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무렵, 이태원의 재즈 클럽에서 기타 트리오 연주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15년 정도 연습해야 저 무대에 설 수 있겠구나'

재즈는 내가 하던 락 음악과는 연주 형식이 많이 달라 기존의 습관을 버리는 데만 2여년이 걸렸다. 즉흥연주가 중심인 재즈 연주는 유리처럼 투명했다. 실력이나 감정을 감추거나 덧칠할 수가 없었다. 조금 쉬운 길로 가려다 와르르 무너져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 연습일지의 맨 앞 장엔  웨스 몽고메리의 이런 말이 써 있었다.

"음악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 당신이 음악에게 주었던 것들 뿐입니다"

다행히도 요행이나 기적을 바라진 않아 크게 낙담하진 않았다. 실력이 쌓이길 기다릴 뿐이었다.

얼마 전, 집으로 가던 중 모처럼만에 동네 어귀 술집을 들렀다. 가게는 작았지만 잘 정돈돼 있었고 아늑했다. 무엇보다 실내를 포근하게 감싸는 음악선곡이 절묘했다. 내가 있던 시간엔 주로 듣기 편한 정통 재즈와 팝 재즈들이 흘렀다. 과하지 않은 적절한 음량과 중저음이 풍부한 스피커의 음향은 몸과 마음을 편하게 했다. 음식 역시 담백하고 여유로운 맛이었다.

그날 들었던 음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은 냇 킹 콜Nat King Cole이었다. 평소에는 거의 듣지 않지만 술과 함께 하는 그의 음악은 늘 선명하게 뇌리에 남는다.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와 청명한 피아노, 두텁고 빈티지한 베이스 워킹과 함께하는 일렉 기타의 무르익은 소리는 재즈이면서 때론 팝이기도 하고 클래식이기도 했다.

강력한 사운드의 빅밴드(당시의 댄스음악이었던)가 판을 치던 1940년대, 냇 킹 콜은 기타리스트 오스카 무어Oscar Moore, 베이스 주자 웨슬리 프린스Wesley Prince와 함께 'The King Cole Trio'를 결성했다. 초기에는 보컬이 없는 연주 위주였고 세 명의 연주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연주했다.

막 개발된 할로바디 기타의 증폭된 사운드는 피아노와 잘 어울렸고 트리오가 빚어내는 사운드는 독특하고 개성적이었다. (콜의 피아노 실력은 가히 독보적이었고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레드 갈랜드 Red Garland 등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가 정립하고 유행시킨 이 트리오 연주는 실내악적인 느낌이어서 라이브에서는 물론 오디오에서 감상하기에도 좋았다.

이후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는 더욱 살벌한 테크닉으로 이 편성을 더욱 발전시켰고 아마드 자말 트리오는 좀 더 내밀하고 깊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1950년대 냇 킹 콜 트리오에 오케스트라 세션이 참가한 <Mona risa>가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면서 피아니스트가 아닌 보컬리스트로 더욱 부각되기 시작한다.

이런 냇 킹 콜 류의 트리오 편성에는 피아노만큼이나 기타도 중요한데 콘트라 베이스와 함께 컴핑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다양한 느낌의 솔로를 풀어내야 했다. 그러므로 오스카 무어Oscar Moore , 빌리 바우어Billy bouer 허브 앨리스Herb Ellis 등 당대의 내로라 하는 기타리스트들이 그의 팀을 거쳐 갔다.

 

 

드럼과 관악기가 가세해 좀 더 다이나믹한 연주가 들어있는 <After Midnight>도 좋지만 오늘 추천하는 앨범은 <The King Cole Trio Vol.1,2>다. 오스카 무어의 무심한 듯 섬세한 터치의 솔로라인과 웨슬리의 탄탄하고 묵직한 베이스 워킹은 여느때보다 콜의 목소리를 빛나게 한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그 시절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연주다.

짧지만 인상적인 피아노 인트로에 이어 나오는 냇 킹 콜 특유의 발성과 기타의 오블리가토, 솔로연주가 돋보이는 <Sweet Lorraine>, 스윙감이 넘실대는 <It’s Only Paper Moon>과 나른하고 여유 넘치는 앙상블이 매력적인 <Easy Listening Blues>등 다채로운 색감의 곡이 가득하다. 냇 킹 콜 트리오의 음악적 유산은 현재도 다이아나 크롤Dianna Krall과 존 핏자렐리John Pizzarelli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냇 킹 콜 트리오를 좋아한다면 들어볼 만한 음반 8선

Dianna Krall < All For You : A Dedication to the Nat King Cole Trio 1996>

John Pizzarelli <Dear Mr.Cole & P.s Mr. Cole 1999>

Ray Brown, Monry Alexander, Russell Malone <Ray Brown, Monry Alexander, Russell Malone 2002>

Chet Baker Trio <Someday My Prince Will Come 1983>

Nicki Parrott <Unforgettable 2017>

Ben Patterson <That Old Feeling 2018>

Alexis Cole & Bucky Pizzarelli < A Beautiful Friendship 2005>

John Bunch <Tony’s Tunes 2003> & Bucky Pizzarelli Jay Leonhart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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