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는 전날인 2일 제주시 하니크라운 호텔 회의실에서 '1947년 3.1사건과 3.10총파업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는 전날인 2일 제주시 하니크라운 호텔 회의실에서 '1947년 3.1사건과 3.10총파업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나보다 더 한 사람도 많을텐데…', '주변에 상처받은 분들이 많다. 가해자 조사가 미흡하다.', '아버지 얼굴, 아버지 한 번만 볼 수 있었으면'

제주4.3 발발 전 3.1 사건과 3.10 총파업 관련 피해자들의 말이다.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신고의 사각지대로 남아있어 조사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는 전날인 2일 제주시 하니크라운 호텔 회의실에서 '1947년 3.1사건과 3.10총파업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2003년 발간된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서는 3·1사건이 제주 현대사에서 분수령으로 기록될 만큼, 역사 흐름의 한 획을 그었고 4·3으로 가는 도화선이 됐다고 기술한다. 그러나 도민 피해 사실은 구체적이지 않아 국가기록원의 수형인명부 등재 3·1사건의 피해자 244명의 희생사실을 조사,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회복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도민연대는 지난해 4월 1일부터 같은해 11월 30일까지 국가기록원의 수형인명부에 등재된 3.1사건 피해자 244명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과 3.10 총파업을 통해 억울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다. 거주지별로 보면 당시 제주읍이 49명, 서귀면.대정면 25명, 한림면 24명, 구좌면 23명 순으로 많았다. 도외지역 3명도 있었다.

연령별로 보면 대다수가 청년이었다. 20대 132명, 30대 74명, 40대 25명, 50대 10명, 10대 2명으로 집계됐다. 직업은 농업 92명, 교원 77명, 자영업(공업) 29명, 관공서 20명 등으로 집계됐다. 경찰과 학생, 무직도 있었다. 이들은 1947년 4월부터 같은해 12월까지 유죄선고를 받았다. 벌금형만 받은 사례가 111명으로 가장 많았고, 징역형은 56명으로 뒤를 이었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는 전날인 2일 제주시 하니크라운 호텔 회의실에서 '1947년 3.1사건과 3.10총파업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한 가운데, 양동윤 도민연대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는 전날인 2일 제주시 하니크라운 호텔 회의실에서 '1947년 3.1사건과 3.10총파업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한 가운데, 양동윤 도민연대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전날인 2일 제주시 하니크라운 호텔 회의실에서 '1947년 3.1사건과 3.10총파업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3.1사건 및 3.10총파업 유죄 선고인 읍면별 분포 그래픽.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전날인 2일 제주시 하니크라운 호텔 회의실에서 '1947년 3.1사건과 3.10총파업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3.1사건 및 3.10총파업 유죄 선고인 읍면별 분포 그래픽. (사진=박지희 기자)

다만, 이번 조사에 참여한 사람은 212명이었다. 발표를 맡은 양동윤 도민연대 대표는 "희생자 확인이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고, 시간이 부족해 조사를 못한 분들도 있다"며 "조사 결과, 4.3희생자 신고에 대한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해보인다"고 의견을 냈다.

참여자 중 희생자 신고를 한 경우는 132명(62.3%)으로, 아직 신고하지 않은 사례는 80명(37.7%)에 달했다. 미신고 80명에게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48.8%(39명)이 '신고대상이 아닌 줄 알았다'고 답했다. 희생자인 줄 몰랐거나, 3.1사건 등은 4.3피해자가 아닌 줄 알았다는 의견이다.

특히 3.1사건 관련 피해자가 ▲체포 장소 ▲체포 이유 ▲체포 후 갇힌 곳 ▲체포된 후 조사 방식 ▲재판 여부 ▲재판받은 법원 ▲선고 후 복역한 형무소 위치 등의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당시 재판 형량이 납득되냐고 묻는 질문에는 60.8%(127명)가 모르겠다고 답했지만 29.7%(62명)는 납득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잘못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 78%(46명)였다.

'제대로 된 재판이 아니어서'라는 의견도 10.2%(6명)를 차지했다. 이들은 모두 '재판 절차가 제대로 지켜진 것 같지 않다'고 의견을 냈다.

양 대표는 "당시 경찰이 잡아갔지만 가족들에게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공권력의 횡포, 희생자들을 체포하면서 최소한의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판결문과 집행영장 등 재판 관련 자료가 구체적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애월초 교사 이경천과 안덕면 민청위원장 장진봉, 덕천리 민청위원장 박원길, 금악리 자위대장 박남섭 등으로, 최근 일반재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자료가 확인된 경우였다.

양 대표는 "당시 미군정이 직접 사건에 관여했다는 증거 자료"라며 "미군정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이러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전날인 2일 제주시 하니크라운 호텔 회의실에서 '1947년 3.1사건과 3.10총파업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한 가운데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전날인 2일 제주시 하니크라운 호텔 회의실에서 '1947년 3.1사건과 3.10총파업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한 가운데 (사진=박지희 기자)

이어진 토론에서 박찬식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관장은 "참여자를 찾은 방법 등 조사에 참여한 유족 및 희생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어서 아쉽긴 했다"면서도 "하지만 이러한 실태조사는 시민단체가 아닌 행정당국이나 4.3재단 등 공공이 나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의견을 냈다. 

박 관장은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과 3.10 총파업을 겪은 도민들도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라 4.3특별법에 당연히 적용된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찾아 희생자 신고에 도움을 줘야 할 제주도는 공고만 내고 가만히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조수진 제주투데이 기자는 "이날 공개된 판결문 등 공식 자료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료로 큰 의미가 있다. 다만, 같은 역사라도 접근방식에 따라 모습이 다양해진다"며 "제주투데이에서도 조사연구팀을 꾸려 3.1사건 관련 기획 연재를 진행 중이다. 현장답사, 신문기사, 진상조사보고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마을별로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그간 해왔던 조사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현재 피해자들에 대한 직권재심 및 보상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등 여러 의미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해결됐다고 보기엔 이르다. 아직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는데도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채 마무리되면 4.3의 역사가 닫히게 된다. 앞으로 계속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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