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베이비박스(Baby box)' 설치 추진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 가운데, 법조단체가 "아동 인권을 침해하고, 법률에 위배된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23일 성명을 내고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헌법과 국제인권기준, 법률에 위반되는 '베이비박스 설치 및 지원 조례' 제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출생이 등록되고, 부모와 함께 자라날 권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격권의 한 내용"이라면서 "하지만 베이비박스는 출생신고를 할 의무가 있는 부모가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자녀를 유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양육 포기를 적극 조장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대한민국 제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종교단체가 운영하며 익명으로 아동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해야 한다'며 정체성에 대한 아동권리 실현을 분명히 요구한 바 있다.
해당 위원회는 2005년 오스트리아, 2007년 슬로바키아, 2011년 체코, 2014년 독일과 러시아 등에도 베이비박스를 금지하고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는 권고를 밝히기도 했다.
이 단체는 "우리나라는 아동의 권리 보장에 현저히 미흡하다. 대한민국은 2024년 12월 19일까지 제출해야 할 '베이비박스 금지' 등에 대한 권고 이행을 포함한 국가보고서에 뭐라 답할 것인가"면서 "최종견해를 받은 이후 3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이같은 조례 제정을 논의하는 실정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또 해당 조례안이 현행 아동복지법 개정 취지와 내용에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아동복지법 제15조 2항에 따르면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 이외의 자가 보호대상아동을 발견하거나 보호자의 의뢰를 받은 때에는 지체없이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보호조치를 의뢰해야 한다.
이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한 공적 지원의 출발을 지방자치단체로 일원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부터 입양 관련 상담은 입양기관 대신 지방자치단체의 아동보호전담요원이 담당하고 있다. 베이비박스가 현재 하고 있는 조치는 이같은 법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셈이다.
법 제71조에는 민간이 아동복지시설을 설치할 경우 관에 신고해야 하고, 위반시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도 명시돼 있다. 하지만 베이비박스는 현행법상 미신고시설이다. 민변은 이와 관련,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설인 베이비박스에 대해 설치를 지원하는 것도 법률의 체계적합성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그러면서 베이비박스가 유기아동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아동의 안전과 인권을 증진하고자 추진된 이 조례안이 아동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민변은 "임신과 출산, 베이비박스 유기, 그 어떤 것도 아동은 선택할 수 없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 하지만 베이비박스에 놓이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오롯이 빼앗기는 당사자는 아동"이라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는 아동의 시민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들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는 정책화 과정으로 이행될 수 있다"고 강조헀다.
민변은 "법률혼 가정 이외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차별을 거두고, 위기적 상황에도 출산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포용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어떠한 이유로든 아동을 유기하지 않고 부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는 정책적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자신의 뿌리가 온전히 기록되는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 마땅히 태어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는 촘촘한 지원체계가 마련될 때, 아동의 유기는 비로소 예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민변은 "전 세계에서 유례 없이 가장 많은 수의 아동을 가장 오랜 기간 해외로 입양 보낸 대한민국 역사의 핵심은 뿌리의 기억을 박탈하는 ‘고아 호적의 창설’에 있었다는 부끄러운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면서 "제주도의회는 여러 위기 상황으로 양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모의 첫 발걸음이 베이비박스가 아닌 공공에게 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베이비박스란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는 장소다.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이종락 목사가 2009년 최초로 만들었다. 긴급보호된 영아들은 부모의 양육 의사를 확인한 이후 입양이 추진되거나 일시적으로 양육 수탁 후 가정으로 돌려보내진다.
타 지역에서도 비슷한 조례안이 검토된 바 있다. 경기도의회는 2016년 베이비박스 운영단체를 지원하는 내용의 '경기도 건전한 입양문화 조성 및 베이비박스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영아 유기 조장 논란이 일어 보류했다.
제주도의회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제주도의회 대회의실에서 '베이비박스(Baby box) 설치 및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 공청회'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은 성명 전문.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헌법과 국제인권기준, 법률에 위반되는 베이비박스 설치 및 지원 조례 제정을 즉각 중단하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2022. 8. 23. 송창권 의원(환경도시위원회 위원장)이 주관하여 ‘베이비박스 설치 및 지원 조례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조례안은 법과 인권의 원칙에 반하며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베이비박스는 출생신고를 할 의무가 있는 부모가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자녀를 유 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양육 포기를 적극적으로 조장한다. 출생이 등록되 고,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며 부모와 함께 자라날 권리는 「대한민국헌법」 (이하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격권의 한 내용이다. 부모에 관한 정보, 가족관계는 나의 신분,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이 다. 헌법재판소는 알 권리가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표리일체의 관 계에 있으며, 국민주권주의(제1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제10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제1항)와 직결된다고 판시하였다(헌법재판소 1991. 5. 13. 90헌마133 결 정). 대법원은 2020. 모든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가지며, 이러 한 권리는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가 되 는 기본권이므로 법률로써도 이를 제한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0. 6. 8. 2020스575 결정). 여기에서 ‘출생등록’이란 아동의 생물학적 부모가 정확하게 명시되도록 국가가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CRC/C/KOR/CO/3-4, para. 37.).
대한민국이 비준하여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유엔 「아동의 권 리에 관한 협약」(이하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되고, 출생시 부터 성명권과 국적취득권을 가지며, 자신의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하여 양육받을 권리(제7조), 가족관계를 비롯한 신분을 보존받을 수 있는 권리(제8조), 자신의 의사 에 반해 부모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권리(제9조)를 가진다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우 리나라는 아동의 권리 보장에 현저히 미흡하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9. 10. 대 한민국 제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부모의 법적 지위 또는 출신지 와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출생신고를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권고하면서, “종교단체가 운영하면서 익명으로 아동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라”고 강조하여 정체성에 대한 아동 권리 실현을 분명히 요구하였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05년 오스트리아, 2007년 슬로바키아, 2011년 체코, 2014년에는 독일과 러시아 등에서도 베이비박스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베이비박스를 금지하 고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는 권고를 일관되게 밝히고 있 다. 대한민국은 2024. 12. 19.까지 제출해야 할 ‘베이비박스 금지’ 등에 대한 권고 이행을 포함한 국가보고서에 무어라 답할 것인가? 최종견해를 받은 이후 3년 가까 이 흘렀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오히려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고 지원하는 조 례 제정을 논의하는 실정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2022. 8. 22. 배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번 공청회는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의 안전과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준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베이비박스는 결코 유기 아동을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베이비박스는 아동 유기를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8. 실시된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양 육미혼모 실태 및 욕구 조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미취학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미혼모 총 359명 중 82.7%는 미혼모의 아동 양육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고 응답했다. 즉, 법률혼 가정 이외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차별을 거두고, 위기적 상황에도 출산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든 아동을 유기하지 않고 부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는 정책적 환경과 조건을 만들고, 임신·출산 지원 체계를 구축하며, 원가정에 대한 양육지원 서비스의 지원 내용과 접근성을 강화해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분리되지 않도록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입양절차에서 출생신고를 의무로 규정한 것과 영아 유기의 증가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다는 점 또한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오히려 베이비박스가 알려지면서, 영아를 안전하기 유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급부 상한 인식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2017. 12. 국회입법조사처의 결과도 있다.
베이비박스를 설치·지원하는 이 조례안은 현행 「아동복지법」(이하 ‘아동복지 법’)의 개정취지와 내용에도 배치된다. 2020. 12. 개정된 아동복지법은 “시·도지 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 이외의 자가 보호대상아동을 발견하거나 보호자의 의 뢰를 받은 때에는 지체없이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보호조치를 의뢰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마련하였다(제15조 제2항).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 한 공적 지원의 출발을 지방자치단체로 일원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21. 6. 30.부 터 부모 등의 입양 관련 상담은 입양기관이 할 수 없고 지방자치단체의 아동보호전 담요원이 담당하게 되었다. 현재 베이비박스가 하고 있는 부모 상담 및 아동보호조 치는 아동복지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또한 베이비박스는 현행법이 금지하는 미신고시설이다. 아동복지법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외의 자가 아동복지시설을 설치할 경우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신고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 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71조 제3항 제3 호, 제50조 제2항).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설을 지원하고자 하는 이 조례안은 법률 의 체계적합성에도 반한다.
무엇보다 이 조례안은 아동의 원가정 양육·보호의 원칙을 이행해야 할 지방자치단 체의 장의 책무를 회피·방기한다는 문제도 있다(아동복지법 제4조 제3항).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원가정 양육의 원칙은 아동권 리협약, 아동복지법, 유엔 「아동의 대안양육에 관한 지침」, 「국제입양에 관한 아 동의 보호 및 협력에 관한 협약」 등에서 명시한 아동보호의 핵심 원칙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또한 아동의 유기 대응에는 가족계획, 임신·출산에 대한 지원, 위 기 임신 및 계획되지 않은 임신에 대한 상담과 사회적 지원, 보호가 필요한 가정에 대한 지원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반복하여 표명하고 있다.
아동 권리 존중·보호·실현의 궁극적인 주체는 국가이나, 현재 대한민국은 베이비 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을 위한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 베이비박스에 자녀 를 유기하는 부모를 「형법」상 영아유기죄 혹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으로 처벌할 뿐, 출생신고 조력을 포함해 자녀 양육을 위한 가정 지원의 책무(아동 권리협약 전문, 제18조)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으며, 이미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채 자신의 뿌리를 찾을 길 없는 이들을 뒤늦게 보호체계에 편입하는 단편적인 일로만 제 역할을 다했다고 착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3. 8. 20. ‘넘쳐서 슬픈 베이 비박스 기사관련 보도해명자료’에서 “베이비박스 설치는 「형법」 및 아동복지법 위반죄의 방조에 해당되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베이비박스가 유엔아동권리협약 에 명시된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고 영아유기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운영을 중단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한 바 있음”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가는 10년 넘게 불법시설의 운영을 방치해 왔을 뿐이다.
베이비박스의 아동인권 침해는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도 명백히 검토된 선례가 있 다. 경기도의회는 2016. 3. 「경기도 건전한 입양문화 조성 및 베이비박스(Baby Box)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문제를 인식하여 입법 추진 중단을 결정했다. 임신과 출산, 베이비박스 유기, 그 어떤 것도 아동은 선택할 수 없었고, 그 어떤 절차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 하지만 베이비박스에 놓이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오롯이 빼앗기는 당사자는 아동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 없이 가장 많은 수의 아동을 가장 오랜 기간 해외로 입양 보낸 대한민국 입양 역사의 핵 심은 뿌리의 기억을 박탈하는 ‘고아 호적의 창설’에 있었다는 부끄러운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성인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아동의 존재는 사라지고, 어른들의 편의와 일방적 사고 방식 하에 베이비박스의 선의만 살아남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사정을 근본적으로 막아내려는 노력에 힘을 기울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며 면피용 변명만 더해지고 있다. 베이비박스를 지원하겠다는 공공의 의식 수준은 여전히 이 사회에 아동인권이 존재하지 못하는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 아동의 안전과 인권을 증진 하고자 추진된 이 조례안은 오히려 아동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며 아동 보호의 원 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여러 위기 상황으로 양육의 어려움 을 호소하는 부모의 첫 발걸음이 베이비박스가 아닌 공공에게 향할 수 있도록 최선 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자신의 뿌리가 온전히 기록되는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 마 땅히 태어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는 촘촘한 지원체계가 마련될 때, 아동의 유기는 비로소 예방할 수 있다. 유기된 아동을 구원한다는 갈대상자 이전에, 모든 사회 구 성원이 아동의 유기를 온 마음으로 막아내는 포용적인 사회가 필요하다. 지방자치 단체의 책무는 아동의 시민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들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는 정책화 과정으로 이행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명백하게 헌법과 국제인권 기준, 법률을 위반하는 ‘베이비박스 설치 및 지원 조례’ 제정 추진을 즉각 중단 하라.
2022. 8. 2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