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과 ‘블랙머니’, ‘소년들’ 등 연출을 통해 한국 사회 기득권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관객과 만나온 정지영 감독이 신작 ‘내 이름은’을 내년 봄 크랭크인할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
이날 오후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내 이름은’ 제작과 관련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지영 감독은 “어떻게 대중에게 가까이 갈 것이냐를 주안점으로 두고 연출할 것”이라며 “이 영화는 4·3의 아픔을 그리되 어떻게 그 아픔을 극복했는가를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제주에는 아픔이 ‘인’처럼 박혀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아픔이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가’하는 꿈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름다움과 아픔, 아픔을 딛고 일어선 꿈 이 세 가지를 영화에 담아서 관객과 교감하고 싶다. 재밌게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아픔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영화의 주연을 맡은 염혜란 배우는 “감독님께서 배역을 제안해 주셨을 때 기쁘게 받아들였다”며 “오랜 상처를 가진 분들을 위로하고 그분들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취지가 좋았다. 그분들을 위로하는 영화에 보탬이 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면 기쁘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민재 배우는 “처가 식구가 제주에 있고 저희 가족이 제주로 이주한 지 10년이 됐다”며 “4·3이라는 얘기가 낯설기도 하지만 제게 멀지도 않은 얘기다. 영화적으로 특별한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비를 후원한 사람들의 인사도 이어졌다. 김승우 학생(중앙고등학교 2학년)은 “육지에서 전학온 친구들이 저에게 4·3을 물어보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다시 4·3을 공부하게 됐다”며 “최근 영상공모전에서 수상을 했는데 그 상금을 어디에 쓸지 고민하다가 여기에 후원하게 됐다. 4·3은 꼭 기억해야 하는 역사다. 청소년들에게 4·3 관련한 문화 콘텐츠가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경미 함께하는그날 협동조합 이사장은 “영화 제작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홍보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강은미 시인은 “나이가 든 다음 4·3을 접하게 됐다.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과 강요배 작가의 ‘동백꽃’ 연작을 보면서 4·3을 알고 감각적으로 몸으로 익혔다. 또 ‘4·3은 말한다’ 연재 기사를 통해 관련된 역사를 배웠다”며 “오늘날까지도 국가적으로 일어나는 폭력과 그에 대한 공포가 되물림된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여성이 4·3 역사의 주변 인물이 아닌 주체로 그려지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김경미 도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삼양·봉개동)은 “최근 방첩사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계엄 관련 문건에 4·3이 ‘제주폭동’이라고 명시한 것을 보면서 4·3의 이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게 됐다”며 “4·3의 정의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는 데 ‘내 이름은’의 제작이 발돋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4·3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제주도민의 10분의 1을 앗아간 참극으로서의 의미, 또 하나는 그 참극 속에서도 어린아이들이 끝끝내 살아남아서 제주 공동체를 복원시켰다는 위대한 역사로서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4·3을 취재하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4·3을 대중에게 알린 것은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과 강요배 작가의 ‘동백꽃’ 연작집이었다. 문학과 미술, 연극 등 예술이 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평소 정지영 감독의 팬으로서 이번 영화 제작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영화 ‘내 이름은’은 ‘정순’과 ‘영옥’이라는 이름을 고리로, 1948년 제주4·3으로 인한 상처라 1980년대 민주화 과정의 격랑과 진통을 거쳐 1998년에 이르르 그 모습을 드러내고 2024년 오늘 어떤 의미로 미래 세대와 연결되는가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공동으로 주최한 4·3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이다.
제작은 ‘이끼’, ‘은교’,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o난감’을 제작한 렛츠필름과 ‘부러진 화살’, ‘블랙머니’ 등을 만든 아우라픽처스가 맡았다. 제작비 모금을 위해 오는 2025년 1월31일까지 텀블벅 펀딩(https://tumblbug.com/naeireumeun)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초 크랭크인, 2026년 4월 극장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불법 계엄령 ‘1호’가 선포됐던 제주4·3, 그로부터 76년 뒤 한국 땅에서 또다시 불법 계엄령이 내려졌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진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답보 상태인가를 묻는 질문에 영화 ‘내 이름은’의 제작은 어떤 답을 들려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