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지사는 제2공항 기본계획에 대한 도민 의견 수렴 결과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유형이 가장 많았다면서도 주민투표를 국토부에 직접 요구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오 지사는 제2공항 관련 도민 자기결정권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정작 제2공항 건설 추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기결정권 실현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오 지사는 제2공항 관련 검증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아무런 검증 작업도 진행하지 않았다. 도민은 제2공항에 대한 제주도의 검증 결과를 확인하지도 못하고, 제2공항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실현할 기회도 없이 국토부의 고시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오 지사는 27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제2공항 기본계획에 대한 최종 의견안을 마련하고 이르면 다음주 중 국토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 지사는 제주도의 의견 제출 방식에 대해 “최종 의견안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종합적으로 의견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저희들의 의견이 정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렴된 의견을 종합해 제주도의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는 않고 ‘백화점식 의견 제출’에 그치겠다는 것이다.

그는 “내부적으로 실무적으로도 확인해 봤을 때도 (주민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라면서 사실상 주민투표 직접 실시는 물론 공식 요구조차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주민투표와 관련해 구절구절 ‘법이 그렇다’고 말했지만, 현행 법률의 불합리성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저 국토부가 결정하면 제주도는 꼬리 내리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 지사는 도지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이 제약되어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들었다. 하지만 제주지사가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도민의 뜻을 묻는 일, 즉 자기결정권 확보가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는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사업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데 ‘더 많은 민주주의’보다 더 큰 명분은 없다. 오 지사 스스로 도민의 자기결정권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해온 바, 자신이 내뱉은 말을 따르면 된다.

오 지사는 주민투표의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거론했다. 즉, 주민투표 요구를 국토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고, 제주도가 직접 주민투표로 제2공항에 대한 도민의 뜻을 물어도 국토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힘이 세다. 제주도가 주민투표를 통해 도민의 뜻을 모아내면 국토부가 거부할 명분이 없다. 민의보다 중요한 명분이 무엇인가. 그것을 거스를 명분이 없기 때문에 주민투표를 ‘법’으로 강하게 제약하고 있는 것 아닌가.

도민의 자기결정권 확보가 중요하다는 말을 입에 담아온 오 지사는, 온당히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제주 지역에서 추진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해 도민의 뜻을 직접 물을 수 있도록 제주특별법에 반영해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는 패기 있는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말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오 지사에게 '도민의 자기결정권'은 대체 무엇일까. 목에 걸고 있다가 답답하면 풀어서 내던져버리는 넥타이 같은 정치적 패션 아이템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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