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을 맞아 전 세계가 떠들썩하던 1999년이었다. 10여년을 함께 했던 메탈 밴드의 드러머가 갑작스런 탈퇴를 선언했다. 밤을 새워가며 새로운 경향의 메탈 음악들을 연구하고 녹음하던 중이었다. 충격이 컸다. 도저히 납득이 안돼 이유를 물었다.
- 음...이제는 재즈가 하고 싶어서.
뭐? 재즈? 저녁이 되고 나는 용두암 근처의 음악전문 감상실 '파블로'로 향했다. 새우깡에 맥주 두어 병을 마시고는 사장님을 향해 외쳤다.
"가장 유명한 재즈 뮤지션 영상 좀 틀어주세요!"
멋드러진 백발을 자랑하는 사장님은 빙그레 웃으며 당시로선 희귀한 LD를 꺼내 틀어 주었다. 흑백 영상이었고 양복을 입은 네 뮤지션이 흐느적 거리며 음악들을 연주했다. 뭔가 끈적이면서 묘하게 일그러진 색소폰과 치는 듯 마는 듯 팔을 휘젓는 드럼. 커다란 베이스가 내는 저음과 뚱땅거리는 그랜드 피아노의 야릇한 멜로디가 힘 없이 어우러졌다.
믿기지가 않았다. 너무 '멋'이 없었다. 이런 재미 없는 음악을 하겠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MP3를 꺼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을 틀었다. 광음의 기타리프에 맞추어 타이트한 리듬의 드럼과 베이스가 어우러지고 그 위를 보컬의 래핑과 스크리밍이 터져왔나다. 이게 진짜 음악이지. 그날 나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을 들으며 팀을 떠난 친구를 그리워 했고 친구를 빼앗아간 재즈를 원망했다.
누구나 재즈를 원망한다. 재즈를 듣기 전까지는.
요즘은 카페나 술집에서 재즈가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이지 리스닝 계열의 가벼운 재즈이긴 하지만. 재즈는 다른 음악과 달리 진입장벽이 좀 높다. 보컬 재즈 곡이나 정통 재즈는 그나마 들어줄 만하지만 비밥,하드밥을 거쳐 프리재즈는 외면받기 십상이다. 특히 모던 크리에이티브 류의 음악은 연주자 혹은 재즈 매니아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나 딥리스닝 하기는 더 더욱 어렵다. 나 역시 그랬다.
재즈에 입문하고 싶다면 그 방법은 간단하다. 자주 들으면 된다. 스탠다드 곡부터 시작해 악기 별로 구분해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재즈 스탠다드의 멜로디는 의외로 단순하다. 멜로디를 몇 번 흥얼거리다 보면 금세 선율이 익숙해진다.
뮤지션들은 그 단순한 선율을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즉흥적으로 베리에이션(변주) 한다. 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매번 주멜로디Head Melody가 달라진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부분들을 찾아내고 그 차이를 즐기는 것이 재즈 음악감상의 첫 걸음이다. 원곡의 멜로디를 어떻게 변주하고 새롭게 연주하는지 찾아다보면 재즈를 좀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변화무쌍한 즉흥연주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 그럼 Chet baker의 My Funny Valentine(보컬 버전)을 들으면서 재즈를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가장 먼저, (연주자들이 헤드 멜로디라 일컫는) 보컬의 멜로디에 집중해서 듣는다. 두 번째는 콘트라 베이스만 집중해서 듣는다. 세 번째 들을 때는 보컬과 콘트라 베이스에 집중해 두 악기가 서로 어떻게 반응하며 연주하는지 들어본다. 네 번째는 보컬을 중심으로 피아노가 어떻게 보컬에 스며들며 연주하는지 들어보자. 끝으로 보컬, 베이스, 피아노를 동시에 듣는 연습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같은 곡을 여러 번 듣다보면 보컬과 악기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보컬이 없는 (악기 중심의) 듀오와 트리오, 쿼텟 연주까지 확장해 나가게 되면, 그때는 재즈의 중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드러머 친구가 떠나고 음악 감상실을 찾았을 때 음악 감상실 사장님이 틀어줬던 영상은 존 콜트레인 쿼텟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그때의 영상을 찾아 보았다. 끝내주는 연주였다.)
<초심자들을 위한 추천 재즈 음반>
Bill Evans & Jim Hall - Undercurrent 1962년
Miles Davis - Kind Of Blue 1959년
Oscar Peterson Trio - We Got Request 1965년
Sonny Rollins - Saxophone Colosuss 1956년
Johnny Hatrman - With John Coltrane 1963년
Gerry Mullian Quartet - Night Lights 1993년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