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0일부터 제22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봄, 수많은 전국의 시민단체와 주권자들이 모여 ‘2024 총선! 여성 주권자행동 어퍼’라는 이름으로 성평등 사회를 요구하는 시민 행동을 펼쳤다.

제주지역에서도 제주여민회·제주여성인권연대와 280여명의 제주 시민이 함께 정책질의서(7개 아젠다, 33개 세부과제)를 제주지역 후보자들에게 요구한 바 있다. 제주지역 어퍼는 22대 국회 개원에 맞춰, 후보들의 약속이 실현되고 더 진전된 의정활동을 기대하며 글을 보내왔다. 제주의 여성 주권자들은 어떤 여성 정책을 바라고 있을까. 22대 국회의원들이 새겨야 할 이야기를 8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오영훈 제주지사(오른쪽 두번째)와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제주지역 당선자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오영훈 제주지사(오른쪽 두번째)와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제주지역 당선자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제22대 국회 개원을 며칠 앞두고, 선출자들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당신들께서 주권자들에게 표를 구하던 지난 봄에 귀 기울인 간절한 목소리와 많은 약속들을 잊지 않고 따뜻한 의정, 더 나은 정치 문화를 만들어 나가시길 기대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의정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한 판결문을 먼저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21대 국회가 저물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22대 국회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5월 17일 내려진 판결입니다. 현재 임신중지 약품에 대한 안전한 정보를 제공하고 실제 배송하는 한 시민단체의 사이트를 한국에서는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있는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이러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Link)

시민단체는 패소했습니다. 쟁점이 여럿이었는데, 약품의 안전성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저는 유독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심 재판부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달리 낙태를 금지하는 법률상의 제한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임신 중단을 원하는 여성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수술 등의 방법으로 낙태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 점입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임신 중지가 과연 법률상의 제한이 없어 '해결된 문제'일까요? 혹시 당선자 여러분도 낙태죄 폐지 이후 정말로 아무 제한 없이 임신 중지가 이뤄진다고 알고 계셨던 건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이것의 이름은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 '방치된 문제'입니다. 포털사이트나 커뮤니티에서 '임신중지 약물'을 검색하면 불안에 떨며 임신중지 방법을 찾는 여성들의 최신 글들이 쏟아집니다. 방치된 문제 속에서 목소리가 있어도 차마 소리낼 수 없는 그 자매들에 연대하는 마음으로, 저는 제22대 국회 상반기 내에 '낙태죄 폐지 후속법안 마련'과 '재생산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주도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전임자인 21대 국회의원들이 방치한 문제를 당신들이 물려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2019년 4월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 이후에 5년 간 후속 법안 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도는 있었지만 남성중심 국회라서 그랬을까요, 사안에 대한 몰이해가 컸습니다. 21대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후속 법안들은 '임신 14주 이내면 처벌하지 않겠다', '24주 이내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식이었습니다.

상황을 가정해 국가가 처벌한다는 개념이 유지되는 모양새는 헌재 결정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그마저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1대 이후에는 관련 논의가 중단됐습니다. 최근 한 해 평균 3만여 건의 낙태 시술이 음지에서 이뤄지는데, 후속 법안이 마련되지 않아 여성들은 임신 중지를 위한 안전하고 투명한 정보를 제공 받지 못하고, 보호 받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2대 국회는 21대 국회처럼 '낙태죄' 자체에 함몰돼 그 수위만을 다투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처벌의 수위를 다르게 하는 새로운 형법의 마련이 낙태죄 폐지 취지가 아닙니다. 또 너무나 협소한 논의입니다. “임신 중지를 처벌하지 않는다”를 시작으로 한 임신중지 접근성 보장과 재생산권까지 22대 국회에서 논의돼야 합니다. 형법이 아닌 후속 법안 마련, 「모자보건법」 등 관련 법안 개정 등을 신중히 검토하고 물꼬를 터주십시오.

후속 법안의 방향은 임신중지 관련 의료접근성을 강화하는 방향이 어떨까요? 먼저 불법도 합법도 아닌 현 상태를 확실하게 개선하고, 여성들이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 시술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 받을 수 있고, 안전한 낙태 시술과 사후 관리에 대해 의료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이 의무적으로 진행되고, 여성 청소년 및 가임기 여성 중 대다수가 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한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인터넷에서 불확실한 정보를 찾아 헤매는 일도, 패소한 시민단체가 정부 대신 약물을 배송하겠다고 나설 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제22대 국회가 '방치된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 사회는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재생산권은 아직 우리 사회에 깊이 자리한 아젠다가 아니지요. 재생산권의 정의는 "모든 부부와 개인이 자녀의 수와 자녀를 가질 시기에 대해 자유롭고 책임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 해당 선택을 이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하는 권리,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재생산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결정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의 몫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임신이든, 낙태든, 아빠 없는 인공 임신이든, 입양이든 모든 선택이 존중돼야 하고 보호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보면, 낙태죄 후속법안이 재생산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향한 지극히 일부분이자, 출발점인 셈이겠네요. 낙태죄 후속법안에 대한 진전된 논의로부터 이 사회는 개인이 건강하게 자신의 삶과 가족을 구성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개인이 어떠한 사회적 조건 아래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결정에 따라 다양한 가족 구성권을 실현하고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동의하신다면, 과감한 의정 활동을 부탁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본 의정 활동에 대한 의미에 대해 짚고, 또 한 번 당부하고 싶습니다. 여성의 참정권, 여성의 노동권은 그 역사가 오래되고 사회 전반에 걸쳐 확대,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요청한 논의들은 2019년 이후 아직 사회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습니다. 이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22대 국회에서 다뤄진다면, 우리사회가 더 성숙하고 행복한 공동체로 나아가는데 큰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것의 이름은 더이상 '방치된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 질서를 만들 희망'이 될 것입니다.

은영 / 제주여민회 정책위원

2018년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에 나선 바 있다. 탈당 후 별 볼 일 없이 잘 살고 있다. 제주의 여성청년들을 위한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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