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버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 버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도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성평등정책관을 신설해 운영하고, 여성친화도시 조례를 제정하며 성평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성과를 달성해 왔다고 내세운다. 하지만 도내 버스 운전기사 고용 상황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제주투데이 취재 결과, 현재 제주도의 버스 운전기사는 1302명이다. 여성 정규직 운전기사는 단 한 명도 없다. 0명이다. 참담한 수준이다. 하루 1~2회 운행하는 심야버스 운전기사 중 2명이 배치돼 있을 뿐이다.

제주도의 성평등 정책이 제주도가 준공영제로 운영하는 버스 사업 현장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버스 운송사업자 자율에 맡기다보니 이런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공공성을 지닌 대중교통 현장이 이런 지경이 된 데 준공영제가 한몫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규직 버스 운전기사 중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는 도시를 두고 여성친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주특별자치도 여성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기본 조례’는 ‘여성친화 도시’에 대해 “지역정책과 발전과정에 양성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그 혜택이 고루 돌아가며 여성의 발전과 안전이 구현되도록 정책을 운영하는 지역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일자리는 사회참여의 가장 중요한 요소며, 혜택이기도 하다.

제주 준공영제 버스 기사 중 여성 정규직 운전기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오영훈 제주도정이 제주도가 운전기사의 성별 구분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는 남녀고용평등법은 고용평등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사업주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제주도지사와 운송사업체가 고용평등을 위한 법적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이 이 노동 시장에서 배제되고 있는 구조를 방기한 셈이다.

제주도 대중교통과 관계자와 간담회 자리에서 이와 관련해 물어본 적이 있다. 관계자는 버스 운전기사의 고된 노동 강도를 이유로 들었다. 일이 힘들어서 여성이 버스 운전기사를 기피하는 것이고, 행정과 버스 운송사업자의 책임은 아니라는 인식이다. 과연 그럴까.

버스운전 노동시장이 남성에 편중되어 있는 것은 일면 사실이긴 하다. 전국적으로 여성운전기사 수는 적다. 서울시도 마을버스 포함 여성 버스 운전기사가 수 백명 단위이다. 전체 대비 10% 대인 여성 운전기사 비율을 어떻게 넘을지 사회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정규직 0명과 10%. 그 차이는 크다. 제주의 버스운전 업무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별나게 어려울 이유는 없다. 제주도에서는 서울시보다 더 거칠게 운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규직 여성 운전기사가 아예 없는 이유는 운송사업장 입장에서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하는 데 있다. 여성 운전기사를 위한 휴식 공간 및 편의 시설과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조성해야 하는데, 이익을 우선하는 버스운송 사업자에게는 껄끄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버스 운송업체에 매년 약 1000억원씩 혈세를 투입하는 준공영제, 이미 8년이 됐다. 이대로는 차별적 고용에 대한 개선의 의지도,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제주에서 버스운전을 위한 경력을 기르기 쉽지 않다는 점 역시, 여성 운전기사 비율이 낮은 원인으로 보인다. 서울시 등 타 지역에서는 제주와 달리 골목 곳곳에 소형 마을버스가 달린다. 마을버스 운전 경력은 대형버스 운전 자격과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정 기간 25인승 버스로 운전 경력을 쌓은 후 45인승 대형버스로 전환하는 식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소형 마을버스를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다. 우도, 추자도, 동복리 정도다. 관광형 버스도 있지만 전체 40여대 가량에 불과하다. 제주도에서 신입 운전기사가 경력을 쌓아가기 어려운 환경이다.

프랑스 메스(Metz)시의 '차 없는 상가'를 달리는 미니 저상버스에 한 이용자가 탑승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프랑스 메스(Metz)시의 '차 없는 상가'를 달리는 미니 저상버스에 한 이용자가 탑승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아파트 단지 내부로, 주택단지 사이사이로, 이면도로로 달리는 저상형 마을버스 체계를 만들었다면 여성 기사 양성이 보다 더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주민들은 주요 도로의 정류장이 아닌 집 바로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럴 때 환승 시스템의 효과가 빛을 발한다.)

제주도는 여성 버스기사 양성과 채용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여성 운전기사 휴게 공간을 보장하며, 성차별적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통해 버스 운송사업장의 고용평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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