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2공항 건설 추진계획이 발표된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계획에 대해 도민사회가 찬반양론으로 분열되고 있다. 최근의 논쟁과 갈등은 도민사회 안으로 더욱 더 깊이 파고들고 있다.
찬성과 반대라는 논리 싸움도 모자라, 도민 개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토론은 사라지고 욕설과 야유, 고성을 넘어 인신공격의 비난과 몸싸움까지 펼쳐졌다.
지난 6일 서귀포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도민경청회 플로어 토론에 나선 고창권 제주제2공항건설촉구범도민연대 위원장은 정모 군의 발언을 두고 반대 주민들에게‘전문시위꾼'이라 칭하며 "학생까지 동원해 전문적으로 감성팔이를 하는 것 같다”고 폄하발언을 했다. 엄연한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발언하는 청소년에게, ‘감성팔이’라는 오명을 씌우는 광경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제주도정이 ‘도민경청회를 사실상 명분 쌓기를 위한 요식행위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이상하지 않다. 도정이 찬반 갈등을 부추길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면, 현 도정이 갈등현안에 대한 감각과 갈등중재 역량이 아마추어라는 것을 보여준다.
주민들을 찬성측과 반대측을 기계적으로 나누어 진행되는 토론을 소극적인 제재를 넘어서 보다 강력한 개입이 필요했다. 자신과 다른 상대 토론자에 대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도록 하여 개인에 대한 공격성 발언을 제지하고 발언을 중단시켰어야 옳다. 하지만 당시 사회자는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지 말아달라’고 소극적인 제지발언만 할뿐, 건전한 토론을 만들어나가지 못했다.
도민경청회에서 보여준 이 단면은 제주도정이 제2공항 건설 갈등에 얼마나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지난 13일에 열린 제주도의회 제415회 임시회 도정질문에서 한 도의원이 “도정질문과 행정사무 감사 등을 통해 제2공항에 대한 견해와 갈등 해소 방안을 물었지만, 제주도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제2공항 관련 도정의 입장이 무엇인지 제대로 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명확하게 얘기하고 싶고 마음을 전달하고 싶지만, 도지사 자리는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오영훈 도지사의 발언은 일견 타당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영훈 도지사는 이번 갈등에 있어 당사자이자 결정 주체이다. 기계적 중립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토부와 원희룡 장관의 정책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것이라고 읽힌다.
취임 이후인 작년 12월 국민의힘 북핵특위가 제주도 핵 배치를 언급한 것에, 오영훈 도지사가 직접 "제2공항이 군사공항 전락하는 일, 목숨 걸고 막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제주도에 군사기지가 필요하고, 제주 제2공항을 군사기지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오영훈 도지사는 이제 와서 입장표명을 꺼리는 것인지 도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제2공항이 들어서면 공항이 군사기지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현실 조건에서, 제2공항이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면 반대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마당에 오영훈 도정은 무엇을 주저하는 것인가.
오영훈 도지사에게 요구한다. ‘다함께 미래로 빛나는 제주’를 슬로건으로 출범한 오영훈 제주도정은 제주도의 미래 모습을 결정할 제주 제2공항 문제를 도민들의 집단지성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체 없이 주민투표를 실시하라! 제2공항으로 인한 도민사회의 갈등을 하루빨리 종결하기 위해서 주민투표를 실시하라!
주민투표를 실시할 법률적 근거는 충분하다. 주민투표법 제7조 1항에는 주민투표 대상에 대해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사항은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2공항 건설사업은 국가계획인데 제주도민이 결정할 수 있느냐 묻는 사람도 있다. 제2공항 건설계획이 중앙정부, 국토부의 추진사업이기는 하나 제주의 일이다. 제주의 미래를 결정짓는 일이기에 제주도민이 결정해야 한다.
의견 수렴 이후 만에 하나, 국토부에 의해 기본계획이 고시될 경우 제주도가 환경부에 의견을 표명하고, 제주도의회의 동의를 거쳐 협의 여부를 판단토록 규정되어 있다. 이 경우에는 제2공항 사업에 있어 공은 제주도민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국토부의 기본계획 고시는 제2공항 사업에 있어, 국토부가 분명한 정치적으로 강행추진 입장을 표명한 것인 만큼, 도민사회의 갈등과 혼란은 파국을 맞게 될 것이 뻔하다.
앞서 도의회에서 밝힌 것처럼, 도지사로서 입장 표명이 난감하다면 주민투표를 실시하면 된다. 제2공항 건설 갈등에 있어 제주도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현명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2011년 강정해군기지가 국가사업이라는 명분으로 폭력적으로 건설되는 과정에서 제주도민을 넘어 많은 국민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체의 비인간적인 공사 강행, 경찰 당국의 폭력적 행정대집행으로 얼룩졌었던 역사를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또 다시 그런 역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제주도정의 수장으로서 지금 즉시 주민투표 실시를 천명하고, 그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여 결정할 것을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강력하게 요구한다.
강순아 정의당 제주도당 부위원장.
시민들이 일상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가장 큰 존재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더 낮은 곳으로 시선을 향해야 합니다. 정치가 시민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행동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