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알뜨르 비행장 일대에 추진 중인 평화대공원 조성 사업과 관련, '세계UN평화공원'으로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다소 뜬금없다는 지적이다.
제주도의회 양병우 의원과 '알뜨르·송악산평화대공원 추진위원회'는 지난 10일 제주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알뜨르.송악산 평화대공원 추진을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주제발표를 맡은 강태권 추진위 사무국장은 알뜨르·송악산 평화대공원의 의미가 기존 계획을 넘어, 세계UN평화공원으로 확장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강 사무국장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알뜨르비행장이 설치 당시 언론보도와 공식문서의 모순 등이다.
다수의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수년간 해군성에서 계획 중이던 해군용비행장은 1932년 4월 2일 실지조사를 진행, 같은해 6월 20일 공사에 착수했다. 이로 부터 단 한 달만인 같은해 7월 20일 개통식이 열렸다.
하지만 일제 공식문서에는 이와 달리 매입시기를 1932년 8월 9일부터 1933년 3월 10일까지로 기록된다.
강 사무국장은 “이는 알뜨르비행장을 먼저 설치하고, 이후 매입 과정을 거쳤다는 말이 된다”면서 “즉, 정상적 과정이 아닌, 강제수용을 통해 비행장이 건설됐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44년 10월 미군에 의해 촬영된 위성사진에서도 일제 해군의 자살특공병기 신요(진양)가 포착되기도 했다고 설명헀다. 현재도 동굴 앞에는 보트레일로 볼 수 있는 시멘트 길이 바다로 이어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근거를 들었다.
강 사무국장은 “시인으로 유명한 노산 이은상은 1937년 7월 24일 조선일보의 기획을 통해 제주도 일주와 한라산 등반을 하게 된다. 이로 부터 3일 뒤 대정읍성을 둘러보고 모슬포로 향했지만 지역 거주민이 아니면 통행이 불가한 상황이었다”면서 “비행장 확장과 오무라 병영 설치로 모슬포가 군사기자화 된 상황을 설명해주는 사례”라고 예시를 들었다.
강 사무국장은 특히 UN이 관리하던 서귀포시 모슬포 중공군포로수용소 캠프3를 주목했다. 1952년 제주로 유입된 약 1만4500명의 중공군포로는 알뜨르와 정뜨르(현 제주공항)에 설치된 수용소에 각각 반공포로와 친공포로로 나뉘어 수용됐다.
그는 “1964년 국립건설연구소가 제작한 지도에 수용건물이 담겨있기도 하다. 많은 사진을 통해 UN의 많은 인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면서 “1950년 섯알오름 학살터에서 목숨을 잃은 민간인의 경우에도, 해당 수용소로 인해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어 6년이 지나서야 알려지게 됐다”고 말했다.
강 사무국장은 2008년 제주평화대공원 조성기본계획이 수립됐지만, 알뜨르와 송악산이 갖고 있는 함의적 부분이 기초부터 반영되지 못한 부분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제주4.3 등을 중심으로 평화대공원의 의미를 부여한 점은 인정하지만, 중공군포로수용소에 대한 내용은 완전히 빠져 있다는 것.
강 사무국장은 "평화대공원의 의미가 축소된 결과, 전체적 틀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할 수 있는 방향성도 갖지 못했다"면서 "2008년 기본계획 수립 후 15년이 지난 올해, 중공군포로수용소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발굴됐고, 심도 있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알뜨르를 동북아 평화벨트의 심장부로 하는 UN평화공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어진 토론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적절한 근거와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찬식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 ▲이종훈 숭실대학교 평생교육 HRD연구소 교수 ▲문성종 제주한라대 교수 ▲강상수 제주도의원 ▲변덕승 제주도 관광교류국장 ▲고영만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좌장은 양병우 도의원이 맡았다.
박찬식 관장은 “이는 UN이 관심을 가져야 가능한 방안인데, 현재 상황이랑 동떨어지는 감이 있다”면서 “다만, 말씀하신대로 알뜨르에는 태평양 전쟁, 일본 군사 유적, 4·3유적, 한국전쟁 등 다양한 세계사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합해 유네스코가 관리하는 세계복합유산 등재 운동을 벌이는 것이 더 현실적 대안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만약 이뤄진다면 세계UN평화공원이라는 것은 자동으로 성립될 것으로 보여진다. 조금 더 체계적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훈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인권 관련 이야기가 누락된 게 많아 아쉽다. UN평화대공원은 국내외 사례가 전무하기도 하다"면서 "과거 역사만 이야기할 뿐 활용계획이나 재원 확보 방안, 지역주민과의 상생방안 등 제언에 대한 구체적 방안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또 "해당 사업 추진에 있어서는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알뜨르 부지 무상사용 관련 제주특별법 개정안의 통과 여부가 가장 핵심적 부분"이라면서 "대정주민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도민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문성종 교수는 "'UN'이나 '유네스코'라는 단어가 붙으면 관광객 수가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기관보다는 '세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평화대공원 사업이 순조롭게 이뤄지려면 특히 대정읍 주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다크투어리즘의 상징인 이우슈비츠 수용소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이미지 등 예술로서 평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중공군포로군 수용소를 재현할지, 미래지향적으로 평화의 이미지를 담은 문화예술 분야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이 밖에도 강상수 의원은 "지난해 8월 프랑스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에 다녀왔다.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에 대해 의견을 물었더니 '보전만이 정답이 아니다. 개발 보전을 조화롭게 이끌어 가면서 추진하면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들었다"면서 "송악산과 알뜨르도 역시 자연환경을 살리면서 최고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변덕승 국장은 "평화대공원은 각각의 실시설계를 통해 앞으로의 내용들을 추진해야 하기에 제주도 한 부서로 통합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라면서 "평화대공원 사업 후에는 센터나 부서 신설로 통합, 여러 방면으로 활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영만 본부장은 "현재 예산을 투입, 알뜨르에 있는 격납고와 지하벙커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보수.정비하고, 관계 부처와 협의도 마친 뒤 국비를 신청해 활용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