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보컬'하면  루이 암스트롱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가 가진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와 스캣, 선명한 트럼펫 사운드는 '재즈 그 자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스윙시대인 30년대에는 빅밴드의 화려한 연주에 밀려 보컬은 그다지 부각되지 못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빅밴드가 해체되고 캄보 위주의 소규모밴드가 유행하자 대중들은 가사가 있는 보컬 재즈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곤 재즈계의 3대 디바라 불리우는 빌리 홀리데이와, 엘라 피츠제럴드, 사라 본에 이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더불어 프랑크 시나트라, 토니 베넷 등 크루너 스타일의 낭낭하고 부드러운 남성 보컬들 또한 사랑을 받았다.

피아노와 관악기가 비밥과 쿨, 프리재즈 등의 음악적 혁신을 주도했다면 보컬리스트들은 그런 새로운 재즈 형식에 목소리를 더해 다른 방향으로의 확장을 꽤 했다.

재즈 보컬이 다른 장르의 보컬들과 차별화 되는 점은  스윙감과 재즈 화성에 대한 이해와 표현 방식, 그리고 다른 악기들과의 자유로운 인터플레이 능력이다. 그래서 재즈보컬들은 노래Singing한다고 하지 않고 연주Play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트 앨링Kurt Elling의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보컬 임프로비제이션과 화려한 보칼리제가 담긴 <The Messanger>앨범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재즈씬에서 가장 주목 받는 뮤지션은 그레고리 포터Gregory Porter일 것이다. 세련되고 도회적인 연주가 담긴 앨범 <Liquid Sprits>은 편안한 감성의 목소리와 함께 팝적이면서도 재즈적 향취를 놓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보다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가진 존 바티스트John Batiste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재즈를 기반으로 가스펠과 리듬 앤 블루스, 힙합, 소울 등 다양한 장르를 녹여낸 2021년작 <We Are>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앨범임이 분명하다.

좀 더 깊이 있는 재즈를 들려주는 세실 맥로린 살바트Cecile McLorin Salvant는 정통재즈를 기반으로 현대적 어법을 충실히 담아내며 대중과 매니아의 주목을 동시에 받고 있다. 얼마 전 발표한 <Melusine>는 그녀의 역량이 집약된 명작이니 필히 들어 보기 바란다.

이렇게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뛰어난 재즈보컬들 사이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는 카산드라 윌슨Cassandra Wilson이다. 그를 처음 마주한 건 20여년 전 어느 작은 영화관에서였다. 그는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에서 그는 블루스 두 곡을 라이브로 '연주'한다. 밴드의 유니크한 사운드와 완벽히 어우러지는 짙고 블루지한 목소리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1955년 미시시피 잭슨에서 태어나 이제 70세의 나이를 목전에 둔 이 노장 아티스트의 음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와 음악 교사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여섯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배웠다고 한다. 십대 초반엔 기타를 독학하며 포크와 블루스 음악을 습득하고 음악의 폭을 넓혔다.

이후 그는1985년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데이브 홀랜드, 애비 링컨과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진보적인 색소폰 연주자 스티브 콜맨을 만난 후엔 아방가르드 흑인 음악 동맹M-Bass Colletive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파격적인 즉흥 앙상블팀에서 Blues, Soul, Funk를 바탕으로한 프리 뮤직을 연주하며 흑인음악 고유의 정서를 체득한다.

이를 자양분으로 JMT 레이블을 통해 앨범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3년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델타 블루스의 고전과 여러 음악들을 재해석한 <Blue Light ’Til Dawn>을 발표하며 비평가와 대중들에게 찬사를 받게된다.

1995년에 발표한 <New Moon Daughter>는 좀 더 원초적인 타악 앙상블과 기타의 거친 질감을 더해 흙냄새 물씬 풍기는 특유의 색감을 만들어낸다. ‘Strange Fruit’, ‘Death Letter’ 등 블루스의 고전 역시 좀 더 깊은 감정의 파고를 일으킨다. 정통적 개념의 재즈가 갖는 스윙감과 보컬 스캣은 없지만 진한 블루스 감성을 바탕으로 즉흥연주와 자유로운 인터플레이가 강조된 앙상블은 충분히 재즈적이고 독창적이다.

그의 가장 최근 음반 2015년작 <Coming Forth by Day>는 몇 년간 주춤했던 역량이 다시 최고조로 올라 왔음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빌리 홀리데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했는데 빌리의 곡인 ‘Don’t Explain’ ’Billie’s Blues’와 빌리 홀리데이가 자주 부르던 레퍼토리를 담았다고 한다.

반복적인 플로어 탐 비트와 두터운 베이스 리프위로 케빈 브라이트Kevin Breit의 슬라이드 기타가 터져 나오면서 시작되는 첫 곡은 역시나 ‘Don’t Explain’이다. 미디움 템포의 두툼한 베이스워킹과 카산드라의 진한 보이스가 어우러지는 ‘All Of Me’ 색소폰의 유려한 인트로와 따스한 스트링 사운드가 담겨있는 ‘The Way You Look Tonight’ 등 곡마다 인상적인 편곡과 사운드가 담겨있다.

한 여름의 더위를 날릴만큼 환상적이고 또한 파격적이다. 특히 마지막곡  ‘Last Song(For Lester)’는 험난한 빌리의 삶에 유일한 안식처였던 색소포니스트 레스터 영을 기리며 카산드라와 멤버들이 작곡한 오리지널 곡이다. 영롱한 하모닉스 아르페지오를 타고 담담히 노래하는 카산드라의 목소리는 서늘하면서도 슬픔을 머금은 듯 촉촉히 젖어있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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