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공항 언급 없는 이재명의 제주 공약
비겁하다. 민주당의 제주 관련 대선 공약을 보며 곧바로 드는 생각이다. 게다가 모순적이다. 이건 두 번째 읽으며 든 생각이다. 혹자는 ‘그래도 국민의힘 대선 공약보다야 낫지 않나’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노상원 수첩이나 ‘처단’이라는 표현을 적시한 계엄 포고령을 보고도 국민의힘에 대해 논평을 요구한다면 그건 무리다. 그 집단까지 상대해 줄 만큼 나는 너그럽지 못하다.
그러니 민주당 공약 중 본질적 문제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물론 탄소 중립, 친환경 에너지, 4.3의 완전 해결 등 좋은 내용이 많다. 공약 이행의 의지도 어느 정도는 믿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향후 감시하고 격려하고 추동할 마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본자세가 틀렸다. 제주도 최대 이슈이자, 장기간 제주도민을 괴롭혀 온 제2공항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서두에서 내가 ‘비겁하다’라고 운을 뗀 건 이 때문이다. 이재명의 공약인데, 이재명답지가 않다.
이재명의 제주 공약은 누가 만들었을까
“쟁점과 논란에 정면으로 부딪쳐 소통과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만들고, 그 성과로 삶과 미래를 바꿔나갑시다. (중략) 실제로 존재하는 갈등을 피하지 말고, 대화하고 조정하며 타협해야 합니다.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대타협을 한번 해봅시다.” 2025년 2월 10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이재명이 한 말이다. 그는 행정가 시절에 실제로 그런 방식을 통해 개 사육장 문제, 계곡 불법 식당 문제를 정리한 바 있다.
그런데 왜 제주에서는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하지 않고, 언급조차 않는가. 게다가 지난 5월 16일에는 피해지역 주민을 배제한 채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일방적으로 개최하려 시도했다. 민주당 소속 제주도지사의 행정이 감행한 일이다. 모순적이라고 평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소통과 토론’ 대신 배제를 택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갈등을 피하지 말고, 대화하고 조정하며 타협’하겠다고 이재명은 말했는데, 그 민주당의 도지사는 반대로 가고 있다.
추자 해상풍력 추진 또한 모순적이다. 이재명의 공약에는 ‘주민 소득형 재생에너지: 햇빛연금, 바람연금 등 도민 참여 재생에너지 사업 육성으로 주민 소득 확대’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그 반대다. 주민 참여와 주민 소득 확대가 아니라, 특정 외국 기업이 이익을 독식하도록 몰아 줄 기세다.
이런 엇박자를 보면, 이재명의 제주 공약은 이재명이 만든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연하다. 대선 후보가 지역 공약까지 직접 만들 순 없다. 민주당 제주도당의 특정 사람들이 만들고 승인 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본질을 회피하는, 안일한 방식으로 일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비겁함은 결국 이재명의 비겁함으로 치환되어 도민에게 각인될 수밖에 없다.
제주도 행정과 의회의 밀월
이게 제주도 민주당의 현실이다. 중앙의 민주당과 같은 역동성이 없다. 특별한 실수만 하지 않으면 제주도에서 민주당 간판은 먹힌다. 이재명의 제주 공약을 만든 사람들의 기본자세도 이랬을 것이다. 그러니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다. 골치 아픈 개혁은 피하는 게 낫다. 지금 이대로 권력을 누리며 입으로만 ‘민주’, ‘인권’, ‘평화’, ‘생태’를 외치면 된다.
실제 관심은 이권과 자리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지역 사회의 토호가 되어갔다. 그러니 긴장이 있을 리 없다. 안일함이 몸에 배어 있다. 민의에 어긋나는 짓만 해대는 도지사가 있다면 의회는 당연히 그를 견제해야 한다. 그러나 제주도의회에는 그게 없다. 입법이 행정을 감시하며 견제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냥 한 몸뚱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앞서 얘기한 제2공항 문제에 대해 도의회가 날을 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세계적 유적지 알뜨르를 스포츠타운으로 둔갑시키겠다는 작태를 보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신항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추자 해상풍력도 멀뚱히 쳐다만 본다. 제주 고도지구 폐지에 대해서도 도지사의 입만 바라본다. 양문식 버스와 섬식 정류장으로 인해 도민들의 불만이 폭주해도 구경만 한다. 혈세만 줄줄 새는 버스준공영제 대신 완전공영제를 도입하라는 도민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중산간 지역 특혜 개발 논란을 일으킨 한화 애월포레스트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따져 묻는 도의원이 없다.
팔자 말고 세상을 바꿔라
도대체 도의원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민주당 간판을 단 도의원들을 일컬음이다. 한국사회에서 민주당이라면 그래도 나름의 개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진보 정당만큼이야 못하겠지만 때로는 민중성도 입에 올린다. 그런데 제주도에선 그게 안 된다. 개혁을 하려면 기득권과 충돌을 해야 하는데, 그게 싫은 거다. 이미 지역의 토호, 유지가 되어버렸으니 피곤하게 개혁에 나설 이유가 없다. 그저 ‘궨당’ 관계만 잘 관리하면 된다. 대학시절부터 형 동생으로 묶여져 있으니 갈등은 금물이다.
그러나 도민들은 박은정 같은, 정청래 같은 도의원을 원한다. 지역 현안에 전력투구하며 행정에 대해 따끔한 경고를 날리는 의원들 말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정 맞은 모난 돌이라야 초석으로 쓰일 수 있음을 기억하라. 바꾸라는 세상은 안 바꾸고, 자신들의 팔자나 바꾸는 짓들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최근 전(前)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경상북도 위원장 권오을이 민주당에 입당했다. 김용남 전 국민의힘 의원도 민주당에 입당했다. 김상욱 의원도 그랬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역으로 제주도의 민주당 도지사나 도의원들은 차라리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게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만 그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