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해방전선]은 삐리용과 노지의 일상 기록입니다. 오늘 화해하고 내일 다시 싸우는 부부싸움 대공개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과장과 미화 없이 씁니다. '부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부부의 해방'을 맞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필자 주)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부부해방전선]은 삐리용과 노지의 일상 기록입니다. 오늘 화해하고 내일 다시 싸우는 부부싸움 대공개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과장과 미화 없이 씁니다. '부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부부의 해방'을 맞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필자 주)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남편은 오랫동안 백발의 긴 머리였다. 그가 이 연재의 첫 화에서 밝힌 바대로, 그렇게 되기까지 사연이 제법 있었다. 그런 그가 지금 머리를 커트하고 염색도 했다. 이번에는 수염을 기르겠다고 한다. 독자 여러분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어 그는 한껏 기고만장해졌다.

“당신 빼고 세상이 다 나를 응원해.”

수염 기른 꼴을 봐야 한다니. 몹시 못마땅했지만 참았다. 실내에서 일하며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얼마간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밤에는? 불을 끄면 되지.

그의 수염 프로젝트는 용두사미였다. 두 달쯤 되었던가. 어느 날, 그는 멀끔하게 면도한 얼굴로 밥상에 앉았다. 마침내! 내가 물었다.

“털은 어디로 갔지?”

그가 겸연쩍게 대답했다. “수염에 디자인이 필요한 것 같아. 새로 기르면서 길을 들여 보려고 밀었어.” 계속 기르겠다는 의지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깨끗이 밀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노력은 봐줄만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사흘에 한 번씩 밀어라!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지. 간절히 바라면 정말로 이루어지는 걸까? 남편이 정말로 사흘에 한 번꼴로 수염을 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날이면 얼굴은 멀끔해졌으나, 표정은 어두웠다. 이제는 날마다 수염을 민다. 다시 물었다.

“왜 맨날 털이 없지?”

못마땅한 표정의 남편이 입을 뗐다.

“안 어울리는 것 같아.”

아니, 그걸 꼭 길러봐야 알아? 그를 마음껏 비웃어주었다. 최근 그의 헤어스타일은 정말 볼썽 사나웠다.  염색한 머리카락의 색이 바랬다. 염색 후 새로 자라난 부위는 허옇게 백발이 되었다. 지저분하다. 먼지 한 말을 뿌려놓은 것처럼.

“염색 다시 할래?” 내가 미간을 찡그리며 권유를 가장하여 강요했다. “아니!” 그럴 줄 알았다. 그는 안 하는 편을 선택하는 남자니까. 아무렴. “염색이 남아 있는 부분을 자를까?” 그가 대단치 않은 대안을 제시했다. “염색은?” 내가 또 따져 물었다. “머리는 안 기르고 그냥 백발 커트, 어때?” 그로서는 최선의 절충안이었을 거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하루 종일 바쁜 날이었다.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살아야 했다. 하필 그런 날에, 굳이 꼭 굳이, 미용실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자가 내 남편이라니. 그는 혼자서 미용실에 가지 못하는 남자였다.

아직 자라지도 않은 그의 수염을 죄다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너는 나보다 늙은 나의 아들이니? 환장할 노릇. 결국 나는 미용실에 노트북까지 들고 가서, 그가 커트를 하는 동안 일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그가 머리를 자른 다음 날부터 우리는 며칠째 가게의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중이다. 공사를 맡길 부분은 맡기고 비용 절감과 우리의 취향 고수를 위해 직접 톱과 망치를 들어야 할 때는 서툰 노동력을 열심히 갈아 넣는 중이다. 그 중 하나가 책방의 선반을 바꾸는 것이었다.

‘당근’ 쇼핑으로 새로 들여놓은 선반은 우리 천장에 맞지 않았다. 톱질을 해야 했다. 줄자를 대고 천장의 높이를 재는 순간, 약 1cm의 의견 차가 생겼다. 나는 그가 측정한 높이보다 1cm를 더 커팅해야 한다고 했으나, 그는 단호했다. “에이, 아니야.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나는 한 발 물러섰다. 어차피, 톱질은 그의 몫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긴, 개뿔! 그가 '쌔 빠지게' 톱질한 책장은 내가 말한 대로 1cm 차이로 원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응? 이게 왜 이러지? 이럴 수가 없는데?” 그가 물음표 여러 개가 중첩된 단말마를 쏟아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톱질은 그의 몫인 것을. 그 '의견 차' 1cm를 잘라내기 위해서 그는 다시 톱질 중이다. 그 톱질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한 장면이 오버랩 된다. 언제였더라. 대학생 아들이 자기의 진로 문제를 두고 나와 대화를 나누다가 말했다. “엄마가 그랬잖아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 보는 사람이 있다고. 그게 나인 거 같아.”

아들아, 그것은 가풍이야. 그것은 유전자의 강력한 지배력이야. 고집쟁이 경험주의자들과 사는 일은 곧잘 피곤하다. 경험수집가의 특성을 자기 개성으로 삼을 때는 더욱 그렇다. 경험수집가들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서 지레 포기하는 법이 없다.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실패가 태산처럼 쌓일 뿐이다.

나는 그 태산에 꽂을 깃발을 날마다 가슴 속에서 흔든다. “아들(들)아, 그 산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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