다는지 몰랐어요. 그냥 '왜 위험하게 저렇게 다니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이씨는 2017년 4월 장애인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드라이브를 나갔다가 교통사고가 나면서 경추가 부러졌다. 병원에서 중추신경인 척수신경이 손상됐다면서 사지마비 판정을 받았다. 현재 엄지와 검지를 제외하면 손에 힘을 제대로 주기 어렵다.

그가 신체적 한계를 처음 맞닥뜨린 것은 이로부터 2년 후다. 병원밥만 먹다 바깥음식 먹고 싶어 근처 식당을 가기 위해 병원을 나섰다. 장애를 갖기 전엔 다니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던 낮은 턱도 휠체어로는 지나가기가 무리였다. 이씨는 "아무렇지 않게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았다가 하루아침에 갓난아기가 된 기분이었다"라고 떠올렸다. 

이씨는 대부분의 인도는 비장애인 구조로 설계됐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장애를 겪기 전까지는 특별한 게 없어보였지만 휠체어를 타니 인도 위 작은 돌 하나도 장애물이다. 특히 좁은 인도에 다닥다닥 설치한 전봇대와 인도까지 침범한 주·정차 차량 등을 마주하면 순간 머리가 하얘진다고 했다. 결국 마땅한 해법이 없을 때는 인도가 끝나는 경사로를 거쳐 차도로 이동한다는 것.

자주 다니던 좁은 인도에 전봇대가 설치되자 통행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도 마주했다. 국민신문고에 민원도 올렸지만 철거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저희도 이게 위험한 것을 알고, 사람들 인식이 나빠진다는 것도 알아요. 근데 도로 개선이 잘 안되니까 어쩔 수 없어요."

19일 제주시 이도2동 소재 인도에 공유킥보드가 정차돼 있다. 휠체어 탑승자 이지혁씨는 인도에 넘어진 킥보드가 있으면 보행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19일 제주시 이도2동 소재 인도에 공유킥보드가 정차돼 있다. 휠체어 탑승자 이지혁씨는 인도에 넘어진 킥보드가 있으면 보행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인도 한켠 세워진 공유킥보드를 발견한 이씨는 최근 공유킥보드가 곳곳에 마련돼면서 생긴 고충도 털어놨다.

"길을 가다 쓰러진 킥보드 때문에 못 지나가고 있었던 적이 있어요. 힘겹게 세우려고 하니까 도난방지경보음이 울리더라고요. '삐용삐용' 큰 소리가 나니까 순간 행인들이 모두 주목해서 난감했던 적도 있었어요"

김씨는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던 중 뇌에 물이 찬 탓이었다. 어릴 때부터 휠체어 생활을 한 그는 공공시설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좌절감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했다. 하지만 타인의 과한 배려나 관심이 더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길을 가다 가끔씩 처음 보는 사람이 '젊은 게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 말하면서 지나가거든요. 외적으로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성이나 지적능력이 떨어진다고 쉽게 판단하는 게 불편하죠."

휠체어 이용자 이지혁씨가 19일 오전 제주시 일도2동 소재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탑승하려고 대기하고 있다. 경사로 설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모습이다. (사진=박지희 기자)
휠체어 이용자 이지혁씨가 19일 오전 제주시 일도2동 소재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탑승하려고 대기하고 있다. 경사로 설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모습이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근로자가 장애인 이용자 이지혁씨의 저상버스 탑승을 위해 휠체어를 힘껏 밀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근로자가 장애인 이용자 이지혁씨의 저상버스 탑승을 위해 휠체어를 힘껏 밀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저상버스 : 70분 같은 탑승시간 7분

"정류장 안에 있으면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니까 거의 밖에서 기다려요."

버스 도착 5분 전,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 뒤편 인도는 폭이 좁아 휠체어 한 대가 있으면 도로가 꽉 찼다. 김씨는 지루하다는 듯이 휠체어 조이스틱을 돌리면서 같은 자리를 빙빙 돌았다.

415번 버스가 도착했다. 센터 근로자가 버스기사에게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것을 알렸다. 휠체어 이용자가 있는지 되물은 버스기사는 문을 열고 닫으면서 경사로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석과 경사로 사이의 빈 공간이 있었다. 버스가 연석에 바짝 붙여야 경사로가 적절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설치된 경사로는 다시 거둬졌다.

버스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인도와의 간격을 좁혔다. 두 번째 시도는 성공이었다. 센터 직원은 경사로에서 김씨와 이씨의 휠체어를 힘껏 밀었다. 어르신 몇몇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이 상황을 구경하기도 했다. 

버스기사는 분주하게 장애인 좌석 2개를 접어 휠체어 좌석 공간을 만들었다. 먼저 버스에 들어온 이씨가 들어가자 김씨가 탈 공간이 없었다. 결국 하차구 옆 교통카드 인식기 옆, 버스 한 가운데 자리하게 됐다.

기사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고, 차량은 출발했다. 버스가 도착한 지 약 7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휠체어 이용자 김도경씨와 이지혁씨가 19일 오전 제주시 이도2동 일대 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탑승한 모습이다. 도내 저상버스에 마련된 장애인석은 휠체어 1대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지혁씨가 자리를 차지하자 도경씨는 하차구 바로 옆에 자리할 수 밖에 없었다.(사진=박지희 기자)
휠체어 이용자 김도경씨와 이지혁씨가 19일 오전 제주시 이도2동 일대 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탑승한 모습이다. 도내 저상버스에 마련된 장애인석은 휠체어 1대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지혁씨가 자리를 차지하자 도경씨는 하차구 바로 옆에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사진=박지희 기자)
19일 오전 저상버스에 탑승한 휠체어 이용자 이지혁씨와 김도경씨의 모습. 버스기사는 휠체어 이용자 탑승시 고정장치를 설치해야 하지만 이날 이뤄지지 않았다. 긴장한 지혁씨가 안전바를 꼭 붙잡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19일 오전 저상버스에 탑승한 휠체어 이용자 이지혁씨와 김도경씨의 모습. 버스기사는 휠체어 이용자 탑승시 고정장치를 설치해야 하지만 이날 이뤄지지 않았다. 긴장한 지혁씨가 안전바를 꼭 붙잡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엔진소리와 차량이 덜덜 떨리는 소리로 내부는 가득 찼지만 동시에 적막감이 흘렀다. 좌석 앞 손잡이를 두 손가락으로 꽉 잡은 이씨는 “옆으로 쏠려서 불안하네. 기사님이 고정장치를 잊으셨나봐요.”라고 조용히 말했다.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승객들의 머리가 미세하게 같은 방향으로 흔들렸다. 이씨는 상대적으로 흔들림이 없었다. 바퀴가 최대한 굴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 경직된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안전바를 잡은 그의 손은 창백했다.

김씨에게 다가갔다. 바퀴가 고정되는 휠체어 모델이었지만 비슷한 상황이었다. 불편하냐고 묻자 "휠체어에 안전벨트가 따로 없으니까 앞으로 쏠리면 순간 긴장하게 되네요. 사람들 눈치도 조금 보이고... ”라며 소곤소곤 말했다. 승객들이 버스를 타고 내리면서 그의 옆을 바짝 지나갔다.

휠체어 이용자 김도경씨가 19일 제주시 일도1동 제주중앙지하상가에서 안내도를 바라보고 있다. 안내도에는 휠체어 전용 화장실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시가 없었다. (사진=박지희 기자)
휠체어 이용자 김도경씨가 19일 제주시 일도1동 제주중앙지하상가에서 안내도를 바라보고 있다. 안내도에는 휠체어 전용 화장실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시가 없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이지혁씨가 제주시 일도1동 소재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그는 "혼자는 올라가지 못할 정도의 경사"라고 말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이지혁씨가 제주시 일도1동 소재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그는 "혼자는 올라가지 못할 정도의 경사"라고 말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공공장소·카페 : 행색은 갖췄지만 무심했다

13분 후 중앙로역에 도착했다. 다행히 하차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인터뷰를 위해 도착지로 향했다. 이씨가 칠성로 지하상가에 들리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커피전문점을 비롯한 대다수의 외식업장은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마련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지하상가를 가기 위해선 지난해 12월 초까지 5~8번 출입구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야 했지만, 지난해 12월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장애인은 그 전까지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해야만 맞은편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2007년부터 횡단보도 설치가 논의됐지만 상권침체와 교통량 등 문제제기로 15년간 미뤄져왔다. 상인회가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받아들이면서 생긴 엘리베이터였다.

휠체어리프트를 타 본 경험이 있다는 김씨는 “리프트에 고정장치가 없어서 불안했다. 비장애인에게 알리려고 음악 멜로디가 나오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돼서 꺼려졌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다행히 네 사람 모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였다. 지하에 도착해 안내도를 확인했다. 꼼꼼히 살펴봤지만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된 곳 표시가 없었다. 안내소에 전화해 1번 출입구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참을 이동해서 발견한 화장실은 문이 안으로 열려 여닫기 불편한 구조였다. 

“아무리 전동휠체어라고 해도 이 정도의 경사는 혼자서는 절대 못 올라가요.” 카페전문점 입구에 설치된 경사로를 보고 이씨가 말했다.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센터 근로자가 출입구 경사로에서 휠체어 뒤를 힘껏 밀자 그는 몸을 한껏 웅크렸다. 체중을 앞으로 싣기 위해서였다.

카페에는 2인 탁자 두 곳밖에 없었다. 공간도 협소했다. 직원에게 탁자를 붙여도 되냐고 물어보자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가면 좌석이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도경씨가 19일 제주시 일도1동 소재 인도에서 교통약자지원차량에 다가가고 있다. 도로 연석이 없는 구간을 찾으려면 출발지로 설정한 카페에서 한참 이동해야 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김도경씨가 19일 제주시 일도1동 소재 인도에서 교통약자지원차량에 다가가고 있다. 도로 연석이 없는 구간을 찾으려면 출발지로 설정한 카페에서 한참 이동해야 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장애인 콜택시 : 선택의 자유는 어디에 

“'장콜(장애인 콜택시의 줄임말)'만큼의 안정성과 편의성, 연속성이 있다고 하면 저상버스를 많이 타겠죠. 하지만 보행환경이나 접근성 같은 인프라가 조성돼 있지 않은데...”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제도를 바꾸려면 (저상버스를) 많이 타야한다”는 김씨의 말에 이씨가 반박했다.

이들이 자주 이용하는 장애인 콜택시는 제주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에서 휠체어 탑승장비를 장착한 특별교통수단과 비휠체어 이용자 전용 임차택시를 운영하는 서비스다. 1·2급 장애인 혹은 3급 장애인 중 보행상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목적지까지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운전기사도 휠체어를 결착하고, 안전장치를 확인하는 데 능숙하다. 

하지만 장콜을 이용해도 긴장하는 건 저상버스와 마찬가지다. 대기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장애인 콜택시는 상담 접수 후 대기 순번대로 배차되는 시스템이다. 배차예상시간은 물론 따로 전화하지 않으면 대기자 수도 알 수 없는 구조다. 

108대의 도내 전체 운행 차량 중 지체장애인이 탈 수 있는 차량은 66대. 이들은 대기시간으로 30분은 길지 않다고 느낀다. 출·퇴근 시간과 맞물린다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1~2시간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내권은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선흘·구좌 등 외곽지역은 심각한 수준이라고도 설명했다.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급히 예약을 할 때면 약속시간이 다가올 수록 마음이 초조하다. 

“공항에 가려고 새벽 6시에 장콜을 부른 적이 있어요. 오전 7시 50분에 출발하는 항공권을 예매했거든요. 이른 아침이어서 넉넉할 줄 알았는데 차량이 7시 30분에 왔어요. 비행기 못 탔죠, 뭐.” 김씨가 토로했다.

“최근 부고가 있었는데, 지인들이랑 다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낮 12시에 장례식장 앞으로 모이기로 했어요. 그런데 확답을 못 하겠더라고요. 결국 혼자 따로 갔어요.“ 이씨도 공감했다. 

"그래서 약속이 있으면 일찍 가있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고 이씨가 덧붙이자 김씨는 "예전에 당연히 늦게 배차될 줄 알고 약속시간보다 2시간 일찍 전화했는데, 바로 잡혔던 적도 있었다. 예상이 안되는 시스템"이라고 토로했다.

비장애인은 인식조차 못하는 당연한 권리들이 장애인에게는 절실한 경우가 많다. 김씨는 이 부분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아 자책감이 든다고 했다.

그는 "가족이나 친구들도 저와 다닐 때는 계단이 없는 곳만 찾아야 해서 저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미안함’이 누군가와 함께 다닐 때 기본 바탕이 되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도경씨가 19일 낮 제주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운전기사가 단단히 휠체어를 결착한 모습. (사진=박지희 기자)
김도경씨가 19일 낮 제주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운전기사가 단단히 휠체어를 결착한 모습. (사진=박지희 기자)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낮 12시 30분을 넘겼다. 슬슬 나갈 채비를 해야 했다. 둘다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앱을 켜고, 택시를 예약했다. 배차가 언제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30분 가량 지나니 대화거리도 바닥났다. "저희가 이렇게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답니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이씨의 미소는 씁쓸했다.

그때 김씨 휴대전화가 울렸다. 차량이 정해져서 담당기사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그는 ”이렇게 빨리 잡힌 건 진짜 오랜만“이라면서 운이 좋다고 했다. 이씨의 휴대전화는 아직 조용했다. 취재진은 다음 일정을 위해 김씨와 동행했다. 급히 이씨에게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선 김씨에게 뛰어갔다.

김씨는 차량기사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비행기를 놓친 날 배차된 차량 기사였다. 운전기사는 머물던 카페와 몇 미터 떨어진, 연석이 없는 인도 구간에 차량을 세우고 능숙하게 김씨를 태웠다.

김씨와 자립생활센터에 도착한 후 부랴부랴 다음 일정지로 향했다. 어느 정도 일을 해결한 뒤 늦은 점심식사를 하던 오후 1시 40분, 문자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이씨였다.

‘저는 이제 센터에 도착했어요.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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