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측면에서 보자면 도로는 제주도를 수 많은 섬으로 쪼개 놓았습니다."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은 도로 건설로 인해 제주의 생태가 단절되고 있다며고 지적했다. 자동차가 빨리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도로가 신설되면서 생태 친화적인 '길'과 공동체는 사라지고 있다는 것. 양수남 사무처장은 지난 7월 21일 제주투데이 창간 19주년 공동기획 <개발과 저항> 강연회에 강사로 나서 제주 지역 도로 건설 문제와 대안을 제시했다.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 7월 21일 오후에 진행된  강연(사진=김재훈 기자)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 7월 21일 오후에 진행된 강연(사진=김재훈 기자)

오소리가 다니면서 숲속에 만들어진 오솔길,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말하는 고샅길, 낮은 산비탈 기슭의 자드락길, 그리고 전통적인 올레길은 마음먹고 찾아 다니지 않으면 그 길을 따라 걷기조차 어려워졌다.

그 자리를 도로와 자동차들이 대체하고 있다. 양수남 사무처장은 그와 같은 길들과 골목길이 사라져가는 것은 공동체의 해체와 속도사회로의 진입을 의미한다고 본다.

양 사무처장에 따르면 한국 도로의 총 길이는 113,405km(2021년 12월 기준)이다. 무려 지구둘레 2.8바퀴에 달한다. 정부가 관리하는 고속도로 및 일반국도가 전체 도로의 16.8%를 차지한다. 지방도 등 지자체가 관리하는 도로는 83.2%.

도로는 '생태 섬'을 만들고 공동체를 단절시킨다

특별·광역시 별로는 서울의 도로포장율이 가장 높고, 도별로 보면 제주도가 가장 도로포장율이 높다. '세계환경수도' 인증을 받겠다고 목소리를 내는 제주도의 현주소다.

양 사무처장은 부동산 투기 및 비대해진 토목산업의 유지와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도로개발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국토부의 예산이 57조575억원에 달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환경부 예산의 5배가 넘는다. 1929년 미국 대공황 이후, 정부가 토목사업 건설에 투자해 경기를 부양하는 케인즈의 경기부양 이론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 오래된 이론과 그로 인해 혜택을 받는 토목 산업이 현재 한국의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양수남 제공)
(사진=양수남 제공)

오랜 시간 환경운동을 해온 양 사무처장은 도로개발의 문제로 먼저 '생태섬'들의 단절 문제를 거론했다. 제주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평화로다. 제주와 서귀포를 가로지르는 평화로가 동서 지역의 생태 환경을 단절시켰다는 것. 도로는 마을공동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양 사무처장은 봉개동을 예로 들었다. 1979년 봉개동은 작은 길들로 이뤄진 마을이었다. 주민들이 이웃을 만나는 데 있어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다. 현재는 왕복 6차선 도로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다. 어린이나 노약자는 길을 쉽게 건널 수 없는 구조로 변화했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로 인해 교통사고율도 높아졌다.

양 사무처장에 따르면, 도로 건설은 도시 문제를 해소한다기보다 오히려 도시 확장을 심화시키며, 개발 수요를 더욱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개발 진행 가능성을 높인다. 상하수도, 전기시설 확충 및 대형마트 등이 들어서면서 평면적 확산을 유도한다. 그와 같은 도시 확산 및 개발은 또 다시 도로 건설 압력으로 작용한다.

(사진=양수남 제공)
(사진=양수남 제공)

양 사무처장은 도시의 확장은 주거지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의미라고 지적한다. 10분 이내의 동네 가게 대신 30분 거리의 대형 주차장이 있는 대규모 복합상가에 가고, 이로 인해 동네 상점은 사라지며 대규모의 자본만 살아남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 뿐만 아니라,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은  이동권은 더욱 악화된다. 

또 도로 건설로 인해 기존 상권의 낙후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하천으로 흘러들어 하천 하류 지역의 침수 피해를 야기하며 지하수 형성도 저해한다. 제주도 도로들은 이와 같이 '생명수'인 지하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안도로 건설...해양 생태 환경 악화

도로 건설은 해안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제주의 해안도로는 해안 사구(모래언덕) 지형 훼손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제주도를 감싸는 255km에 달하는 조간대는 용암이 굳어 이뤄진 독특한 경관과 생태 환경을 보이고 있다. 염생 식물과 해조류, 어패류, 조류들이 서식하는 연안습지다. 예로부터 보말(고둥류를 일컫는 제주어) 등을 채취하는 생산 공간으로 '바당밭'으로도 불렸다.

(사진=양수남 제공)
(사진=양수남 제공)

제주섬 조간대에는 해안사구가 발달한 대표적인 지역은 이호, 곽지, 협재, 하모, 사계, 중문, 표선, 섭지코지, 신양, 하도, 평대, 월정, 김녕, 함덕 등 14곳이다.(2017년, 국립생태원)  이 해안사구들은 개발과 도로건설로 인해 82%가 감소했다. 해안도로 건설로 인한 사구 훼손이 심각한 대표적인 지역은 월정리 해안사구다.

월정리 해변은 해안도로 건설로 인해 더이상 모래가 유입되지 않고 있고, 해변의 모래가 도로 위에 쌓이며 모래 양이 줄어들고 있다. 해수욕장 기능 상실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녕 해안사구도 도로 건설로 인해 생태계가 단절됐다. 몽돌해변으로 유명했던 제주시 내도동 알작지 해변도 해안도로 건설로 인해 해변이 보잘 것 없이 위축되고 말았다. 양 사무처장은 도로 개설을 통한 지가 상승 및 개발에 대한 기대가 이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고 본다.

양 사무처장은 이 같은 문제들을 더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자가용과 도로 중심에서 녹색 교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로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산출하는 새로운 모델을 도입해서, 과다한 교통 수요예측을 조정하고 무분별한 도로공급을 줄일 수 있는 정책적 근거 마련 및 집행에 나서야 한다는 것.

양 사무처장은 환경영향평가제도를 피하기 위해 토목 공사를 '쪼개기'로 추진하는 관행의 문제도 지적했다. 현재 환경영향평가법에서는 △4km의 도로 개발 사업 △기존 도로 10km 이상 확장 등만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편법으로 공사 구간을 쪼개어서 추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양 사무처장은 기존 도로와의 관계, 주변 생태계 단절 문제, 침수 피해, 지하수 충전 저해 등을 포함하는 권역별·종합적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환경영향평가법 및 조례 개정이 요구된다.

양 사무처장은 행정당국의 교통 분야 투자가 도로 신설 및 확장 중심 이뤄지고 있는데, 교통세 배분 규정을 고쳐서 도로 공사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고 대중교통 등 녹색 교통의 확충 및 안전 시설에 쓰도록 해야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서울시 지하철 개발의 수십 분의 1에 불과한 예산을 들여서 녹색 교통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세계적으로 친환경도시로 일컬어지는 브라질 꾸리찌바 시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필요한 것으로 양 사무처장은 도로개발사업에서 생태 복원사업으로의 전환과 그 과정에서 토건업의 정의로운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