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The most beautiful sound next to Silence" -ECM Rececord
ECM레이블이 내건 저 간결한 문구을 본 순간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수많은 단어와 무채색의 여러 이미지들이 머리속를 휘저었다.
처음 들었던 ECM 음반은 기타리스트 John Abercrombie의 [Timeless 1975]였다. 음악은 정통적 의미의 재즈와는 다른 듯 했고 타이틀 곡인 <Timeless>는 스트레이트한 리듬에 잔향이 넘치듯 풍성했다. 음반 표지처럼 푸른 색감이 가득한 연주였다. 근사했다. 침묵보다 아름다운 소리인지는 몰라도 내 안의 심연을 건드렸음은 분명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대부분의 재즈 레이블이 대형음반사에 흡수되는 와중에도 ECM은 여전히 독립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Edition of Contemporary of Music'이라는 이름답게 새롭고 현대적이며 무엇보다 독창적이었다.
창립자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는 베를린 음대에서 콘트라 베이스를 전공한 음악학도였다. 그래선지 좀 더 어쿠스틱한 소리를 담은 재즈음반을 제작하고 싶어했다. 일반적인 재즈 녹음이 악기마다 각각의 마이크를 설치해 선명한 음질을 추구했다면 클래식 연주자 출신인 만프레드 아이허는 마이크의 수를 줄여 공간감을 살리는 것을 원했다.
그렇게 공기에 스며든 미세한 소리까지 잡아낸다는 ECM만의 사운드가 만들어졌다. 1969년, 드디어 재즈피아니스트 말 왈드론(Mail Waldron)의 [Free At Last ]을 발표하며 레이블의 시작을 알린다. 이후 폴 블레이, 얀 가바렉, 키스 자렛, 게리 버튼 등 ECM 하면 떠오른는 거장들의 음반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오슬로에 위치한 레인보 사운드(Rainbow Sound)는 ECM사운드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얀 에리크 콩셰우(Jan Erik Kongshaug)가 녹음을 담당하며 ECM은 물론 북유럽 뮤지션 대부분의 앨범이 녹음되는 곳이다.
(물론 지금의 ECM 작품들은 세계 각지에서 녹음된다. 뉴욕의 아바타 스튜디오(Avatar Studios), 프랑스의 라뷔손 스튜디오(La Buisonne), 이탈리아의 아스테스오노((Artesuono)등 다양한 지역의 담당 엔지니어들이 있다.클래식 음악 파트인 ECM 뉴 시리즈가 발매되면서 페터 렝거(Peter Laenger), 안드레아스 노이브로너(Andreas Neubronner)등의 톤마이스터들이 합류해 교회와 성당등 좀 더 공간감 있는 장소에서 녹음하기도 한다.)
"ECM 뉴시리즈"는 현대음악과 영화음악, 클래식 음악들을 제작한다.만프레드 아이가 운전중에 라디오에서 흐르던 아르보 패르트Arbo Part의 음악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대음악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는 1984년 ECM에서 첫 작품 [Tabula Rasa]를 발표한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패르트는 탈린 음악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방송국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를 하며 작품들을 발표했고 영화 음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 1968년 돌언 지금까지의 모든 작법과 스타일을 버리고 처음부터 음악공부를 시작한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틴틴 나불리Tintunnabuli(종소리라는 뜻)라는 작곡법을 연구해낸다.
[어바읏 타임], [생활의 발견] 등 여러 영화에서 사용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이 바로 그 작법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피아노가 3음을 반복하면 현악기가 그 위로 멜로디를 연주한다. 그는 연주자와 청중의 관계를 생각하며 이 곡을 썼다고 한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여러 버전으로 수록된 앨범이 [ALINA 1996년]이다.
“나는 아주 제한된 소재, 아주 기본적인 소재로 곡을 만들었다. 3화음으로 만든 3개의 음은 마치 종소리와 같았고 그래서 나는 이를 ‘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마도 나의 음악은 모든 색을 담고 있는 하얀 빛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르지 프리즘만 그 색들을 분리해 나타낼 수 있는데, 이때 이 프리즘은 바로 듣는 이의 영혼이다." 아르보 페르트 Arbo Part
"ECM 뉴시리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Jsofia Broso의 [En Otra Parte 2013]였다. 한창 클래식 기타 연주에 빠져 있었을 때라 농밀하면서도 따스하고 두터운 질감의 연주는 귀를 잡아 끌었다. (나일론 기타 녹음 시 참조하는 음반중 하나이다)
특히 Francisco Calleja의 곡인 Cancion Triste는 풍부한 저음현의 울림과 섬세하게 운지되는 주선율과 코드웍, 서서히 감정을 고조시키는 아티큘레이션이 압권이다.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인 빈센테 아미고의 <Callejon de la luna>는 거칠고 원초적 느낌의 원곡에 비해 조금 더 정제되고 감성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헝가리 출신의 소피아는 부다페스트 벨라 바르톡 음악원과 빈 국립 음악 대학등에서 수학하고 여러 콩쿨과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활동하던중 ECM을 통해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2023년에 발표한 세 번째 음반 [El Ustimo aliento]에선 더욱 깊어진 감성과 단단해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최근 관심을 갖는 음악가는 Eleni Karaindrou이다. 그를 알게된 건 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원과 하루]에서 였다. 영상 속 숨결을 불어 넣는 듯 신비로운 음악은 감정을 일렁이게 했다. 피아노와 작곡은 물론 고고학, 역사, 민족음악학을 공부한 엘레니는 테오 앙겔로풀로스와 마리아 파란두리 등과의 작업을 통해 영상과 음악을 일체화한다.
영화는 생의 마지막을 예감한 노시인이 19세기 시인 솔로모스의 흩어진 시어들을 찾는 여정을 그린다. 시인은 여행을 준비하던 중 30년 전 아내가 쓴 편지를 찾게 되고 과거의 찬란한 여름날로 돌아가게 된다. 기억과 환상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며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깨닫는다.
푸르스름한 빛을 띄는 무채색의 영상과 흩어진 시어들 사이로 음악은 흐르다 사라지다를 반복하며 감정을 조율한다. 특히 바순, 오보에 등의 목관악기로 변주되는 메인테마는 쓸쓸하면서도 고고한 음률로 삶의 서정을 그려낸다.
참고문헌: ECM 50 음악속으로 Records from the history / 류진현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