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지하 시인이 타계했다. 그의 시를 나는 기억한다. 가령 <타는 목마름으로>의 한 대목 같은 것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 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내 책꽂이를 뒤져보면 김지하 시인이 살아생전에 펴낸 책 대부분(아마 80% 정도?)이 있을 것이다. 읽은 것도 있고, 그저 사두기만 한 것도 있다. 아마 시인이 앞으로도 100년을 더 살며 책을 낸다면, 그 책들까지도 사 모으기 위해 나 역시 100년을 살고 싶었을지 모른다. 말년의 그는 안타깝지만, 내 청춘의 시작에는 김지하가 있었다. 결코 지울 수 없는 사랑 노래로.

결혼 전, 아내와 나는 일을 같이 했다. 잡지와 책을 만들었다. 내가 한참 나이 많은 선배였다. 아내에게 일을 가르치고, 일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는데, 다행히 우리의 ‘서재 결혼시키기’는 제법 수월한 편이었다. 여태껏 정치적으로 크게 의견이 갈린 적이 없고, 미학적으로 서로 궤를 달리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데서 갈등이 발생하면 지혜롭게 잘 해결할 깜냥이 못되었으므로, 그것 하나만으로도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아내와 함께하는 정치와 미학은, 늘 현실에 전전긍긍하는 가난한 소시민 자영업자의 넋두리이자 일반 상식과 다를 바 없는 것이지만,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처럼 늘 푸르게 간직하고 있다. 아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믿는다’.

이쯤이면 우리가 가톨릭에서 말하는 성가족(聖家族)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소시민 부르주아의 안온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김지하와 동학의 표현을 빌어 말하면 ‘불연기연(不然其然, 그렇지 않다, 그렇다)’이다. 들어 보시라!

나는 오랫동안 장발로 지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긴 머리 남자에 대한 로망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새치가 생기더니 급격히 백발이 되었다. 이건 유전자의 강력한 힘이기도 했다. 긴 머리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던 아내가 질색팔색 하기 시작했다. 당장 염색을 하라고 닦달했다. 성화에 못 이겨 몇 차례는 미용실에 끌려가 염색을 했다. 몇 차례는 집에서 아내가 해준 적도 있다. 나는 아내에게 목을 내놓은 사형수처럼 선택권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눈에 힘을 ‘빡’ 주고 염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부부싸움을 각오한 비장한 선언이었다. “내 머리는 내 거야! 염색 안 해!” 아내는 한참 별 말이 없더니 그저 한 마디를 남기고 그냥 돌아섰다. “이상하네. 왜 머리에 자아가 생겼지?” 나는 좀 멍했다. 뭐야? 이게 끝이야?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가 그때였다. 아내가 커피와 책을 팔고, 내가 빵을 만들기로 하고 가게를 열 무렵…. 그때 아내는 친구들과 몇몇 손님들로부터 백발의 사내가 빵을 만들고 있으니 마치 빵 장인 같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 후, 대반전의 시대가 열렸다. 염색 금지령이 떨어진 것이다. 단발 금지령도 포함돼 있었다. 아내가 주장하기를, “당신의 백발은 가게의 인테리어야. 염색과 짧은 머리는 기물 파손이야!”

그러다 최근 들어 몹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었다. 까맣게 염색도 하고 싶었다. 아내에게 슬며시 뜻을 내비쳤지만 그저 미간에 주름만 잡더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장모님이라는 든든한 원군을 등에 업었다. 워낙 깔끔한 걸 좋아하시는 장모님이었다. “김 서방이 나보다 더 늙어 보여! 좀 깔끔하게 하고 다니면 오죽 좋아?” 결국 아내는 나를 미용실에 데려다 주었다. 대한민국 보통의 남자들처럼 머리를 잘랐다. 염색도 했다.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고,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수염을 기르고 싶어졌다. 체 게바라는 못 돼도, 그런 수염을 길러볼 수는 있는 거 아닌가. 아내는 역시 반대했다. 지저분하다고. 수염 기른 남자가 멋있는 게 아니고, 멋있는 남자가 수염을 기른 거라는 무적의 논리를 펼쳤다. 이길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또 포기하는 부류는 아니니까 기회만 되면, 잽을 날리고 훅을 날리며 어필해 보았다.

아내는 타격감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반전이 또 엉뚱한 데서 생겼다. 아내의 첫 직장 선배가 간만에 놀러왔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염을 기르고 있던 내 기준의 ‘멋진’ 남자였다. 그가 나의 ‘수염 투쟁’ 스토리를 듣더니 아내에게 한 마디 했다. “하고 싶은 대로 놔둬. 형님이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슬프지만 진실. 슬픔이 통했는지, 진실이 통했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아내는 수염 금지령을 해제했다. 그렇게 내 육체에 대한 결정권은 매번 외부로부터 왔다. 아내에게 나의 말만 걸러내는 필터가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지금 아내라는 이름의 계엄령을 살고 있다. 육체는 통제되고 정신은 방황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사이에서 늘 분열한다. 아내는 자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자고 하고, 나는 나에게도 손가락이 있다고 낮은 소리로 말해본다. 승리는 아내의 몫이고, 나는 쓰라린 패배를 맞는다. 자, 이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김지하의 시가 되고 싶어졌다. 푸르른 청춘을 살고 싶어졌다. 계엄령을 뚫고 자유를! 억압을 넘어 자율을! 아내를 이겨 자아를! 이름하여 ‘부부해방전선’ 만세!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 숨죽여 흐느끼며 /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 타는 목마름으로 /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김지하 시 <타는 목마름으로> 중에서)

p.s. 얼마간 제투에 연재했던 ‘한뼘읽기’ 코너를 느닷없이 유야무야 그만두게 된 점,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새로운 코너로 독자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아내와 저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에 대해 쓰려 합니다. ‘한뼘읽기’는 존재하는 텍스트를 읽는 작업이었고, 이번에는 아내와 제가 텍스트가 됩니다. 원고는 격주로 실리며, 저와 아내가 번갈아가며 쓰게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자유로운 부부생활' 도모한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자유로운 부부생활'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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