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귀포 대정중학교에서 발생한 일부 학부모와 보수단체의 교권·수업권 침해 사태에 대해 제주도교육청이 ‘무대응’을 사실상 공식 입장으로 내놔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앞서 대정중에선 사회과 수업시간에 ‘차별과 혐오’ 주제로 인권교육이 이뤄졌다. 중학교 일반 교육과정 성취기준인 ‘사회집단에서 나타나는 차별과 갈등의 사례와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탐구한다’에 따른 수업이었다. 이때 국가인권위원회가 정하고 있는 소수집단 중 10그룹 중 한 집단을 선택해 차별에 반대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작업물을 현수막에 설치하자 이를 두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일부 학부모와 외부 단체가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후 민원까지 받은 제주도교육청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수업의 정당성을 질의, ‘정당하다’는 검토 의견까지 받았다.
이같이 학생들의 수업권은 물론 교사의 교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정중 교사 일동은 ‘나는 서로 존중하는 세상을 원한다’, ‘자유롭게 수업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등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연대에 나섰다. 이들은 입장문을 내고 “해당 수업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친 정당한 교육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인권단체를 비롯한 정당, 시민사회 단체에서도 연대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는 도교육청을 상대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하며 학부모 단체의 교권 침해 활동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 1011명의 서명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자 현수막 철거를 요구했던 학부모와 단체는 기자회견까지 열며 이 수업을 두고 ‘동성애 소개 교육’, ‘주입식 교육’이라 규정, 즉각 중단하라며 혐오 행위를 이어갔다.
#제주교육청 무대응으로 일관 "공식 입장 내면 또 시끄러워질까 우려"
하지만 정작 도교육청은 무대응으로 이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모양새다.
지난 22일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제주투데이와 통화에서 “국가인권위로부터 해당 수업은 문제가 없었다는 회신을 받았으며 교권과 수업권 침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며 “교육청에서도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고민했지만 이제 겨우 분위기가 사그라들고 아이들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상황에서 교육청이 보도자료를 내거나 대응하면 또다시 시끄러워져 학생들이나 학교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을 묻자 해당 관계자는“아직 사안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재발 방지 대책을 거론하기는 어렵다. 다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할 수는 있다"고 답했다.
이번 '혐오와 차별을 배제하자'는 수업이 정당했다고 하면서 특정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를 단순히 '갈등'으로 규정하겠다는 것. '정당한' 수업을 진행한 교사와 이를 지지하는 교사들은 지금도 온라인상에서 혐오단체로부터 '공격' 받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인권수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에 대해 그 답은 부정에 가까울 것이다. 교사가 위축되면 이는 학생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인권수업의 축소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이 과정에서 교육청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공식 입장'을 내는 것조차 '수업의 안정화가 우선'이라며 교사와 학생들이 겪고 있는 혐오에 대해 눈감고 있다. 인권수업을 향한 '공격'은 교사와 학생들이 감당해야할 몫이 됐다.
#"도교육청의 첫 번째 책무, 학생·교사 보호하는 것"
이 같은 입장에 인권단체는 “비겁하다”며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24일 최석윤 사회적협동조합 트멍 대표는 “학교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책임을 가진 기관 아니냐”며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들의 수업권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이 교육청의 첫 번째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논란이 된다고 해서 인권문제에 대해 외면하고 자신들의 권한밖의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일부 학부모들의 항의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스스로 ‘우리 수업은 정당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나. 이를 외면하는 것은 굉장히 비겁하다”고 강도 높게 질타했다.
#"단어 선택 운운? 검열과 같은 뜻"
또 도교육청이 내놓은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 “단어 선택을 운운하는 것은 검열하겠다는 걸 뜻한다”며 “인권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이 ‘말조심 하라’는 건 인권 이야기를 학교 안으로 끌고 들어오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당성이 없는 일부 단체의 요구와 주장은 거부하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열기만 식으면 돼’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의 핵심은 수업권과 학습권의 침해인데 마치 인권 이야기한 사람이 문제라는 것과 같다. 교육청이나 교육감이 인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단면”이라고 비판했다.
한 시민사회 관계자는 “이번 수업에 대해 학부모에게 항의 전화가 왔을 때 교육청은 ‘멈춰라’라고 대응했어야 했다”며 “이런 식으로 조용히 지나가버리는 건 정리가 제대로 됐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