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본격적인 부동산 개발 공기업으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1995년 '청정 지하수 보전'과 '삼다수 브랜드 육성'이라는 명확한 사명으로 출발한 이 공기업이 이제는 삼다수 관련 사업조직을 축소하고 부동산 개발사업에 몰두하면서 본연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설립 정신의 배반: 환경수호자에서 개발업자로
무늬만 환경보전, 실상은 부동산 투기의 첨병
1995년 제주개발공사 설립 당시 제주도는 민간의 지하수 개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오직 제주개발공사만이 먹는샘물 제조·판매 목적의 지하수 개발을 허용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는 제주의 소중한 지하수 자원을 난개발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도민의 의지를 공공이 받아들인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제주개발공사는 지하수 보전이라는 설립 목적을 완전히 저버리고 부동산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다.
공사 본부 직원 중 부동산 개발 관련 인력이 삼다수 생산·유통 부서 인력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바, 이는 개발 부서 인력의 급격한 증가와 수자원 관리 부서의 정체 혹은 축소의 결과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23년 기준 지하수 오염 가능성이 있는 개발 사업장 주변의 수질 검사 빈도가 월 1회에서 분기 1회로 축소되는 등 시장 점유율 1위의 삼다수의 청정 지하수 유지를 위한 관리 소홀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무분별한 사업 확장
2021년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 개발공사 설치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통해 개발공사의 부동산 관련 사업 범위를 확대했다. 하지만 제주 청정 지하수의 ‘독점적’ 이용 수익을 부동산 개발에 투자하고 있는 공사의 사업구조는 어떠한 법적 근거와 합리성을 가지는지 의문이다. 현재 제주개발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하원 테크노캠퍼스와 화북2 공공주택지구 조성 사업은 사실상 도시개발 전문기관의 역할로, 이는 애초 설립 목적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 아닌가.
삼다수 위탁판매: 공공자산의 사유화와 유통주권 포기
연간 600억 원의 이익을 민간에 헌납하는 구조적 모순
제주개발공사가 2013년부터 12년간 광동제약에 위탁하고 있는 삼다수 판매는 연간 3,200억 원 규모 (2023년 기준)에 달한다. 이는 도외 지역 도소매와 온라인 판매를 포괄하는 것으로 20% 정도의 보수적인 유통마진을 계상한다고 하더라도 공사의 입장에서는 연간 약 600억 원에 달하는 잠재적 수익 손실을 의미하는 반면 현 위탁업체에서 도민에게 환원되는 경제적 편익은 매우 제한적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2026년부터 예정된 대형마트 판권마저 위탁한다면 연간 500억 원의 추가 수익을 민간 기업에 양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공공기관이 민간 기업의 수익성 강화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제주개발공사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불투명한 입찰 조건과 특혜 시비
2025년 신규 입찰 공고를 살펴보면 재무여건을 충족하는 기업이 손에 꼽히는 정도이고, 브랜드 육성전략과 지역별 판매 확대 전략 등 평가기준이 추상적이라 평가위원의 주관적 해석에 결과가 좌우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입찰 가능한 업체는 극소수 대기업*에 한정되어 중견·중소기업의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 자체 생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업체를 제외하면 광동제약, 동아제약, 동아오츠카, 오뚜기, 웅진식품, HK이노엔 정도
과거에도 삼다수 온라인 판매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2022년에는 광동제약이 온라인 판매 물량을 특정 업체에 재위탁하면서 원희룡 전 도지사 인척 연루 의혹까지 제기되어 공공자산의 사유화 논란이 일었다. 금번 입찰공고 역시 그 내용을 보면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거버넌스 붕괴: 도덕적 해이와 조직문화의 부패
청문회마저 우롱한 사장 선임 과정
2023년 백경훈 사장 선임 과정은 제주개발공사의 거버넌스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백 예정자는 아들의 오스트리아 국적 취득(병역회피 의혹)과 부동산 투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회의 '적격' 판정을 받으며 취임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첫 번째 청문회에서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의 재산목록 누락 등으로 인해 사상 초유의 청문회 연기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강경문 의원은 당시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금융 및 부동산 보험 가입 내역을 요구했지만 제출되지 않았다"며 "그 흔한 실비보험과 암보험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의회가 ‘적격’ 판정을 내린 것은 제주개발공사를 부동산 개발업체로 변신시키려는 오영훈 도정과의 정치적 거래가 의심되는 부분으로 이는 제주특별자치도 개발공사 설립 및 운영 조례 제37조의 '공정한 인사 절차'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사례로 해석된다.
조직 내부의 구조적 부패와 도덕적 해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으니 제주개발공사의 조직문화 문제는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다. 2021년 삼다수 무단 반출 사건이 발생했으나, 내부 감사 결과 2018-2020년간 23건의 자금 유용 사례 중 단 3건만 공개되는 등 은폐 의혹이 제기되었다. 2024년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윤리 경영 인지도'가 34%로 전국 공기업 평균(68%)의 절반 수준에 머무른 것은 조직 문화의 구조적 부패를 증명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24년 백경훈 사장의 일방통행식 업무행태로 조직 내부에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반기 정기인사에서 팀장급 선발 과정에 노동조합에 40%의 심사권을 부여하여 비조합원 역차별 논란까지 불거졌다. 이러한 인사 갈등 속에서 삼다수의 시장점유율이 40% 이하로 떨어지는 경영 위기까지 초래되었다.
도민 참여 배제와 배당금 남용
제주 청정 지하수의 독점적 이용을 통해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하에서 공수화 정책을 수용한 도민의 의사는 공사의 운영 결정에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다. 공사 운영위원회 15명 중 도민 대표는 단 2명(13.3%)에 불과한 현재의 상황은 지방공기업법 제50조의 '지역주민 참여 확대'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으로 공사의 운영이 도정의 입맛대로 자의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재로 2023년 주택 사업 계획 수립 시 도민 공청회를 1회 개최하는 데 그쳤으며, 삼다수 생산량 증산 결정 과정에서는 지역 주민 의견 수렴 절차 자체가 생략되었다.
배당금 문제도 심각하다. 2004년 첫 배당을 실시한 이후 배당률의 산정부터 사용처까지 도정의 입맛대로 구체적인 사용 내역과 성과 공개 없이 자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2024년에는 제주삼다수 점유율이 40% 이하로 떨어진 위기상황에서도 제주도가 배당금을 100억 원 증가한 270억 원을 받아갔다. 이는 순이익 대비 37%에 달하는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공공성 회복을 위해 도민이 나서야 할 시간
공공성 회복을 위한 제주개발공사의 근본적 개혁 방안
공공성 회복을 위한 제주개발공사의 개혁은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1995년 창립 당시의 "청정 지하수 보전"과 "삼다수 브랜드 육성"이라는 설립 정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야 한다. 그래야 제주 청정 지하수의 ‘독점적’ 이용에 대한 정당성이 유지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첫째, 삼다수 유통의 단계적 직영화를 통해 유통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과거에도 논의된 바 있는 단계적 직영화는 도내 유통 완전 직영화, 수도권 주요 도시 직영 물류센터 구축, 전국 유통망 완전 직영화 달성을 통한 생산-유통-관리 일체화 시스템의 단계적 구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현재 연간 600억 원의 잠재적 수익을 민간 위탁업체에 유출하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개발공사는 2025년 신규 입찰에서 대형마트 판매권까지 위탁하려는 계획을 중단하고, 오히려 기존 위탁 영역을 단계적으로 회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입찰 조건을 완화해서 삼다수 유통의 단계적 직영화에 기여할 수 있는 창의적 중소업체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둘째, 오영훈 도정이 ‘지방정부 주도의 부동산 개발업의 확대’를 도정목표로 삼고 있다면 차라리 부동산 개발 부문을 분리해 '제주도 주택공사'를 신설하고, 개발공사는 지하수 관리와 삼다수 사업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현재 제주개발공사는 전체 예산의 62%(1,366억 원)를 부동산 개발에 투입하고 있어 본연의 설립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삼다수 사업에서 발생한 이익을 고스란히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말이다. 공사 본부 조직에서 2025년 기준 부동산 개발 관련 인력이 삼다수 생산·유통 부서 인력을 넘어선 현 상황을 볼 때 부동산 관련 사업부문은 ‘제주도주택공사’로 분리하여 해당 인력을 신설 주택공사로 이관하고, 개발공사는 수자원 관리 부서는 증원하여 지하수 보전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공사 운영을 정상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제주개발공사 거버넌스의 효율 및 투명성 강화를 위한 조치가 논의되어야 한다. 우선 현행 사장 선임 과정에서 나타난 도덕적 해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민 참여가 보장된 ‘공개모집제’ 도입을 제안한다. 여기에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상충 이력 후보자 배제와 도덕성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한진그룹의 지하수 증산에 찬성하며 제주 지하수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난 도정의 지하수 관리위원회나 현재 형식적 참여에 그치고 있는 공사 운영위원회의 도민 대표 비중 역시 획기적으로 높여 제주 지하수 관리권을 도민에게 돌려주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넷째, 공사 배당금을 설립 취지에 부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과거 김태석 의원이 제안한 대로 배당금을 일반회계가 아닌 목적기금으로 전환하여 지하수 보전, 친환경 무상급식, 사회복지 사업에 한정 사용하는 것에 찬성하지만 적어도 오영훈 도정이 사용하는 것처럼 내역도 공개하지 못하는 쌈짓돈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도민이 심판해야 할 시간
제주개발공사의 현재 모습은 1995년 창립 당시 도민들이 꿈꾸었던 모습과는 정반대다. 지하수 보전과 삼다수 브랜드 육성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저버리고, 부동산 투기에만 몰두하는 개발공사의 모습에서 도민들은 무엇을 느껴야 할까?
2025년 삼다수 위탁판매권 입찰에서 대형마트 판매권까지 포함시키는 결정은 '지하수 주권'을 시장에 매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연간 6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도외 유통업자에 헌납하면서도 개발공사 운영위원회의 도민 참여는 13.3%에 그치고 제주 지하수의 독점적 이용을 통해서 발생한 이익배당금은 도정의 쌈짓돈으로 사용되는 현실. 이것이 과연 도민을 위한 공기업의 모습인가.
제주개발공사는 제주도민의 소중한 자산인 지하수를 지키고, 그 가치를 도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개발공사는 도민의 자산을 도외 유통재벌에 헌납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부동산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제 도민이 나서서 제주개발공사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할 때다.
30년 전 제주의 청정 지하수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잊지 말자. 공공성을 회복하고, 도민을 위한 진정한 공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우리 모두가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제주개발공사의 미래는 이제 도민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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