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번 달 영화는 뭐보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내뱉는 말이다. 그러다 공교롭게 두 사람에게서 한 영화를 적극 추천받았다. 2014년 일본 영화 <우드잡>이다.
포털창에 영화를 검색하면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이라는 제목도 함께 소개된다. 영화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이, 이 영화는 ‘임업'을 다룬다. 임업이라는 생소한 세계를 보여주는 <우드잡>은 일단 분위기, 유머코드, 가족과 스승, 그리고 마을을 대하는 태도 등 지독히 일본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우드잡>을 만든 감독은 우리에겐 2004년 작품인 <스윙걸즈>, 2001년 작품인 <워터보이즈>로 조금 더 익숙한 이름이다. 두 작품 모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면, <우드잡>은 대학에 떨어진 한 청년의 직업교육 분투기다.
입시에 실패한 히라노 유키(소메타니 쇼타)는 그 이유로 만나던 애인과도 이별하게 된다. 두 가지의 상실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 유키는 귀가길에 자신의 미래를 점치는 기분으로 취업 준비생 직업 소개 가판대 앞에서 껌을 툭 뱉는다. ‘자위대 모집' 포스터에 뱉은 껌이 붙자 “이건 아니다"하고 자리를 뜨려던 유키는 자위대 모집 포스터 뒤에 꽂힌 ‘산림 연수생 모집' 홍보물을 발견한다.
유키는 산림 연수생 모집 홍보물 표지 모델의 외모에 반해 우발적으로 산림 연수생이 되길 선택한다. 영화니까 가능한 설정이었겠으나, 사실 일본은 한국보다 학구열이 높다고 알려진 나라다.
다만 치열한 입시경쟁이 이루어지는 속에서도 한국만큼 높은 대학진학률이 나타나진 않는다. 고교 졸업생 약 절반 정도만 대학진학을 선택한다. 대학교 졸업장이 꼭 취업의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진단과 평가다.
물론 <우드잡>은 벌써 10년 정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라, 온라인 취업시장이 활성화된 지금은 가판대를 헤매는 취준생 일본인은 거의 없겠지만, 현재 가장 심각한 청년문제로 꼽히는 취업률은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나은 편이다. 대학진학률은 낮아도 말이다.
나무꾼이라는 세계
다시 영화 내용으로 돌아와서, 어렵사리 산림 연수생이 된 유키는, 아름다운 표지모델은 구경도 못하고 부주의한 성향과 허약한 체력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연수원에서 도망갈 궁리를 한다. 그러나 그것조차 맘대로 되지 않는다.
한 밤 중 필사적으로 연수원에서 도망치던 중 오토바이 하나를 잡아 타게 되는데, 운전자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표지 모델 나오키(나가사와 마사미). 이 장면에서 유키의 집요함과 끈기, 단순함과 허무맹랑함을 재평가하게 되는데 어렵게 뛰쳐나온 연수원을, 오로지 나오키가 도망나온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이유 한 가지로 되돌아 간다.
이야기 하다보면 철없는 고졸 일본인의 뻔한 연애 실패담 같지만, 연애 얘기는 여기 까지 하기로.
선망하던 사람에게 보기좋게 차인 유키가 각성 후 나무꾼의 세계에 스며드는 과정이 영화의 완성도를 더한다.
특히 유키의 주변인물로 등장하고, 매우 거칠고 마초적이지만 유키의 정신적, 기술적 스승이 되어주는 요키(이토 히데아키)와 관계가 무르익으며 다양한 에피소드가 발생한다.
스펙타클 하다거나 어드벤처 무비라고 말하기엔 터무니 없이 허당끼 넘치는 주인공의 삶이지만 그가, 그리고 그를 둘러싼 숲과 나무들과 울창해져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유키는 요키의 조력을 받고 욕받이도 하면서 나무꾼의 꼴을 갖추어 간다. 처음으로 큰 나무를 혼자 베는 모습은 꽤 감동을 주기도 한다. 자리를 살피고, 톱질을 하고, 쐐기를 박고, 나무를 넘기는 순서를 지키는 과정 전체는 생의 순리와 순환을 감각하게 한다. 나무를 벤다는 것이 이렇게 예의를 갖추는 일이구나 싶기도 했다. 대규모 벌목 기업이나 개발업자들이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 산 전체를 민둥산으로 만드는 일과 더욱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죽은 뒤에 나와. 그런거지 뭐.” 의 삶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105년(무려 메이지 시대) 된 나무를 팔고 돌아오는 길’에서 나누는 대화장면이다. 트럭에서 나누는 나무꾼들의 대화 속에서 임업의 깊이를 배울 수 있다.
유키는 나무 한 그루에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흥분하며 산에 있는 나무를 다 팔아 부자가 되자는 취지의 말을 하지만, 작업반장은 숲의 ‘100년'을 이야기 하며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죽은 뒤에 나와" 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렇기에 나무꾼들은 벌목을 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나이테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나무를 베어 파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지만 과정에서 숲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숲의 생과 사를 관장하는 것이 나무꾼의 소명처럼 보였다. 영화 중반부에 유키가 산신령에게 주먹밥을 받치는 장면이나, 후반부에 ‘산신령 마을축제'를 여는 장면들을 보면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산신령 만이 산의 주인이 아님을, ‘가무사리' 마을의 주민들이 곧 산의 주인이자 산의 보호를 받는 자들이라는 것을 느낄 때, 마음이 상쾌해진다. 그리고 당장 뒷산이라도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푸르러 진다.
한편 영화는 여전히 나무꾼인 다수 남성들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중간중간 남성과 ‘어른'이라고 불리는 더 나이든 남성들의 사회에서 쌓여가는 여성들의 우정을 엿볼 수 있었지만 늘 이런 영화에서 아쉽고, 불만이 생기는 대목이기도 하다.
외지인이지만 ‘산사나이’로 인정받아 마을의 주요한 자리에 초청받는 유키와 달리 가무사리 마을을 평생 지켜온 여성들은 곁에서 그를 축하해주는 것외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모습을 보면 더 그렇다. ‘그런거지 뭐' 하고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삶이다.
숲, 지키는 소중함을 넘어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우리에게 숲은 ‘소중하니까 지켜야 한다'는 도덕 교과서적인 말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든다. 실제로 숲, 삼림은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위기 속에서 ‘흡수원'이라는 또다른 ‘자원'으로 평가받는다. 그렇게 늘 이로운 것을 허락하는 숲을 우리는 너무 쉽게 대하곤 한다.
또한 숲을 관리하는 일은 단순히 나무를 베지 않는 것이 전부가 될 수 없다. 산림 전체에 충분한 일조량. 건강한 흙,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관리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은 한국과 산림면적의 비율은 비슷하지만 국토면적이 넓을뿐 아니라 전국/지역 산림계획을 5년마다 구축하여 산림경영체계도 매우 탄탄하다는 평가다.
특히 요즘 기후변화로 인해 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면서 ‘임도(林道)’까지도 중요성을 평가 받는 중이다.
한국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좁은 임도 건설로 문제를 지적받지만, 일본과 독일같은 나라들은 임도도 넓지만 최대한 주변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산림작업용 길을 만드는 기술력이 뛰어나 ‘공생’이 무엇인지 보여주기도 한다. 공항을 짓겠다고 포크레인부터 밀고 들어와 나무를 ‘뜯어가는’ 한국과 달라도 많이 다르다. 한국이 임도건설을 계획할 때 정말 유의해야 할 지점이다.
끝으로, 지금 일하는 곳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가 독일에서 진행했던 ‘기후 숲' 프로젝트를 빌려와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역에서 최대한 빨리 나무를 심자'라는 간결한 목표 속에서 지역주민과 학교 교수·학생들, 전문가들이 일구어낸 일이다. 어쩌면 이러한 작은 움직임 속에서 큰 희망을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푸릇푸릇함을 뽐내도 용서가 되는 이 봄을, 30년 뒤에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혜미
주의! 저는 영화를 따로 공부하거나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영화와 정치를 많이 사랑하는 한 사람의 글로 읽어주세요. 또한 이 연재에서 같이 볼 영화들은 오래된 영화일 경우가 있을 거에요. 현재 사회적 통념과 시대성이 변화한 만큼 옛 영화를 다시 꺼내보는 일은 꽤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지루할 수도 있지만, 같이 고민해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