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가 서귀포 강정마을커뮤니티센터 2층 회의실에서 마을회 측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2월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가 서귀포 강정마을커뮤니티센터 2층 회의실에서 마을회 측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윤석열 정부는 이른바 ‘국민대통합’을 국정목표의 하나로 삼고 있다. 지난 대선 기간 강정마을을 찾았던 윤 대통령은 강정투쟁과정의 사법처리자 사면복권과 마을발전 사업을 공약했다. 오영훈 도지사는 지선 때에 제주사회의 갈등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취임이후 공약실천의 첫 행보로 강정마을을 찾아 전 도정과 강정마을의 협약과제를 성실히 지키고 사면조치를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곧이어 개원한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 관련 강정마을 주민 사법처리자 사면복권 촉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일단 국민의힘 출신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출신 도지사가 당과 이념을 떠나서 해묵은 강정갈등의 해결방안에 궁합이 맞았다. 그러니 제주도의회 또한 이들과 궁합이 맞는 결의안을 의결하는 데 어느 의원도 이의를 제기할 리 없었다. 

사실 제주도 등이 이런저런 기회에 강정 관련 사법처리자 특별사면을 건의해 온 것은 40여 차례에 이른다. 그러나 2014년 이래 253명의 사법처리자 중에 사면복권된 주민은 41명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의 약속, 제주도와 의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서 강정 관련 사법처리된 주민은 한 사람도 포함되지 못했다. 여전히 212명은 억울한 전과자로 살아가야 한다. 이들 외에도 더 있다.

이번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에 분통을 터뜨릴 도민과 주민들이 있을 것이다. 혹은 대통령이 약속했기에 다음을 기대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이들과 다른 목소리가 있다. 권력자들을 향한 시혜론적 요구를 거부하는 주민들의 입장이다. 대통령의 공약에서든 제주도 등이 그동안 추진해온 강정갈등의 해법에서 그들의 주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아왔다. 아예 그들은 존재와 실체 자체가 거부되어 왔다. 논자가 강정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이다.   

알 사람은 다 알 듯이, 해군기지 준공(2016. 2. 26) 이후 강정마을에는 마을회가 2개로 쪼개져 존재한다. 강정마을회가 있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이하 반대주민회)가 있다. 강정마을회가 마을의 공식조직일 것이다. 강정마을회의 입장은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을 멈추고 마을의 실익과 발전을 위해 국가 및 해군과 협조하자는 것이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이하 주민회)는 지난 2018년 9월27일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제주를 군사기지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국제관함식 취소를 촉구했다.(사진=김재훈 기자)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이하 주민회)는 지난 2018년 9월27일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제주를 군사기지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국제관함식 취소를 촉구했다.(사진=김재훈 기자)

반대주민회는 이러한 강정마을회의 입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별도로 만든 조직이다. 반대주민회라고 갈등해소와 마을발전을 위한 일에 반대할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강정투쟁 과정에서 국가와 해군, 경찰들이 저지른 불법과 탈법, 그리고 인권유린 행위들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사법처리자 사면과 복권문제만 해도 그렇다. 사법처리 대상자에는 강정마을회 소속 주민도 있겠지만 대체로 반대주민회 소속 주민들과 시민단체 및 평화활동가들이다. 2007~2018년까지 약 11년 동안 체포 연행된 자가 총 697명이었고, 사법처리된 자는 총 913명(불기소 32명 포함)이었다. 아마도 이중 강정주민이 253명이었을 것이다.

반대주민회 소속 강정주민들은 범법한 사실도 없고 사면복권 대상자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가와 해군, 경찰 등이 자행한 불법과 탈법적 행위에 대해 정당한 항거일 뿐이라고 여긴다. 탈법과 인권유린을 저지른 국가 기관이 오히려 정당한 항거자들을 범법자로 몰고 간 처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항변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지난 2019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탈법과 인권유린을 인정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조사위가 밝힌 조사결과를 간략히 돌아보자. 첫째, 해군기지 부지선정 과정의 절차적 공정성 결여를 지적한 점이다. 마을 임시총회에서 전체 주민의 약 4.5%가 참석한 가운데 표결도 아닌 박수로 의결되었다. 이것의 부당성을 인지하여 새로 꾸려진 마을회의 총회에서는 투표함 탈취사건도 있었는데 경찰은 이를 묵인하였다. 

둘째,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국가기관들(경찰, 해군, 국가정보원, 제주도 등) 간에 대책회의를 여는 등 조직적 대응에 나섰다는 점이다. 셋째,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강경 진압하는 과정동안 온갖 불법과 탈법, 그리고 대대적인 인권유린 행위(욕설, 구타, 폭행, 체포, 시설파괴, 미사방해 등)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넷째, 청와대와 경찰, 국군사이버사령부 등은 당시 해군 입장에 유리한 방향의 댓글 활동을 전개하는 등 조직적인 여론 조작행위를 벌였다는 점이다. 다섯째, 국가와 제주도는 이상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섯째, 조사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 공신력 있게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상 6가지가 조사위 조사결과의 핵심내용이었다.  

지난 2007년 9월 강정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경찰간의 몸싸움 장면(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 2007년 9월 강정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경찰간의 몸싸움 장면(사진=제주투데이DB)

경찰은 당시 반대운동을 직접적으로 강경 진압했던 당사자들이기에 그들이 조사하고 인정한 결과는 어느 정도 공신력이 있다. 그러나 국가는 지금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아직까지 강정갈등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의 핵심 고리이다. 

이번 광복절을 앞두고 오영훈 지사와 제주도의회의 특별사면 건의 행보에 대해 반대주민회가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도 여기에 있었다. 경찰청 조사결과를 인정하고 권고한 대로 정부가 나서 국가적 차원의 진상조사와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가든 오 지사든 도의회든 그 어느 측도 이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고 있다. 이번에도 그들의 실체 자체를 거부했다.

사실 반대주민회의 요구는 최소한의 것에 불과하다. 갈등의 세월이 길어져온 만큼 이로 인한 상처와 아픔도 깊어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가 파괴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무엇보다 가장 큰 상처는 반대운동을 해왔던 주민들의 상실감, 패배감, 적대감, 분노와 체념 등으로 비롯된 자존감 저하일 것이다. 이들과 연대하여 싸워왔던 시민 및 평화활동가들의 아픔도 비슷할 것이다. 

반대운동을 해온 사람들의 태도도 분화됐다. 더욱 강성화한 사람, 명예로운 탈출을 말하는 사람, 침묵과 방관으로 돌아선 사람 등등. 그러나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강정해군기지의 너그러운 수용을 용납한 것은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모두가 아픈 사람들일 뿐이다. 

이제 세월이 흐를 만큼 흘렀으니 반대주민회 소속 주민이나 강성화한 사람들 외에는 상처가 치유되었거나 잊혀 졌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강정투쟁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든 전혀 관여하지 않았든 그들의 상처를 건드리고 자극하는 어떤 행위도 문제를 푸는 길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길고 치열한 싸움에서 얻은 상처들은 뇌의 편도체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여기에 각인된 온갖 아픔의 상념들은 어쩌면 영원히 치유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억지로 억압하고 있을 뿐이다. 

2019제주생명평화대행진(사진=김재훈 기자)
2019제주생명평화대행진(사진=김재훈 기자)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 놀라게 되어있다. 솥뚜껑이 아니라 자라로 밝혀지고 있지만, 비민주적으로 강행하려는 제주제2공항 문제를 보며 강정해군기지 반대주민회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반대운동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여름만 되면 뜨거운 태양의 열기 속에 제주도 전역을 걸었던 강정평화대행진이 생각난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올여름 강정의 반대주민회 등은 ‘두 바퀴 대행진’을 벌였다. 강정의 평화와 제2공항 반대를 외치며 작열하는 거리를 돌았을 그들의 수고에 숙연하고 미안해진다. 

거리의 화가 고길천은 ‘붉은 구럼비’라는 강정투쟁 기록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를 보고 다시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강정을 찾았다. 여전히 해군기지 정문 앞에는 ‘해군기지 반대싸움 5천5백OO일’(정확히 오늘로 5573일째일 것이다)을 내건 농성천막이 있고, 평화를 외치는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일(20일) 강정평화센터 개소식이 있는데 가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아직도 강정갈등은 치유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강봉수 교수 (사진=박소희 기자)

강봉수(姜奉秀). 제주시(애월읍 어음리)에서 태어나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동양철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하여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재야연구단체인 사단법인 제주대안연구공동체의 연구원장직을 맡아왔다. 때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었고, 한국(제주)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시민운동진영에도 기웃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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