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서남북 사람들이 술자리에 모이면 본인 마을에서 조망하는 한라산이 가장 아름답다 우기다 싸움이 나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라산은 커녕 길가의 들풀조차 보기 힘든 풍경이 됐다.
제주투데이는 창간 19주년을 맞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인문숲이다’와 공동으로 ‘개발과 저항-제주개발사를 다시 보다’ 대중 강연을 지난달 9일부터 8회에 걸쳐 진행했다.
'골프장 건설과 제주'를 주제로 여섯번째 강연을 맡은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1960년대 이후 제주 지역 개발이 시작되면서 마을목장 등 초지가 사라지고 있다"면서 본격적인 발제에 앞서 최근 10년 간 제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사진으로 비교했다.
1. 서귀포시 동홍로 : 제주헬스케어타운
서귀포시 남주고등학교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가는 동홍로 풍경. 2008년에는 2차선 도로 양옆으로 억새가 무성했다.
현재 동홍로는 4차선으로 확장됐으며, 양옆으로 제주헬스케어타운이 조성돼 있다.
서귀포시 동홍·토평동 일대 약 155만1000㎡(47만평)에 조성된 헬스케어타운은 '제주국제자유도시' 핵심사업 중 하나다.
제주헬스케어타운 조성사업은 중산간 개발과 더불어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 유치를 놓고 10년 넘게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2. 관음사 가는 길 : 중산간 타운하우스
제주대학교에서 관음사로 가는 산록북로 모습. 2008년엔 도로 옆으로 마을과 억새가 어우러졌지만 현재는 3개 단지 총 36개 세대로 조성된 아라 뜨래별 타운하우스가 들어서 있다.
중산간 개발에 불을 지핀 것은 1960년대 초 개통된 5·16도로, 한라산 제1횡단도로다. 제주 1호 골프장 '제주컨트리클럽'도 도로 개통과 맞물리면서 1962년 이승만 대통령 지시로 들어섰다.
중산간에 거대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다. 두 도로 개통 이후 중산간 도로들과 번영로, 평화로가 차례로 생기면서 접근성이 떨어졌던 중산간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영웅 사무처장은 한 필지 규모가 큰 중산간의 경우 토지 거래가 상대적으로 쉬웠떤 점도 중산간 개발을 부추겼다고 덧붙였다.
중산간 난개발이 곶자왈 파괴, 지하수 오염 등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시키자 제주도는 조례를 통해 중산간 대규모 개발 행위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규모 개발 행위, 즉 중산간 타운하우스는 늘어나는 추세다.
3. 예래해안로 : 예래휴양형주거단지 개발사업
서귀포시 예래해안로. 2008년 제주 돌담 뒤로 푸릇한 초원이 펼쳐지는 절경이었지만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추진한 예래휴양주거단지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휴양시설이 들어서 있다.
토지 수용과 인·허가가 모두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로 사업이 좌초되면서, 말레이시아 투자자본은 1250억원의 막대한 배상금을 챙기고 철수했으며 해안가에 버젓이 세워진 건물은 8년 째 흉물로 남아 있다.
사업권을 넘겨받은 JDC는 토지주들과 소유권 이전 소송전을 펼치며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원지와 관광단지 등 대규모 개발사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새판을 짠다는 구상이다.
4. 태평로 : 삼매봉밸리유원지 개발사업
서귀포 여자고등학교에서 삼매봉으로 이어지는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태평로. 2008년에는 농지 뒤로 나무가 무성했지만, 삼매봉유원지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농지와 나무는 사라지고 건물과 목재 가드레일이 생겼다.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공무원이 개입해 '봐주기'를 하는 특혜의혹 사실이 드러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서귀포시 삼매봉유원지 개발사업은 호텔 등 숙박시설과 더불어 온천 개발까지 포함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당초 사업기간은 2008년 11월부터 2019년 말까지였지만 투자진흥지구 해제 논의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까지 기간을 연장했지만 조성 공사가 또 지연됐다.
제주도는 다시 내년 3월 말까지 사업기간 연장을 허가했다.
앞서 사진으로 제시한 개발 사업들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국가 주도 제주 개발 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제주만의 '특별한' 제도가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제주 개발 정책은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본격화 됐고,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제주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개발 속도가 빨라진다.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해 2001년부터 국내외 투자 유치를 적극 추진, 투자진흥지구 지정제도가 도입된다.
제주투자진흥지구 지정 현황은 2020년 기준 총 41개로, 사진으로 본 삼매봉밸리유원지 사업과 제주헬스케어타운을 비롯해 신화역사공원, 제주영어교육도시 등도 이에 해당한다.
국내외민간자본이 투자하는 특정 개발사업장이 투자진흥지구로 지정되면 제주특별법상 특례규정에 따라 세제 감면 등 혜택을 받는다.
제주도는 2002년 마을보유 토지 투자 안내 책자를 만들어 적극 홍보하기도 했다. 이는 중국어판까지 제작됐다.
외자 유치와 더불어 중산간 난개발을 부추긴 제주 골프장 건설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제주는 1966년 정규 18홀 규모 제주컨트리클럽이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1979년 오라컨트리클럽, 1989년 중문컨트리클럽이 각각 개장, 천천히 진행됐다.
이영웅 사무처장에 따르면 정부의 골프장 정책은 1988년 기점으로 크게 변한다. 당시 교통부 장관에 있던 승인권이 시도지사에게 위임되면서 농경지나 산림보전지역에서도 골프장 건설이 가능토록 법령이 다듬어진다.
마을공동목장이 골프장 부지로 팔려나가자 1990년 한림읍 금악리와 신촌 북촌리 마을 주민들은 골프장 건설 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저항했지만 개발사업 승인을 내준 행정 당국은 철저히 사업자 편으로 일관했다.
전국 움직임과 맞물려 제주 골프장 육성 계획은 DJ 정부 시절부터 본격화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골프 대중화를 선언하며 대중 골프장 정책 지원이 강화된다.
이에 맞춰 정부는 제주도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골프 관광지로 육성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민간사업자들의 골프장 건설을 적극 지원하기로 한다.
국무총리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기획단은 당시 제정중인 제주특별법에 골프장 육성 방안을 담겠다는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2001년까지 8개였던 골프장은 이후 10년간 제주도에 무려 23개 늘었다.
# 골프는 자연스럽지 않다
골프장은 우리나라 기후에 적합하지 않다.
골프는 15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영국은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따뜻하여 사계절 푸른잔디인 '벤트그라스'가 목초지에서 흔히 자란다. 잘 깎아만 주면 골프장이 조성되므로 자연파괴가 거의 없다.
자생적으로 골프장이 생긴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잔디가 자연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기후조건이다. 이런 이유로 골프장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멀쩡한 산을 깍고, 골프장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 맹독농약을 사용해야 한다.
제주의 경우 골프장 입지는 대부분 중산간 지역이다.
대표적인 지하수 함양 지역이면서 한라산과 해안을 연결하는 생태축인 곶자왈에 행정 주도로 골프장이 생겨난 것.
이영웅 사무처장은 "수십만평의 골프장 건설로 지하수 함양지역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면서 "골프장이 사용하는 지하수량은 일반 상업시설에 비해서 훨씬 많은 실정"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제주사회를 위해 "제주 생태민주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 제주특별법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