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레코드 매장을 방문했을 때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낯설었던 공기와 티비에선 만날 수 없었던 야릇한 음악들. 벽을 가득 매운 엘피와 뮤지션들의 브로마이드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칠성통 아리랑 백화점 1층의 <아리랑 레코드>, 중앙로 지하상가의 <도레미 레코드>와 언더그라운드 음반이 많았던 시민회관의 <부치사랑> 등이 단골가게였다.
시간이 흐르자 레코드방(당시엔 이렇게 불렀다)은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단골을 핑계 삼아 공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고 책을 읽거나 음반 잡지를 보곤 했다. 바쁜 사장님을 대신해 가게를 봐주기도 했다. 가끔은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까지 머무르며 방대한 양의 음반을 구경했다. 다양하고 이채로운 음반 자켓은 유명 화가의 그림처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1910년 시작된 커버 아트의 시작은 마분지나 봉투에 뮤지션의 이름을 적는 것부터 출발했다. 그러다 1938년 컬럼비아 레코드는 처음으로 전문가를 고용해 음악의 이미지를 디자인하기 시작한다. LP가 음악매체로 등장한 2차 세계대전이후 음반의 커버아트는 아티스트의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 되었다.
1960년대 비틀즈는 [A Hard Day's Night 1964년]를 발표하며 스틸사진 이미지를 차용한 새로운 컨셉의 커버를 선보였다. 이후 [Sgt.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의 아트웍을 보여준다. 칼 마르크스, 애드가 앨런 포우, 아리비아 로렌스, 마릴린 먼로등 30여명의 유명 인물 사진을 오려 붙였고 중앙에는 멤버들이 자신들의 밀랍인형과 함께 서있다. 빨간 꽃으로 장식된 비틀즈 로고 주위를 마리화나 잎이 둘러싼 커버는 사이키델릭함 그 자체였다
핑크 플로이드와 킹 크림슨등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의 앨범은 그야말로 커버예술의 극치라 할 수 있다. Pink Floyed의 명반 [Dark Side Of The Moon ]은 가느다란 빛이 피라미드(프리즘)를 통과하며 다채로운 색으로 변하는 단 3개의 도형으로 앨범 전체의 컨셉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멋진 커버를 제작한 디자인 회사 힙노시스(Hipgnosis)는 계속해서 핑크 플로이드는 물론 폴 메카트니, 레드 제플린 등의 음반에서도 획기적인 앨범 아트를 보여준다.
'Blowing in the Wind'가 수록된 Bob Dylan 의 [Free Wheelin'1963년] 역시 기억할 만 하다. 이 앨범의 커버는 연인이었던 Suze Rotolo와 둘이서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를 걸어가는 평범한 모습이다. 당시 대부분의 앨범 커버가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들에 반해 오히려 평범해서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속에서 의미를 일깨우는 그의 음악처럼 말이다.
재즈음반은 장르 특성상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사진이 많다. 비스듬한 옆모습을 찍은 언더샷으로 색소폰과 소니 롤린스의 모습을 거대화한 Sonny Rollins의 [Saxophone Colosus 1957년]이나 테너 색소폰을 부는 모습을 부각시키며 거인의 발걸음을 연상케하는 John Coltrane의 [Giant Steps 1960년]이 대표적이다.
그런가하면 땀이 송송 맺힌 굳건한 표정이 담긴 흑백 사진을 커버로 쓴 아트 블레키의 [Moan'] 역시 독보적이다. 음악 역시 흑백사진 한 장의 이미지처럼 단단하고 원초적이면서 불타듯 정열적인 하드밥 사운드를 들려준다.
소니 클락 Sonny Clark [Cool Struttin']은 재즈 앨범이라고 생각하기엔 다소 색다른 커버지만 음악을 듣다보면 빙그레 웃음을 짓게 된다.
첫 곡으로 흐른르는 동명의 타이틀 곡 'Cool Atruttin'의 스윙감은 앨범의 사진처럼 세련되고 도도한 여인의 걸음걸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하면 꿈속의 세계를 형상화한 듯 몽환적인 Miles Daves [Bitchs Brew]의 커버는 음악만큼이나 복잡하고 전위적이다. 3대의 드럼과 3대의 건반 사운드, 당시로선 파격적인 일렉기타의 거친 드라이브 소리, 아프리카와 중동과 인도음악이 뒤섞인 집단 사운드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곡의 길이 역시 길다. 첫 곡 'Paroah's Dance'는 20여분에 달하고 타이틀곡 'Bithch's Brew'는 무려 26분이 넘는다.
CTI레이블의 Randy Weston [Blue Moses] 역시 눈길을 잡아 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이 그로테스크하고 사이키델릭한 사진은 피아니스트 피트 터너가 인도 여행중 갠자스강 유역의 한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 업해 찍었다고 한다. 앨범에 담긴 음악 역시 주술적이고 환각적인 사운드가 혼재돼 있다.
마지막으로 Grant Green [Born to be Blue] 앨범 커버를 보자.
옅은 푸른 빛의 조명을 받으며 지그시 시선을 떨구고 기타를 치는 모습은 경건하고 성스럽다. 무심코 음반을 꺼내 앨범 커버를 바라보는 순간 어디선가 투박하고 느슨한 블루스 한 소절이 들리는 듯 하다.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