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4·3이 ‘해결’이란 단어와 함께 자주 언급되지만 재일제주인에겐 와닿지 않는 현실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역사’라 홍보되는 ‘4·3’에서 소외되고 있는 재일제주인의 현주소와 과제를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4일 오후 일본 오사카 KCC회관 5층에서 진실과 정의를 위한 ‘제2회 제주4·3국제포럼’이 열렸다.제주4·3국제네트워크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제주4·3을생각하는모임-오사카, 재일본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주관했다.
이날 2부 토론 순서에 토론자로 참여한 홍정은 오사카공립대학 인권문제연구센터 특임조교는 재일제주인 4·3피해실태 조사의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이와 관련한 추가진상조사는 지난 2021년 4·3특별법이 전부개정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 재단 조사연구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홍정은 특임조교는 지금의 4·3특별법에서 재일제주인이 소외되는 현실과 이들의 생애사를 기록하고 보전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우선 희생자 신고와 보상금 신청이 별개의 행정 절차로 진행됨에 따라 재일제주인 4·3희생자 및 유족이 소외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희생자 신고를 한 이가 사망하거나 연락처가 불분명해진 경우 보상 신청 관련 정보가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아 재일제주인이 4·3피해 보상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민간 영역에선 관련 개인 정보에 접근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정보 열람 및 처리 권한을 가진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둘째로 지리적·언어적 여건으로 인해 희생자 신고를 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일본 내 상시적으로 신고 및 상담 창구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홍 특임조교는 “살던 마을이 없어졌거나 혈연이나 지연 등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경우 희생자 신고를 하지 못한 유족들이 많다”며 “증언(신고)을 하기 위해 일본과 제주를 왕래해야 한다는 것은 고령의 미인정 생존 희생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한국어로 소통하기 어려운 유족들도 어려움이 크다. 특히 교육 경험이 없는 고령의 여성 대부분은 희생자 신고를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젠더화된 문제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셋째로 4·3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금을 제외한)지원이 제주에 거주하는 경우에만 이뤄지는 데 대해 “거주지역이나 국적으로 4·3피해자를 축소시키는 방식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재일제주인의 계량할 수 없는 희생의 경험을 기록·보존·계승하는 작업이 다각도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 특임조교는 “희생당할 위험을 피해서 일본으로 건너온 분들은 그 과정자체가 희생”이라며 “재일제주인 모두를 피해자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협의의 희생 개념에서 광의의 희생 개념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생존하는 삶이 더 고통이 되었던 증언을 들으면서 국가 정책이 배제하는 기억들 속에 많은 수의 도항자와 밀항자의 삶이 위치해 있다는 걸 알았다”며 “해결과 청산의 이름으로 소환하기엔 그 과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결될 수도, 청산될 수도 없다”고 힘줘 말했다.
아울러 “제주 또는 고향이란 공간과 가족 또는 친인척으로부터 멀어지는 걸 감수하고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온 개별 재일제주인들이 어떻게 4·3을 겪었고 목격했으며 나아가 그 결과로 여기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가시화하고 이조차도 우리의 경험이라고 인지해나가야 한다”며 “이는 새로운 방향에서 4·3을 바라보는 시도를 통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희생자의 정의가 ‘유족’과 ‘비유족’을 구별짓고 선별적으로 제주인의 정체성을 투여하고 타자화시키는 과정이 진행되면서 재일제주인은 소수가 포섭되고 다수가 배제되는 선별 과정을 겪고 있다”고 피력했다.
앞서 이날 1부 순서에선 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명예교수가 <재일제주인피해실태조사의 배경과 과제> 주제로, 고성만 제주대 교수가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현 단계와 과제> 주제로 발표했다.
이어진 2부에선 제주4·3을생각하는모임-오사카 김현태 활동가가 좌장을 맡고, 토론자는 △김지민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국제위원장 △김유정 존스홉킨스대학교 문화인류학 박사수료생 △박범철 경문고 교사 △이동현 제주4·3연구소 연구원 △오카자키 료코 제주4·3을생각하는모임-오사카 활동가 등이 참여해 토론을 진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