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열린 ‘제20회 제주포럼 성과평가회’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지난 4일 열린 ‘제20회 제주포럼 성과평가회’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제주포럼은 국제무대에서 제주의 위상을 높이고 글로벌 의제를 선도해 나가는 성과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리더 초청 확대와 기업 세션 강화 등 실질적 변화를 통해 포럼의 파급력을 높여야 한다.”

지난 4일 열린 ‘제20회 제주포럼 성과평가회’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올해 행사를 평가한 내용 중 일부분이다. ‘제주포럼’의 취지와 구성을 알지 못하는 이가 보면 마치 ‘글로벌한 산업박람회’ 성격의 행사로 오해할 만하다. 

그러나 오영훈 지사가 평가한 발언만 놓고 본다면 공식 명칭인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평화’를 빼도 무방할 듯 싶다. 국제사회에서 ‘제주’를 홍보하고 위상을 높이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영훈 도정이 가진 ‘평화’에 대한 철학이나 비전에 의문이 따를 뿐이다. 

지난 5월30일 열린 '제20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폐회식에서 오영훈 지사가 폐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지난 5월30일 열린 '제20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폐회식에서 오영훈 지사가 폐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지난 2005년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특별자치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관련 법령(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235조 세계평화의 섬의 지정)에 근거해 추진되는 대표적인 사업이 제주포럼이다. 

해당 법령은 “국가는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세계평화의 섬을 제주도로 지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이 제정되자 세계 최초로 ‘국가 인증’을 받은 평화의 섬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제주는 ‘평화의 섬’으로서 세계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올해 ‘세계평화의 섬 지정’ 20주년을 맞아 몇몇 언론 매체에서 이 주제를 다룬 보도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기사의 분석 초점은 ‘사업’에만 맞춰져 있었다.

법령에서 명시하고 있는 ‘세계평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은 없고 ‘세계평화’라는 콘텐츠를 가지고 어떤 사업을 진행했고 기획하고 있는가, 어떤 조직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답만 있었다. (공공기관에서 지원하는 사업을 맡아 운영해본 이들에게는 익숙한 평가 방식이다. 사업 보고서의 ‘성과’란을 채우기 위해 작성되는 행정 편의적 접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달 24일 휴전이 발효된 이란-이스라엘 전쟁 상황에서 제주도는 어떤 입장을 냈는가?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지난달 12일 간 이어진 전쟁으로 이란에서만 10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 가운데 민간인은 400여명에서 6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 최초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됐다고 자임해온 제주도는 여기에 어떤 목소리를 냈는가?

제주도는 과거 4·3 당시 국가폭력을 경험한 섬이다. 수많은 생명이 무참히 학살 당했고, 생존한 이들은 가족과 집과 공동체를 잃은 채 오랜 세월 고통과 두려움 속에 살아야했다.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바로 4·3의 역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국가폭력과 전쟁으로 인한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에서 비롯됐다.

이란-이스라엘 전쟁을 두고 ‘외교 사안은 중앙정부의 영역이다’, ‘지방정부가 목소리를 내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제주도가 입장을 낸다고 해서 파급력이 있겠는가’ 등등의 반론이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했거나, 감당할 수 없었다면 애초에 ‘세계평화의 섬’이라는 타이틀은 그저 장식에 불과한 것 아닐까.

제주포럼 공식 홈페이지는 출범 취지로 “한반도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비전을 공유하고 창의적인 국제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대화의 장”이 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에 저항하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면, 전쟁에 스러져가는 생명들과 연대하지 못한다면, ‘세계평화의 섬’이라는 수식어는 ‘평화워싱’에 불과하다. 

오영훈 도정의 ‘평화’에 대한 상상력 부재는 지난 제주포럼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스포츠외교’라는 기괴한 이름의 세션이 마련됐다. 주제는 ‘인류 평화의 공동가치 제고를 위한 올림픽 운동과 스포츠의 역할’이었다. 이 자리에서 오영훈 지사는 1991년 열린 세계탁수선수권대회까지 끌어와 “평화는 넓은 의미에서 스포츠정신을 통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부분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평화의 의미를 찾기 위해 3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스포츠정신’으로 확장하기 전에 당장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참상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송악산과 알뜨르비행장 일대에 스포츠타운을 종성하는 사업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데 제주포럼을 활용하고 싶더라도 말이다.

지난 5월 30일 열린 제주포럼 폐회식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폐회사로 약속했던 말로 이 글의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제주포럼은 앞으로도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평화를 실천하는 역할을 지속하겠다.”

이 말의 구체적인 실천을 기다린다.

조수진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조수진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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