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미달이다. 제주포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싶은 정도다. 제주포럼이 일부 '망상 건축가'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14일 열린 제주포럼에서 믿어지지 않는 발제가 나왔다. 북한 두만강 하구 일대에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이 참여하는 ‘연합도시’ 건설 계획 제안이 그것이다. 발제는 명지대학교 이상현 건축학부 교수가 맡았다.

‘두만강국제연합도시’는 그가 속한 사단법인 한반도평화경제포럼(명예이사장 김덕룡, 이사장 안봉락, 상임고문 김부겸)에서 제시해온 내용이다. 두만강 하구 접경지에 200만 명 규모의 도시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두만강 접경 국가인 북한, 러시아, 중국 외에 남한과 미국도 참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비유하자면 성질 나쁜 애들을 한 데 모아 놓아서 국제 평화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순박하다. 근데, 이들의 계획에서는 남한과 미국이 단순히 자본만 대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남의 영토에 각자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이상현 교수
이상현 교수

이상현 교수는 인구 200만명의 도시를 조성해 매년 1000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생산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인구 700만명이 넘는 초압축 도시인 홍콩의 GDP(3466억 달러, 2020년 기준)의 2.5배를 넘는다. 한국 GDP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한 국가 수준의 경제적 규모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계산이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면 되지 않겠냐고? 한국의 반도체 공장을 모두 이전한다고 해도 매년 1000조원을 벌어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전 세계의 반도체 공장을 모두 가져다 때려 박아넣어야 간신히 달성 가능한 수준이다.(반도체 산업 규모는 2030년에야 1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그만한 생산력을 챙기겠다는 것인가. 이상현 교수는 두만강국제연합도시에 중국의 유교문화, 한국의 K-팝, 북한의 의료관광, 미국의 금융허브 도시를 제안했다. 이것들로 연간 1000조원대 생산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뜯어보자. 이 교수는 포럼에 앞서 경향신문에 낸 기고에서 “중국에게 중국만 모르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칼을 알려주고 싶다. 유교문화다.”라면서 “그 칼이라면 중국이 주변국들의 환영 속에서 완성형 강대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에는 자국의 유교 문화 자산을 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유교도시를 제안한다.”고 썼다. 

무엇보다 유교문화를 주변국들이 그의 말처럼 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유교도시라는 것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자유의 여신상을 압도하는 200m짜리 공자, 맹자 상과 공자왈 맹자왈 하는 향교들을 지어야 할까? 아니면 ‘유교대학’을 설치해서 한국에서도 차차 밀려나고 있는 유교식 제사문화 체험시설도 짓고? 또, 대체 어떻게 그것이 막대한 경제적 생산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인가. 차라리 유교도시보다 ‘법사도시’를 만드는 것은 어떤지 역제안 하고 싶다. 말로 때울 수 있는 그야말로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금융허브 도시를 제안했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금융허브 도시는 홍콩이다.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다. 중국이 참여하는 연합도시를 제안하면서 홍콩의 주요 산업인 금융도시를 미국이 맡도록 한단다. 이쯤되면 세계 정세에 대한 무지, 외교적 무지와 결례의 완성형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에 제안한 의료관광 도시는 그저 생뚱맞을 뿐이다. 돈 되는 산업을 찾는다고 찾아낸 것이 의료관광 도시인 듯 여겨진다. 그렇다보니 북한의 의료 역량에 대한 평가가 있을  리 만무하다. 산업 역량에 맞춰 제안하려거든 차라리 우주산업 도시 정도를 제안하는 쪽이 합리적이다. 적어도 로켓 발사 능력 만큼은 미국이 알아줄 정도 아닌가.

이상현 교수는 남한에 그곳에다가 이미 충분히 알려진 'K-팝을 알리는 도시'를 짓자고 한다. 미래 도시를 개발한다면서 당장의 유행을 따르는 데 급급한 상상력 부재 및 관료적 마인드가 드러난다. K-팝 시장 규모가 많이 커졌지만 이상현 교수가 기대하는 1000조원대 경제 규모를 만드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한 증권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K-팝 팬덤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8조원에 불과하다. 그가 기대한다는 연간총생산(1000조원)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이 같은 발상은 예술 문화 생태계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이 아무데나 K-팝을 가져다 붙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K-팝 팬들을 진절머리를 낸다. 그런데 급기야 공상적인 신도시 개발에 K-팝을 갖다 붙이는 구경까지 하게 됐다. 이상현 교수 등이 K-팝을 알리는 도시를 건설하자고 제안하지만 K-팝을 알리는 것은 어떤 시설이나 도시가 아니라 컨텐츠(음원과 영상)가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부가가치이다. 국내 어느 도시 때문에 K-팝이 이처럼 흥한 것이 아니다. K-팝을 알릴 수 있는 도시는 없다. K-팝이 알리는 도시가 있을 따름이다. K-팝 아티스트를 모두 그 도시로 이동시켜서 거주하도록 할 정도면 몰라도, 굳이 그 도시를 찾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인문학을 배제한 건축가들의 상상력이라는 게 딱 이 정도 수준이다. 헛소리에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그들을 불러다 발제까지 맡긴 제주포럼의 수준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부끄러움을 아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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