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 펜더'는 소설가를 꿈꾸고 예술의 도시 파리를 동경한다. 연인과의 파리 여행중 사소한 다툼 끝에 밤거리를 배회하게 된다. 자정이 되자 종소리가 울리며 오래된 클래식카가 나타난다. 그 차가 향한 곳 황금시대인 1920년.
환상적인 시간 여행이 시작됐다. 처음 들른 카페에서 'Let's Fall in Love'가 흐른하. 고개를 돌려 무대를 보니 콜 포터가 노래하고 있다. 길은 놀라면서도 어느 순간 이런 상황들을 즐긴다. 그곳에서 헤밍웨이, 피카소, 피츠제랄드 등을 만나고 그들과 삶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논한다. 그렇게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맞게 되는 여러 경험들을 통해 그는 새롭게 변화한다. 재즈광인 감독 우디 앨런의 엉뚱한 상상은 파리의 우아한 건축물과 로맨틱한 거리, 때맞춰 흐르는 올드 재즈와 멋지게 어우러 진다.
나 역시도 가끔 1930년대의 경성(지금의 서울)을 꿈꾼다. 이상과 구본웅이 짝맞춰 서촌 거리를 거닐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정현웅의 삽화와 함께 실렸던 잡지 <여성>이 있었던 시대. '제비다방'에서 금홍이 틀어주는 고전음악을 들으며 가배(커피)와 홍차를 마시고 싶다. 그리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구보처럼 술에 취해 경성 거리를 헤매다니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의 재즈가 어떤 식으로 향유되었는지, 연주자들은 어떻게 재즈언어를 습득했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당시 열악한 레코딩 장비로 빅밴드 녹음은 어떻게 했는지 아!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다.
사료를 보면 한국 재즈의 시작은 1920년대 말, 전라도 출신의 한 재력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만석꾼의 아들이었던 백명곤은 음악을 좋아했고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경기에 참가했다가 재즈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곳애서 재즈악보를 입수하고 색소폰,트럼펫등 여러 서양 악기들을 구입해 국내로 들여 왔다고 한다.
친우였던 홍난파는 그 악기를 사용해 음악동인들과 연습했고 1926년 2월 서울의 청년회관에서 첫 연주회를 열었다. 그 후 새롭게 멤버를 모아 한국 최초의 재즈밴드인 <코리아 재즈밴드>를 결성하곤 전국을 돌며 재즈를 연주한다. 젊은이들이 이 새로운 음악에 열렬히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1930년대가 되자 대중음악 시장은 엄청나게 성장하게 된다. 당시 유행 하던 음악들은 주로 유행가(트로트), 만요, 신민요, 쟈스송(재즈)이었다. '트로트(유행가)'는 시적인 가사와 애조띈 멜로디로 현실을 노래한 음악이었다. '신민요'는 기존의 민요에 서양 악단의 연주를 대입해 새로운 형식의 대중가요로 발전했다. 희극적인 연출과 만담을 바탕으로 한 '만요'는 말 그대로 코믹송이다. 재즈적인 악곡에 익살과 해학을 담아내 당시의 시대상이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대체로 부유했던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은 화려한 악곡과 밝은 느낌의 선율, 신나는 스윙리듬이 담겨진 재즈송에 열광했다. 재즈송은 재즈는 물론 블루스, 라틴음악, 샹송 등 서양에서 건너 온 음악을 통칭하는 용어였다. 이처럼 모던세대들은 새로운 음악과 함께 식민지 시대의 현실을 잊고자 했고 동시에 서구의 문화를 동경했다. 이는 식민지 시대의 무력감과 허무주의의 표현이기도 했다.
당시에 인기있었던 몇 곡 들을 살펴보자. 1932년에 발표된 이애리수의 '황성옛터(황성의 적)'는 허물어진 고려 궁궐을 보며 망국의 한과 악극단의 서글픔을 담아 냈다고 한다. 가사의 일부만 봐도 폐허가 된 성터를 바라보는 떠돌이 나그네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엾다 이 내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어 있노라'
이 곡의 엄청난 인기로 레코드 취입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다양한 음악들이 불리워 졌다. 그러자 일제는 1933년 사전 검열을 통해 음반발매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민족적인 이념이나 현실비판의 노래는 발표를 금지당했다.
중일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조선이 제국주의 전쟁에 휘말리기 시작하던 1936년.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는 <이태리 정원>을 발표한다. Billy Cotton and His Band의 'A Garden In Italy를 번안한 이 곡은 이국적이고 세련된 멜로디에 낭만적 가사를 입혔다.
'맑은 하늘에 새가 울면
사랑의 노래 부르면서
산 넘고 물을 건너
님 오길 기다리는 이태리 정원
어서 와 주세요'
George W Johson의 'The Lauphing Song'을 번안한 강홍식의 <유쾌한 시골영감 1936>은 모던하고 유머러스하다. 콜롬비아 재즈악단의 빅밴드 연주에 해학적인 가사가 담기면서 재즈와 만요가 절묘하게 결합된 곡이다. 한편 1938년에 발표된 김해송의 <개고기주사>의 가사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지금으로 치면 펑크(Punk)적이다.
'아! 여름엔 동복입고 겨울엔 하복입고
옆으로 걸어도 내 멋이야
댁더러 밥 달랬소 아 댁더러 옷달랬소!'
이런 삐딱한 가사와 캄보밴드의 유머러스한 연주는 시대를 벗어난 즐거움과 유쾌함이 담겨있다.
김해송의 또 다른 노래 <청춘계급>은 완벽한 재즈 스윙곡이다. 블루지한 리프에 이어 짤막한 트럼펫 솔로도 매력적이고 전반적인 편곡 또한 독보적이다. 본토의 재즈어법에 특유의 한국적인 감성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 그처럼 암울했던 시대에도 문학은 꽃 피었고 거리에는 음악이 흘렀다. 예술가들은 시대를 살아냈고 그들의 정신은 작품을 통해 계속해서 회자될 것이다.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