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칼호텔 노동자들이 7일 오전, 고용보장 없는 호텔 매각을 추진하는 사측을 규탄하며 제주시청 앞에서 제주칼호텔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걷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칼호텔 노동자들이 고용보장 없는 호텔 매각을 추진하는 사측을 규탄하며 제주시청 앞에서 제주칼호텔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걷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 성장 없는 경제, 일자리 없는 사회

‘실직한 가장, 취업 못한 자식, 부양해야 할 노부모.
이렇게 실업자 3대가 함께 살아가야 할 판’

나라 경제사정이 위태위태하다. 온통 난리다. 코로나의 긴 터널을 가까스로 벗어난 지금 예기치 못한 암울한 그림자가 성큼 다가섰다.

치솟는 기름값에다 물가는 천정부지, 게다가 금리도 크게 오를 모양새다.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마당에 주가마저 바닥을 모른 채 연일 곤두박질, 회복할 기색마저 전혀 없다. 경기침체를 넘어 공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서서히 들려온다.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쳐진다.

그럴수록 앞서는 걱정꺼리가 고용절벽, 바로 일자리 문제. 필자로선 IMF때부터 20여 년 실업극복운동과 연을 맺어 온 처지라 예삿일 같지 않다.

우리에게 일자리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사람들이 저마다 사회적 위치를 갖는 경로나 다름없다. 개개인은 일자리를 통해 인간관계를 맺고 그만큼 사회적 권리를 누린다. 오늘날 산업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이제 실업(失業), 즉 ‘일자리가 없다’는 건 단순히 소득원천이 없다는 얘기만이 아니다. 아니 훨씬 더 가혹한 말일지 모른다. 어쩌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경제·사회·문화적 수단으로부터 배제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

특히 실업은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 무엇과 비교될 수 없을 엄청난 개인적, 사회적 손실을 가져온다. 실업이나 불안정 고용이 낳는 비용은 충격적일 만큼 크다.

“실업과 불안정 고용은 잔인하고, 고질적이며,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체르네바 2020)

(사진=김재훈 기자)
(사진=김재훈 기자)

# 모든 국민은 ‘일할 권리’가 있다!

누구나 빈곤의 근원에 실업과 일자리 불안정이 있다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일자리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순 없을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의료와 주거 그리고 먹거리가 부족할 때 정부가 이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일자리가 부족할 때 필요한 일자리를 정부가 직접 제공하면 왜 안 될까?

사실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는 시민의 기본권으로서 ‘일할 권리’(Right to Work)를 보장한다. 우리 헌법 제32조 1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가 바로 그것. 이처럼 헌법에 명시된 일할 권리를 일자리를 보장받을 권리로 확장시킨 것이 일자리보장제(Job Guarantee).

일자리보장제란 ‘정부가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을 어떠한 유보조건도 없이 적정한 임금 수준으로 고용하도록 책임지는 제도’다. 흔히 공공근로를 떠올릴 수 있으나, 일자리보장제는 그보다 외연이 훨씬 넓을뿐더러 일자리를 ‘사회적 권리’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차원을 달리한다.

무엇보다 노동시장에서 정부의 최종 고용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최종고용자란 금융시장에 대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는 통화당국에 빗대어, 정부에 보다 적극적인 고용정책을 요구한다. 정부는 금융안정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부문에서 완전 고용을 유지할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

일자리보장제는 정부가 실업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안도 있지만, 지자체와 사회적경제 부문에 고용을 위임하되 정부가 재원을 책임지는 방안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정부가 최종 고용자로서 일자리를 책임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고용절벽이라는 사회적 질병에 맞서는 공공 차원의 유력한 사회적 방역인 셈.

이미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시민국토보전단(Civilian Conservation Corps)’을 추진한 바 있는 미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일자리보장제가 대선공약으로 발표됐을 정도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도 일자리보장제가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에 가장 필요(응답률 42.2%)하고 도입이 시급한 제도(응답률 43.8%)라는 인식이 높게 나타났다.

시민기후단 The Civilian Climate Corps. (출처=Sunrise Movement )
시민기후단 The Civilian Climate Corps. (출처=Sunrise Movement )

# “원하는 누구나 일자리를 갖게 하자”

‘고용 없는 성장, 일자리 없는 사회’를 타개할 방안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일 할 기회에 접근하지 못하는 1000만 명 이상의 ‘노동잉여세대(비경제활동인구+실업자)’를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가 절박하다. 청년, 경력단절 여성, 은퇴 후 퇴직자, 중고령층이 그들이다.

이제 실업과 불안정고용을 사회적 배제 현상의 하나로 인정하고 사회연대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새로운 해법이 중요하다. 정부가 최후의 고용주로 나서 공적 재원을 동원해서라도 생활임금 수준으로 “원하는 누구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일자리보장제에 걸맞는 일자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먼저 기후위기 대응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기후위기는 전 인류의 급박한 문제로서,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생태 전환을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 성공적인 생태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초자료 조사, 생태환경 조성⋅감시 등 단기간 내 대규모 인력투입은 필수적인 일.

시민참여형 육상 태양광 발전사업 (사진=박소희 기자)
시민참여형 육상 태양광 발전사업 (사진=박소희 기자)

생태⋅환경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에너지전환 정책 수립 등에 필요한 수많은 정보를 수집⋅조사하기 위해 ‘기후위기 조사단’을 운영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그린 리모델링 센터’를 설립하고 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위한 현황을 파악하는 일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생태(환경) 프로젝트는 끝이 없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린뉴딜 정책으로 추진되어야 할 재생에너지 발전, 녹색교통전환, 주택과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 등이 기존 화석연료 산업에 비해 더 많은 그린칼라(Green Collar)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그린뉴딜 정책과 일자리보장제를 적절히 연결해서 추진하는 것은 정책적 상호 촉진 효과는 물론이고, 실행과정을 더욱 명확히 해줄 수 있다.

또한 지식 커먼스(knowledge commons) 조성 프로젝트도 눈여겨 볼만하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우리 경제는 인적자본과 사회적자본 등 포괄적 의미의 ‘지식’을 강조하는 ‘내생적 성장’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시기이다. 어디서든, 누구든 사회적 공동 지식⋅정보를 혁신역량 강화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자산으로 디지털화하고 지식 커먼스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지식 커먼스는 지식 접근성 측면에서 지역 불평등과 배제의 문제 해소에 기여한다.

제주도재향군인회여성회가 참전용사 돌봄 서비스를 실시했다.
제주투데이 DB

마지막으로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급증하는 돌봄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지역사회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영역이다.

노인 돌봄, 방과후 학교, 환자나 장애인 등에 음식배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이들, 위험 청소년, 퇴역군인, 출소자, 장애인 등을 위한 특별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아울러 각 학교 학생들의 영양조사, 젊은 엄마들을 위한 건강인지 프로그램, 학교와 지역 도서관이 개최하는 어른을 위한 자기계발 강좌, 종일반 아동 돌봄 등을 조직하거나, 교사, 운동 코치, 호스피스 노동자, 도서관 사서 등을 보조하는 일 등도 있다.

일자리보장제는 지속 가능한 농업의 일환으로 친환경 로컬푸드나 사회적 농업 등도 조직할 수도 있다.

민선8기 오영훈 도정 101개 정책과제 중 '제주형 청년보장제'가 포함됐다.
민선8기 오영훈 도정 101개 정책과제 중 '제주형 청년보장제'가 포함됐다.

# 제주형 일자리보장제, 청년부터 시작하자!

우리나라 청년실업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표면상 지표로야 괜찮은 듯 보이지만 확장(체감)실업률은 여전히 20%를 넘어선지 오래.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구체적 이유없이 일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가 2030 세대에서 되레 늘어만 간다.

누군가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세대인 청년들이 죽도록 일만 해 왔던 부모들보다 더 못 사는 비극적인 상황을 개탄할 정도다. 이런 현상은 지방으로 갈수록 심각하다 못해 거의 재앙에 가깝다.

민선 8기 도정이 이제 막 출범했다. 도지사 핵심 공약 중 하나가 청년보장제. 지난달 인수위원회가 주최한 정책아카데미에서도 이른바 ‘(제주형)청년고용보장제’도입이 주창됐다.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청년 실업자에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청년의 역량 축적과 사회⋅경제 혁신 기반 강화를 위해 ‘청년보장제’와 ‘일자리보장제’를 결합한 모델을 구상해보자는 취지다.

‘(제주형)청년고용보장제’. 무엇보다 ‘제주 기후위기 청년본부’를 설립하고 지역 차원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생태전환에 필요한 미래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그리고 ‘청년 환경보전단’을 통해 제주의 다양한 생태자원 관리, 그리고 생태 조사와 복원에 이르기까지 참여소득형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도 염두에 두면 좋겠다.

성산갑문과 광치기 해안도로가 생겨나 뭍이 된 일출봉과 호수가 된 오조리 내수면(사진=한진오 제공)
성산일출봉과 오조리 내수면(사진=한진오 제공)

기왕 내친 김에 필자도 제안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제주산업 생태계 전환을 위해 청년일자리보장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자. 21세기 가장 부족해질 자원으로 식량(Food), 에너지(Energy), 물(Water)을 손꼽는다.

생태학자 최재천교수는 이 세 자원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 FEW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다른 곳에선 부족하거나 없지만 제주에선 충분하거나 있는 FEW를 핵심자원으로 안전(먹거리, 돌봄, UD)과 회복력(생태, 치유)이란 사회가치와 기술역량을 키워보면 어떨까.

바이오그린과 신재생에너지, 그리고 생태환경복원을 제주 미래 100년 먹거리로 제주산업 생태계를 전환하고 중점 육성하는 것. 이 FEW산업이야말로 청년일자리보장제와 잘 어울리는 그럴듯한(?) 조합은 아닐까. 제주더큰내일센터와 지역혁신기업들이 함께 손잡고 말이다. 한번 도전해 볼만 하지 않은가.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