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칸영화제에서 송강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탔던 영화 '브로커'의 소재는 '베이비박스'. 영화의 유명세를 타고 출산한 아이를 익명으로 두고 가는 '베이비박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제주도의회는 23일 공청회를 열어 베이비박스 설치 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밑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베이비박스의 합법화를 두고 영아 보호냐, 영아 유기냐 찬반 논란은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제주투데이는 이에 대한 공론의 장을 열어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담고 관련 취재 등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주사랑공동체 담벼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사진=나무위키 갈무리)
주사랑공동체 담벼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사진=나무위키 갈무리)


베이비박스는 법적으로 불법성을 안고 있다.

제주도의회에서 ‘베이비박스(Baby box) 설치 및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 공청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논란은 ‘불법 아동 유기 시설’과 ‘생명을 살린다’라는 두 가지 시각으로 대변됩니다. 법률적 측면에서 보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는 모든 부모는 아동에 대한 출생신고 의무조항이 있고, 「민법」에는 아동에 대한 부모의 친권은 임의로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베이비박스는 부모가 아동을 출생신고하지 않고 유기할 수 있는 방법을 지원하는 것으로 현행법 위반을 조장하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베이비박스는 우리나라가 1991년에 가입·비준하여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 『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위반이 되고, 보건복지부도 보도해명자료(2013.8.20.)를 통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 사항을 소개하면서 베이비박스는 형법 및 아동복지법 위반(영아유기)죄의 방조에 해당함을 밝힌 바 있습니다. 

베이비박스는 왜 확대되었을까?

베이비박스는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이후에 법의 틈새에서 발생하였습니다. 2012년 이전에 친생부모가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입양기관을 찾아가 ‘입양보내달라’고 하면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입양기관은 입양 보낼 아동을 직접 보호하는 아동보호시설을 운영하며 입양을 알선하고 있었습니다. 

친생부모는 출생신고도 없이 입양기관에 아동을 합법적으로 유기하면 입양기관은 아동을 국내외로 입양보냈고, 아동의 정보는 비공식적으로 기록·보관되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2년에 입양특례법이 개정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입양을 보내려면 반드시 출생신고를 해야하고 입양기관의 아동보호시설 운영이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위기의 임산부 보호’와 ‘원가정 보호’라는 측면에서 미흡했고 과거와 같이 출생신고를 하고 싶지 않거나, 법률적으로 할 수 없는 일부의 임산부들이 그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베이비박스를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는 이 과정에서 아기를 맡기는 부모의 대부분을 상담하고 한부모가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면서 현재, 연간 5억원 가량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공공 즉, 국가와 지방자체단체가 해야 할 일을 주사랑공동체에서 하면서 이제는 재단법인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자료=반철진 제공)
(자료=반철진 제공)

 

제주 베이비박스 설치 시도는 정부 정책에 역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가정 보호’ 즉, 혼자서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는 당사자들의 당당한 목소리가 높아져 실제 원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여러 민간단체들의 지원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한 2021년 6월 30일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보호전담요원을 확충하고 이를 통해 위기의 임산부와 출산 후 아동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의 발생부터 보호 필요의 종료까지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지는, 즉 공공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겠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고 이를 확대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의회가 정부의 방향과는 다른 즉,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게 맡기고 이를 지원한다는 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베이비박스의 주장은 여성의 권리 보장도 아동의 생명 지킴도 아니다.

‘베이비박스 논쟁’의 첫 번째는 ‘산모의 권리’입니다. 베이비박스를 찬성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산모가 아동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출산을 비밀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성의 출산이 왜 비밀이 되어야 하나요? 여성이 원하지 않은 임신에 대해서는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가 여성에게 있습니다. 여성의 출산이 비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미혼부모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외입양인 출신의 신선희 감독이 제주 애서원에서 미혼모들과 함께 살면서 찍은 다큐영화 ‘포겟 미 낫 – 엄마에게 쓰는 편지’를 보면 미혼모들은 자기가 낳은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데 부모들이 사회적 편견 때문에 아이를 입양 보내도록 결정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베이비박스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사회적 편견을 없애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편견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논쟁의 두 번째는 ‘아동의 권리’입니다. 베이비박스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아동의 생명이 지켜졌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 자신을 베이비박스에 맡겼는지 등 아동의 정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측에서도 아이를 맡기는 거의 대부분의 부모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정보를 아동에게 주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동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출생이 떳떳하지 못한 것이 되고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동들은 평생 동안 자신의 부모와 출생에 대해 알지 못하게 됩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쪽에서 이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밀 입양으로 커왔던 성인 입양인들은 입양 부모로부터 자신의 정보에 대하여 제대로 듣지 못하여 생의 출발점에서부터 일정 기간이 비어있는 상태가 됩니다. 공개입양의 청소년 입양인들도 자신의 부모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합니다. 해외입양인들도 자신의 정보에 대하여 알기 위해 입양기관과 아동권리보장원을 상대로 정보를 달라고 합니다. 

베이비박스의 ‘생명지킴’이 육체적 생명을 지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동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출생 자체를 부정당하고 자신의 정보를 알 수 없게 함으로써 정신적 생명을 지켰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베이비박스에 아동 유기 문제의 해결책은?

베이비박스의 문제는 다른 곳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최근 주사랑공동체가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한 것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국민들도 있습니다. 그런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법으로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들은 법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외도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남편이 동의해야 입양할 수 있는데 보통 그렇지 않죠. 그래서 출생신고를 하기 어렵습니다. 또 전과 달리 법이 개정돼 미혼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혼부는 출생신고 시 제약이 많아 어렵습니다. 이외에도 근친상간 및 강간에 의해 태어난 아기들과 불법체류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출생신고가 안 됩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그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 출생신고 되지 않은 아기는 국민으로 취급받지도 못해요. 그러니 미혼모와 미혼부가 마지막으로 아이를 지키고자 찾는 곳이 베이비박스인 거죠.”

베이비박스에 아동을 맡기는 문제는 가족관계등록법의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베이비박스를 확대하거나 보호출산제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베이비박스 설치 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베이비박스는 한부모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내세워 이를 더욱 강화키고 아동에게는 자신의 출생 자체를 부정하게 하며 자신의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아동의 정신적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입양연대회의는 입양의 당사자들인 미혼부모, 국내외 입양인, 친생부모, 입양부모와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의 협의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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