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주여민회와 제주여성인권연대는 여성 및 소수자를 위한 대선 후보들의 공약 부재를 지적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지지자들이 표 관리를 위해 여성 및 소수자의 권리 확장에 대해서 '입단속'에 나서는 모습도 노출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 광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여성과 청년, 청소년이 적극적인 참여가 거론된다. 하지만 '12.3 내란사태'에 맞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겨울 거리로 나서서 목소리를 낸 이들을 위한 의제는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여민회와 제주여성인권연대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수많은 시민들과 광장에서 함께한 123일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이번 제21대 대선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를 위한 공약은 찾아볼 수 없다."며 "바로 지금, 제21대 대선의 시간이 바로 광장에 섰던 여성주권자들의 목소리에 답할 시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지난 제20대 대선에서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윤석열을 똑똑히 기억한다."며 "제21대 대선 후보들은 광장에서 ‘빛의 혁명’을 이끈 여성주권자들의 외침을 똑바로 직시하고, 답해야 한다."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여민회와 제주여성인권연대는 △여성가족부 등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의 회복 및 강화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젠더폭력 관련 법과 제도 개선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 △성별임금격차의 구조적 차별 해소를 위한 성평등공시제 법제화 △모든 의사결정구조에서의 여성대표성 강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할 것을 각 후보들에 요구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
제21대 대선 후보들은 여성 주권자들의 목소리에 답하라!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수많은 시민들과 광장에서 함께한 123일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이번 제21대 대선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를 위한 공약은 찾아볼 수 없다. 윤석열이 만든 성평등정책의 후퇴에 분노한 여성·소수자들이 광장에서 외쳤던 목소리에 대한 응답은 어디에도 없다. 바로 지금, 제21대 대선의 시간이 바로 광장에 섰던 여성주권자들의 목소리에 답할 시간이다.
지난 제20대 대선에서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윤석열을 똑똑히 기억한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반여성, 반인권 정치를 하던 윤석열의 말로는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파면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만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광장의 시민들이었다. 제21대 대선 후보들은 광장에서 ‘빛의 혁명’을 이끈 여성주권자들의 외침을 똑바로 직시하고, 답해야 한다.
지난 5월 10일, 페미니스트들이 “차별과 혐오선동 정치에서 성평등 정치로”의 전환을 외치며 또다시 광장을 열어젖혔다. 전국 1천여명의 페미니스트들은 성평등 정치를 실현할 대통령을 원한다고 외쳤다.
제주의 페미니스트들 또한 성평등 정치를 열망하며 지금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더 이상 성평등이 후퇴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제주여민회와 제주여성인권연대는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 강화를 비롯한 다음의 여섯 가지 젠더정책을 공약화하고 실현할 것을, 제21대 대통령 후보들을 향해 강력히 촉구한다.
첫째, 우리는 여성가족부 등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의 회복과 강화를 촉구한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후 여성가족부 폐지는 저지되었지만,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전방위적으로 여성과 성평등 정책이 삭제되었다. 그리고 중앙정부 퇴행 흐름에 맞춰 지방자치단체의 퇴행도 가속화되었다. 제주지역의 경우 기존 민선7기의 ‘성평등정책관’이 민선8기에도 성평등 전담부서로서 ‘성평등여성정책관’으로 확대 운영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중간관리자 인원이 소폭 축소 조정되었고 예산 또한 중앙정부 측 파행 등으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다. 제주지역 고용평등상담실도 2024년에 예산이 100% 삭감된 후 운영이 중단된 상황이다.
둘째,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촉구한다.
지난 2021년 6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국민동의 청원에 10만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요구하는 행동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묵묵부답이다. 제주지역의 경우, 2024년에 ‘제주평화인권헌장안’ 마련을 위해 관련 위원회 구성, 도민참여단 운영 등 일련의 절차를 거치고 있었으나 소수 극우세력/보수기독교계에 의해 지금까지도 파행되고 있다. 또한 2022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이 발의되었으나 결국 무산된 사례도 있다. 12.3 내란사태로 발호한 극우세력화를 막기 위해 가장 기본적 제도인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셋째, 우리는 젠더폭력 관련 법과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
강간죄는 직장내, 친밀한 관계, 청소년, 온라인 관계 등 사회적인 취약성 구조가 원인임에도, 현행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저항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최근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데, 피해자의 안전보다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춘 접근은 2차 피해 유발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어렵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현행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보고 성매매피해자 등에 대한 인권보호, 성매매알선고리 및 수요차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으나 성매매처벌법은 ‘성매매피해자’와 ‘성매매행위자’를 구분하고 성매매강요를 입증하지 못한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함으로써 법의 제정목적을 무력화하고 있다.
넷째, 우리는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을 촉구한다.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가 결정되었고, 국회가 대체입법을 내놓지 않은 채로 2021년 효력을 상실했다. 이같은 제도 공백 상황에서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는 침해받고 있다. 임신중지로 인한 처벌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지를 위한 의약품인 유산유도제는 국내 판매가 금지돼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단권은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의 상황을 보면,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T 커뮤니티에 공개된 제주의 임신중지 가능 산부인과는 0곳이다. 그럼에도 T 커뮤니티 제주지역 게시판에는 관련 문의가 하루에 한 건 이상 올라오고 있으며, 제주의 M 산부인과 일대일 문의에서도 ‘임신중절’ 문의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공식적인 임신중지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면서 정보 접근에 취약한 비수도권 지역의 여성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다섯째, 우리는 성별임금격차의 구조적 차별 해소를 위하여 성평등공시제 법제화를 촉구한다.
28년간 OECD 부동의 1위인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2022년 기준 31.2%로 OECD 평균 11.4%보다 19.8%나 높다. 성별임금격차가 30% 이상 벌어진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임금수준은 노동시장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즉 직종, 고용형태, 근속 연수, 근로시간, 직급, 기업 특성 등이 집약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성별임금격차가 크다는 것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주도의 경우 2023년 기준 성별임금격차가 29.4%로 전국 최저수준이기는 하나, 이는 제주도의 평균 임금수준이 남녀 모두 전국평균보다 낮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취업률이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우리는 모든 의사결정구조에서의 여성대표성 강화를 촉구한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2024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정치권한 부문에서 146개국 중 72위, 특히 국회의원 여성 비율은 103위에 머무르며 정치 분야의 성평등 수준이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중앙정부 고위직은 2024년 기준, 장관 19명 중 여성이 3명에 불과하며,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여성 비율은 11.7%이다. 제주지역 역대 여성도지사 0명, 역대 여성국회의원 0명(지역구 선출직 기준), 현 제주 도의원 중 여성비율 20% 등의 현황을 보더라도 제주지역은 여성대표성 측면에서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며, 지역사회 기초단위인 마을에서 여성의 과소대표성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제21대 대통령 후보들은 단순히 내란사태 이전의 사회로 되돌리려 하지 말고, 사라졌던 성평등 정책을 복구하고 더욱 강화하라. 이것이 전국의 광장에서 성평등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민들의 목소리에 답하는 길이다. 한 명의 시민을 단순히 한 표로 치환하여 당선될 궁리만 하지 말라. 한 사람의 시민은 다양한 맥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지하고, 여성, 소수자 등 시민‘들’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제21대 대선 후보들은 여성 주권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답하라.
2025.5.14.
제주여민회·제주여성인권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